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와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벌이고 있는 기업들이 패소할 경우 최대 8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종업원 450인 이상 기업 중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35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에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은 총 103건으로, 종결된 4건을 제외하면 기업당 평균 2.8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소송 진행현황은 ▲1심 계류 48건(46.6%) ▲2심(항소심) 계류 31건(30.1%) ▲3심(상고심) 계류 20건(19.4%) 순이었다.
통상임금 소송의 최대 쟁점은 ‘소급지급 관련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 인정 여부(65.7%)’였다. 가장 많은 23개사에서 이같이 답했다. 10개 기업(28.6%)은 ‘상여금 및 기타 수당의 고정성 충족 여부’를 쟁점사항으로 보고 있었다.
‘신의칙’은 법률관계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말한다.
2013년 대법원은 정기적·고정적 상여금(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도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으로 합의해 임금 수준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이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돼도 이에 대한 소급을 요구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고정성’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해 그 업적과 성과, 기타의 추가적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돼 있는 성질을 말한다. 기업에서 지급하는 상여금이나 수당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이들 기업은 소송의 쟁점을 ‘신의칙 인정 여부’로 본 이유에 대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간 묵시적 합의 내지 관행에 대한 불인정(32.6%) ▲재무지표 외 업계현황·산업특성·미래 투자애로 등에 대한 미고려(25.6%) ▲경영위지 판단시점(소송제기 시점 또는 판결 시점)에 대한 혼선(18.6%) 등을 꼽았다.
또한 통상임금 소송으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서는 29개 기업에서 ‘예측하지 못한 과도한 인건비 발생(82.8%)’이라고 응답했다. ‘인력운용 불확실성 증대(8.6%)’, ‘유사한 추가소송 발생(8.6%)’ 등을 우려한 기업도 있었다.
실제로 설문기업 중 25개 기업에서 통상임금 소송 패소시 부담해야 하는 지연이자, 소급분 등을 포함한 비용을 합산하면 최대 8조3,673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전체 인건비의 36.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소송에서 패소해 제기된 상여금 및 각종 수당이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예상되는 통상임금 인상률은 평균 64.9%였다.
통상임금 소송의 원인은 ▲정부와 사법부의 통상임금 해석범위 불일치(40.3%) ▲고정성·신의칙 세부지침 미비(28.4%) ▲통상임금을 정의하는 법적 규정 미비(26.9%) 등이 꼽혔다.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 법원 판례와 정부 행정해석의 불일치로 인해 노사간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통상임금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통상임금 정의 규정 입법(30.4%) ▲신의칙·고정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 마련(27.5%) ▲소급분에 대한 신의칙 적용(27.5%) ▲임금체계 개편(14.6%) 등이 나왔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법리 정리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 정의 규정 및 신의칙 인정 관련 세부지침 미비로 인해 산업현장에서는 통상임금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통상임금 정의 규정을 입법화하고 신의칙 등에 대한 세부지침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유 정책본부장은 “신의칙 인정 여부는 관련 기업의 재무지표 뿐만 아니라 국내외 시장 환경, 미래 투자애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