지난달 전라북도 김제의 한 비닐하우스. 이곳에서는 상추와 케일 등 친환경 방식으로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농민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할머니들 사이에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왔다는 20대 중후반의 외국인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 온지 2년 됐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라 일하는 속도는 노인들에 비해 훨씬 빨랐다. 농장주인 김복기 씨(66세, 남)는 “외국인 노종자의 작업 속도가 노인들보다 30%정도 더 빨라서 작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파종부터 상품으로 완성되는 포장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빌리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제조업과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농촌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농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한 달에 130만 원 정도. 숙식은 무료로 제공된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농가에서는 고민이 생겼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월 20만 원가량을 올려주지 않으면 도시의 공장으로 가겠다고 단체행동을 하고 나선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외국인 노동자들은 절실히 필요한 일꾼이라 이들이 없으면 당장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농장 주인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임금을 올려주자니 농촌경제가 형편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 농촌의 인력난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 인구는 296만5천명으로 300만 명 선이 붕괴 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석호 농촌경제연구원 위원은 “1980년 1082만 명 수준이었는데 지난 30년 동안 무려 70%가 줄 들었다”면서 “매년 약 25만 명이 농촌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농업인구로 분류된 사람 중에도 직접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200만 명도 채 안 된다는 게 농촌경제연구원의 추산이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섭 씨(73세, 남)는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농사를 그만둬야 할 처지다. 정부를 믿을 수도 없고 농사를 지어도 못 먹고 사는 현실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요즘 방송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니까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죽을 지경인데 농촌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니 귀가 찰 노릇이죠. 저번에 높은 분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하두만요. 지자체장들이 아무리 힘들다고 말을 해도 소통이 안 된다고요. 국민들의 소리를 안 들으려고 귀를 막아버렸는데 어떻게 소통이 되겠어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사업만 하려고 하니 농사를 짓는 현장의 어려움을 어떻게 알겠어요. 지금 농촌은 문제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고추농사 같은 것만 해도 그래요. 작년에는 그래도 고추 값이 비싸서 괜찮았는데요. 고추농사가 정말로 힘들어요. 한 여름에 30~40도가 되는 때 고추를 따야 하거든요. 높은 양반들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고추농사를 못 지을 겁니다. 이른 아침에도, 해가 지는 저녁에도 할 수 없는 게 고추농사예요. 익은 것을 구분해 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기계로 할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죠. 한 여름철 대낮에 무조건 사람의 손을 빌어야 거둘 수 있는 게 고추농사니까요.”
이런 어려움 때문에 고추농사는 젊은 사람들이 귀농을 해도 기피하는 농사 중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고 대량생산을 하자니 일손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게 농촌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부에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귀농을 권한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귀농을 했을 때 안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 나이든 사람들이야 이제 농사를 지어도 그만 안 지어도 그만이지만 젊은 사람들보고 귀농하라고 해 놓고 나 몰라라 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냔 말이죠? 제발 부탁 좀 해줘요.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로만 일하지 말고 현장에 나와서 농사짓는 사람들한테 현장의 목소리 좀 들으라고요. 정부에서 농촌을 지원한다고 해도 현장을 안 나와 보니까 쓸데없는 것만 지원한다니까요. 자기네들이 기업가들 살리려고 마지못해서 그러는 거지. 농촌을 살리려고 하는 게 아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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