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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금융자원의 공정한 배분, 어떻게?

금융자원,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동해야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이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면에는 국가주도로 일감몰아주기, 공적자금 투입, 규제완화 등 대기업 중심의 정책과 금융지원이 있어왔다. 하지만 고도성장시대에서 저성장의 시대로 바뀌면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실 대기업에 투입되는 공적자금으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 때, 중소기업은 자금지원을 받을 곳이 없어 연평균 80만개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현실이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벤처기업에 ‘재무재표’ 요구하는 금융권… 기술가치·기업 평가 제대로 이뤄질까


최근 핀테크 바람을 타고, 금융질서도 변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설명회 장소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몰린다. 대부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 중소기업들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책뿐만 아니라 금융시장도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에서 돌아가고 있다. 그 결과 사업체 기준으로 0.1%에 불과한 대기업이 경제 전반을 지배하게 된 반면, 중소기업·소상공인은 성장의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경영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최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국제부울경아카데미 강연에서 “현재 성장과 양극화로 점철된 우리 경제는 동반성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중장기적으로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이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벤처·중소기업인들은 자금조달에 있어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을까. 지난해 11월 크라우드펀딩 설명회 장소에서 만난 국내 토종기술로 보안인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벤처기업의 장상도(가명) 대표는 “아직도 금융은 중소기업에 열려 있지 않다”며 “망해가는 대기업에는 수조원을 쏟아 부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오로지 ‘재무제표’만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같은 벤처의 경우 R&D에서부터 시제품 개발까지 수익은 없고 비용만 발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에 대한 고려는 어느 곳에도 없다”며 “신기술로 대통령표창을 받아도 10대 우수벤처기술로 선정돼도 은행은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사업체 기준으로 대기업, 중소기업 비율이 1대99로 볼 정도로 중소기업체들이 산업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책과 금융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 위주로 짜여진 정책과 금융제도로 중소기업은 계속 힘든 길을 가고 있다. 현장에서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술가치평가, 기업가치평가도 얼마나 제대로 이뤄질 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했다.


지난 6월23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중소기업인들의 한해 가장 큰 행사인 리더스포럼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금속공업관련 협동조합 관계자는 “시장은 하루하루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는데 금융시장은 그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면서 “금융기관에 가보면 기술가치나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는 없이 오로지 ‘재무제표’만 보고 평가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무제표는 지난 학기 성적표지 다음 학기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한 금융관행


중소기업체 CEO들은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한 금융관행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최근 구조조정 대기업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 자본확충 펀드 조성 등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으나, 중소기업은 재무상태에 부실 징후만 보여도 엄격하게 관리(여신회수 등)에 나서는 등 불공정한 금융관행이 형성되어 있다”며 “이러한 금융자원의 불공정한 배분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구조조정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대금 등을 회수하지 못해 연쇄 도산하는 협력 중소기업의 피해를 막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CEO 400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구조조정 추진현황 및 애로사항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 10개 중 6개사(59.5%)가 “부실하지만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도산을 막기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응답했다. 또 과반(58.3%)의 중소기업이 ‘가장 구조조정이 부진한 기업군’으로 “대기업”을 꼽아, 구조조정이 부진한 부실 대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대마불사(大馬不死)’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계기업 선정 시에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선정 기준이 필요하다”가 81.8%로 높게 나타났다. 현재 기업이나 대표자가 과거 운영했던 기업이 구조조정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8.8%)이 꼽은 ‘구조조정 시 애로사항’ 1위는 “기술력이나 성장성 보다는 단순 재무정보에 근거해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다”가 48.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거래업체가 구조조정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12.3%)이 꼽은 애로사항 1위(71.4%)는 “납품대금 및 납품물품을 받지 못했다”, 2위(20.4%)는 “거래업체의 부실로 당사까지 신뢰도가 저하되었다”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부실기업 선정시 단순 재무제표 보다는 성장성 등 비재무 정보까지 종합 고려함으로써, 성장잠재력 있는 중소기업이 한계기업으로 분류되어 비자발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대기업·중소기업간 비효율적인 배분을 보이는 금융자원


이와 같은 현실에 지난해부터 정책금융의 제도개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금융관행의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23일부터 25일까지 2박3일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2016중소기업리더스포럼’에서 ‘기회의 평등, 바른 시장경제를 논하다’라는 주제로 금융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위한 정책방안이 논의됐다.


