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언론에 의해 폭로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후 해를 바꿔가며 매주 진행된 촛불집회.
다섯달 가까이 진행된 촛불집회와 선고 직전까지 나타난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77% 탄핵 찬성이라는 국민적 염원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오늘(10일) 헌법재판소는 오전 11시 대심판정에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에서 8대0 전원이 일치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결정 내렸다. 이로써 지난해 12월9일부터 92일 동안 진행돼온 탄핵심판도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며 그 종지부를 찍었다.
이정미 재판관은 탄핵심판 선고 시작에 앞서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라면서 “어떤 경우에도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가치”라고 밝혔다.
이어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한다”면서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루어지는 오늘의 선고로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결연한 심정을 표현했다.
결국 헌재는 ‘파면’을 결정했고, 선고와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신분이 돼 버렸고, 이제 청와대를 비우는 일만 남았다.
탄핵심판이 내려지기 직전까지도 대한민국은 긴장으로 가득찼다. 어제 저녁부터 자리를 지킨 사람들부터 아침 일찍 헌법재판소 앞을 찾은 사람들까지 긴장감은 더 고조돼 갔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역 출구는 비상국민행동 참가자는 1번·6번 출구, 탄기국 참가자는 4번·5번 출구로 나가는 등 지하에서부터 갈라져 보는 이들 모두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곳에도 참가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는 김현식(가명·64, 서울 도봉구) 씨는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분열됐는지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사건이 발생하고, 너무 시간이 길게 흘러 이렇게 돼 버린 것 같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제는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 듯 싶다”고 안타까워 했다.
비상국민행동, 눈물과 함께한 환호
11시 탄핵 시작에 앞서서는 소리 높여 목소리를 높였지만, 선고가 진행되는 수십여분 동안 국민들은 숨죽여 이정미 재판관의 선고에 귀 기울였다.
이정미 재판관의 입에서 “파면한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시민들은 환호했지만 눈물도 함께였다.
비상국민행동은 파면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들이 승리했다”면서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추운 겨울 촛불을 켜고 광장을 지켰고, 민주주의의 봄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책임을 제대로 물을 때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면서 “그들이 쌓아올린 적폐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상국민행동은 청와대까지 승리의 행진을 벌이며, 자축했다. 하지만 반대편에 서있던 탄기국(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은 결국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물리적 충돌 일으킨 탄기국, 2명 사망
11시20분께 예상보다 빨리 탄핵 인용이 선고되자 탄기국 집회측은 헌재의 판결을 믿을 수 없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탄기국 주최측은 “헌재 재판관 8명은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와 거짓의 손을 들었다”며 고성을 질렀다. 이어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분을 삭히지 못한 탄기국 집회 참여 인원들이 경찰 차벽으로 쏠리면서 아수라장이 시작됐다. 탄기국 집회 인원들은 들고 있던 물건을 경찰 차벽 위의 경찰 병력에게 던지기 시작했고 이어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무기 심아 경찰을 위협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경찰측과 탄기국 집회측의 피해자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12시 15분께 안국역 4번 출구 인근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김모(66세)씨가 발견돼 인근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아울러 탄기국 집회인원인 김모(72세) 역시 차벽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은 국론 수습과제, 검찰은 실체적 진실 규명 과제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졌지만, 앞으로 남은 과제를 수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파면 결정으로 ‘장미대선’이 현실화 됐다. 정치권은 빨라진 대선시계 속에 분열된 국론 수습이 과제로 떠올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치권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대통령 개인과 측근의 문제를 넘어 한국정치가 안고 있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탄핵 결과를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해서도, 정치적 셈법을 위해 활용해서도 안 된다”면서 “헌재 결정으로 대통령 직무정지 상황의 불확실성은 해소되었지만 일정기간 국정공백은 피할 길이 없다. 국회와 정부는 국정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고 당면 현안을 지혜롭게 풀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검의 활동이 종료된 상황에서 검찰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청구인으로 제기한 5가지 탄핵사유 유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최순실 국정개입과 권한 남용’에 관해서만 구체적으로 판단했다.
‘공무원 임명권 남용과 직업 공무원 제도 본질 침해’ ‘언론의 자유 침해’는 증거미비 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에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 의무 위반’은 탄핵심판이 판단대상이 아니라고 했고, ‘대통령의 뇌물죄’는 판단하지 않았다.
사단법인 대한법학교수회 백원기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성명서를 통해 “헌재는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피의자 대통령의 최서원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의 점’에 관해 상당한 분량으로 구체적으로 판단했을 뿐, 나머지 4가지 탄핵사유 유형은 결과적으로 검찰이 수사해 그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과제로 재등장했다”면서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므로, 부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고 국민들은 환호하고 웃었다. 하지만 눈물도 함께였다. 국민들은 환호 직전 알 수 없는 탄식과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은 바로 이 국민이 흘린 눈물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