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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문재인 대통령, 문제아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대통령 일대기


고구마 문재인, 문제아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953년 1월 24일 한국전쟁 당시 함경남도 함흥에서 경상남도 거제시로 피난 온 (故)문용형과 강한옥 사이에서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문재인(文在寅)이다. 문재인이 태어난 지 7개월 후 남과 북에 38선이 그어졌고, 고향으로 갈 수 없게 된 문재인의 부모는 부산 영도구로 옮겨가 새롭게 터전을 일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전의 피해로 전국 토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생계를 꾸리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피난민 출신의 문용형 일가의 생활은 더 힘들었다.


부산 남항국민학교 재학 당시 매달 학교에 내는 월사금을 내지 못해 수업을 들을 수 없었던 문재인이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은 지역 명문이었던 경남중학교를 거쳐 당대 PK지역 최고의 명문고인 경남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남들보다 공부하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대 명문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독서에서 나왔다. 중학교 재학 당시 문재인은 학교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의 독서 삼매경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모범생 같은 이미지를 가졌고 실제로 공부를 잘했던 그에게도 방황의 시절은 있었다.


고교 시절 초반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고교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낙담 그리고 사회 계층 차이에 대한 불만으로 술과 담배에 손을 대는 등 방황을 하며 ‘문제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결국 ‘문제아’ 문재인은 고교 졸업 이후 원하던 서울대 입시에 실패했고 재수를 선택했다. 그러나 1972년 두 번째 대입에서도 서울대의 문은 그에게 열리지 않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신 문재인은 서울대 대신 경희대 법학과 문과 수석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선택을 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곧바로 구속


가난을 이겨내고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에게 시련은 계속됐다. 경희대 4학년 총학생회 총무부장 시절 당시 박정희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를 했던 그는 1975년 4월 11일 구속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출소 이후 요주의 인물로 찍혔던 문재인은 강제 징집돼 1976년부터 1978년까지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특전사로 복무했다.


1978년 군 전역 후 고향에 돌아와 진로 문제로 방황하던 그에게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돌아가신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문재인은 사법시험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생전에 잘 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깊은 후회였다. 그 후 문재인은 1979년 사법시험 1차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나 1980년 복학과 함께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치룬 그는 곧바로 구속됐다. 당시 전두환 신구부에서 민주화 운동 전력이 있는 대학생 등을 마구잡이로 구속했고, 문재인 역시 5월 17일 강화도에 있는 예비 처가(현 김정숙 여사)에 다녀오는 길에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져야했다. 그렇게 유치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문재인은 옥중에서 사법시험 2차 시험 발표를 맞이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부인 김정숙 여사는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알려왔고, 얼마 뒤 문재인은 석방됐다. 하지만 사법시험 2차 합격 소식이후에도 그에게 ‘고생 끝 행복 시작’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형식절차에 가까운 사법시험 3차 면접을 앞두고 문재인은 안기부에서 나온 사람 들을 만났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문재인을 호텔로 불러 “지금도 그때와 생각이 같은가?”라며 군사 독재 정권으로의 전향을 회유했다. 이에 문재인은 “그때 나의 행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군사 정권의 유혹을 뿌리쳤다.


이후 다행히 사법시험에는 통과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사법연수원 졸업 당시 수석 졸업 할 수 있는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석으로 졸업 해야만 했다. 또한 집시법 위반 전력이 있어 판사로도 임용되지 못했던 그는 거대 로펌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어머니가 있는 부산으로 낙향했다. 그가 생각한 변호사란 서민들이 겪는 사건들 속에서 억울한 사람을 돕고 보람을 찾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원칙주의자 문재인, 노무현을 만나다


부산으로 낙향한 문재인은 사법고시 동기인 박정규의 소개로 노무현을 만났고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했다. 사무소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만나다 보니 문재인과 노무현은 부산·울산·경남에서 대표적인 노동 및 인권변호사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이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공천 제안을 했다. 노무현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문재인은 이를 거절하고 재야에 남은 변호사들을 모아 노무현과 함께 운영했던 법률사무소를 ‘법무법인 부산’으로 바꾸고 대표 변호사로 지내며 인권변호사로서 활약했다. 그리고 2002년 4월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문재인은 10월부터 노무현 캠프 부산 본부 선거 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대선 이후 노무현은 문재인에게 “당신이 나를 정치로 나가게 했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라”며 문재인에게 책임을 물었고, 문재인은 책임을 지기 위해 민정수석비서관 자리를 맡게 됐다.