중소기업중앙회 박성택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현재 금융·노동시스템을 비판했다. 박성택 회장은 “대한민국을 언제까지 대기업 중심의 관행으로 부익부빈익빈 상태로 사회를 끌고 나갈 것인가”라며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 고리를 제자리로 돌려서 바른 시장경제를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된 대기업 위주의 금융자본시장과 노동시장 관행을 하나하나 찾아내 바꾸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미래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공정한 금융자원 배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송혁준 덕성여대 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송혁준 교수는 한국 시장경제의 문제점으로 대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구조, 균형상실 문제, 금융에 있어서의 대중소기업간 편차 등을 꼽으며, 바른 시장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 ‘공정한 자원배분 유도’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송혁준 교수는 “우리는 대기업으로 자금쏠림이 심하기 때문에 규모가 영세한 중소기업은 직접금융조달, 간접금융 등 자금조달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책자금 분야에서도 대부분이 부실 대기업에 지원이 되고 있어서 상당히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출금리도 매출액과 같은 경성적인 정보에 따라 대출관행이 이뤄지다보니 실제 차입금 평균이자를 보면 중소기업은 2014년 기준 4.45%를 유지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하락한 대기업은 3.67%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금융 활성화, 어음제도 폐지 공론화


송혁준 교수는 금융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위해 ▲직접금융시장의 개선방안 ▲간접금융시장제도 개선방안 ▲어음제도 개선 또는 폐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중소기업의 직접금융시장은 한마디로 굉장히 미미하다고 전한 송 교수는 “일단 중소기업은 성장단계별로 자금지원의 인프라가 부족하고, 시장기능·신용정보·기술평가 인프라도 취약하다”며 “코넥스 시장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에 특화된 지정자문인제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서 간접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술금융과 관계금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송교수는 “중소기업은 특성상 관계금융에 적합하다”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역기반의 금융기관과의 역할을 모색하고, 금융기관도 중소기업이 동반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송 교수는 어음제도는 중소기업간 거래에서도 활용되기 때문에 바로 폐지하기에는 혼란이 많지만,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어음제도는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심화, 불공정한 어음 결제 관행, 만기, 고의적인 부도, 어음의 기간에 따른 이자 문제 등으로 단계적 폐지를 주장하는 기업이 많다”며 개선방안으로는 어음에 만기 규정, 고의부도 처벌강화, 이자지급약정 명문화 등을 제시했다.


독자기술을 가진 기업이 부각되는 시대


이어 최동규 한라대 교수의 진행으로 홍순영 한성대 교수와 고대진 IBK경제연구소 소장,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원재희 한국폴리부틸렌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이 패널로 나서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홍순영 한성대 교수는 “자본주의 역사가 긴 미국이나 유럽도 중소기업 신용인프라 구축에 거의 150년이 걸렸고, 이후 자연적으로 규모에 관계없이 시장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고 자금이 나온다”면서 “조금 더 중소기업 신용정보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음제도에 관해서는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연적으로 소멸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홍 교수는 “미국은 매출채권을 통해서 어음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소멸이 됐다”면서 “다른 선진국도 매출채권이나 신용보증을 통한 환경을 조성해서 어음이 자연적으로 소멸되도록 했다”고 전했다.


고대진 IBK경제연구소 소장은 “중소기업은 그동안 협력기업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독자기술을 가진 기업이 부각되는 시대”라며 “고성장시대는 GDP와 매출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고용,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앞으로 은행은 조정자 역할로 앞으로 R&D늘리고 핵심기술 보유한 기업에 대출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노 자유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금융산업이 IMF 시기를 거치면서 담보대출 위주의 금융기관으로 바뀌어 언제부터인가 회사채 같은 채권거래가 되지 않는 금융시장으로 바뀌었다”면서 “금융기관이 담보라는 것으로 신용평가 할 필요도 없이 서류만 있으면 대출해 주는 관공서 역할만 한 것”이라며 금융산업의 경직성을 지적했다.




금융자원,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동해야


정책토론회에는 중소기업·소상공인·금융업계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름만 기업은행이라며 보수적인 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불공정하게 대기업이 금융을 독식하고 있는데,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기업보다 발이 빠를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에게 금융을 공급해 우리나라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부탁한다”고 전했다.


최근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10조로 상향되면서 25개 기업이 오는 9월부터 대기업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중소상공인들은 규제가 풀린 대기업들이 무분별한 영세 골목상권 진출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에서 이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국가주도로 일감몰아주기, 공적자금 투입, 규제완화 등 대기업 중심의 정책과 금융지원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고도성장시대에서 저성장의 시대로 바뀌면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2016중소기업리더스포럼에서 박성택 회장은 이전과는 달리 ‘대기업 임금 5년 동결’ 등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 냈다. 박 회장은 “아직도 경제현실이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앞서는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실 대기업에 투입되는 공적자금으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 때, 중소기업은 자금지원을 받을 곳이 없어 연평균 80만개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현실이다. 한편, 6월23일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국민신뢰 회복을 위한 KDB 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대기업 위주의 자금공급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 세금인 한정된 정책자금이 불균형, 비효율적 배분에서 벗어나 효율적으로 배분되길 기대해 본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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