하지만 녹내장과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문재인은 1년 만에 민정수석 자리를 내려놓고 청와대를 떠났다. 청와대를 떠난 그는 아내와 함께 네팔 산행을 하던 중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게 됐고, 그 즉시 귀국해 노 대통령 변호인단을 꾸렸다. 탄핵 부결 이후 문재인은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대통령비서실장 자리까지 올랐다. 
 


문재인의 청와대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 역대 정권 중 처음으로 민정 수석을 두 번이나 맡은 인물이며, 비서실장 시절에는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받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총리 해임을 촉구하는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또한 청와대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왕 실장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 때문에 노무현은 문재인에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난 문재인, 혁신의 아이콘


노무현 탄핵을 막아내고 노무현 정부와 마지막을 함께한 문재인은 2008년 경남 양산의 본가로 돌아가 칩거생활을 했다. 참여정부시절 민정수석 자리를 받아들일 때도 ‘민정수석으로 끝내고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었던 그의 원칙주의자적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그를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주변에서는 문재인이 정치에 나서주길 희망했다. 하지만 지독한 원칙주의자 문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노무현에 대한 책이라도 써야하지 않겠느냐’라는 회유책에 문재인은 ‘운명’을 집필했고 책이 잘 팔리자 자연스레 북 콘서트를 하게 됐다. 1회성으로 시작한 북 콘서트는 대박이 났고 이후 전국순회콘서트로 이어졌다. 전국 순회콘서트를 하면서 문재인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을 느꼈고, 마침내 고집을 꺾고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한 번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문재인의 첫 정치권 도전장은 2012년 제19대 총선이었다.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그는 박근혜를 등에 업은 손수조를 꺾고 55%의 득표를 얻으며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90년 3당 야합 이래 사상구에서 당선 된 첫 민주당 후보였다. 하지만 문재인의 정치적 임무는 국회의원이 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바랬고 그 바램은 문재인을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될 순 없었다. 각축전을 벌인 가운데 박근혜가 제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문재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선 이후 문재인은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고, 당의 혁신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혁신으로 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문재인이 정치판에 등장한 이후 당의 중진 의원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문재인을 향한 공세작전을 펼쳤다. 안철수로 대표 되는 당내 비주류 의원들은 문재인의 대표직 사퇴와 혁신위원회의 혁신안 폐기 등을 요구했다. 원칙주의자 문재인과의 협상이 원하는 대로 잘 이뤄지지 않자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비주류 의원들은 대거 탈당을 감행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당 인재 영입 작업에만 착수했다. 2016년 1월 19일 문재인은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당의 공천 제도를 ‘시스템 공천(안심번호 국민공천제)’로 새로 도입해 그 간 계파 보스 정치인들이 나눠먹기 했던 국회의원 공천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고구마 문재인의 마지막 도전, 그가 말하는 대한민국


“4년 전, 저는 국민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습니다. 저의 부족함이 컸습니다. 그 후 박근혜 정부의 과오와 실정을 지켜보면서 뼈아픈 반성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면서는 참담한 심경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지 못한 저의 부족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국민들께 송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아픈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저는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이 고심하며 준비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비전도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커다란 절박감이 저의 새로운 도전을 지탱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입니다. 반드시 정권교체 해야 한다는 절박감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입니다. 그래서 다시 도전했습니다. 준비된 저 문재인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든든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 방송연설 中

 

한 때 문제아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문재인은 자신을 고구마라고 부른다. 고구마를 먹으면 목이 메는 것처럼 원리원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조금은 답답하기도 한 원칙주의자인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답답할지 모르지만 원리원칙에 따라 하나씩 차근차근 일을 풀어가는 대통령. 재조산하(再造山河)를 외치는 문재인이 그려낼 새로운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취임사 전문]


문 대통령 “국민과 가까운 곳에서 따뜻한 친구 같은 대통령 되겠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랍니다. 또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했던 나랍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함께 선거를 치른 후보들께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 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고른 지지로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 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안보 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한·미 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 국방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할 토대로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킴으로써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졌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습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돼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신뢰 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MeCONOMY magazine Jun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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