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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좁은 한옥 골목길 맛있는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세종마을’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서울하면 떠오르는 관광지에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인사동, 북촌 한옥마을, 경복궁, 광화문 등을 떠올린다. 실제로 그곳에 가면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한국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한양으로 불리던 때부터 600년 넘는 시간동안 이 나라의 수도였던 서울에 가볼만한 관광지가 어디 이곳들뿐이겠는가. 서울 시내 조성된 수많은 관광지 혹은 여행길 중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볼만한 곳들 중 하나인 서울시 중구 세종마을을 다녀왔다.

 

장마철이지만 거의 일주일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에 기온은 무려 35까지 치솟아 말 그대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0일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세종마을을 찾았다. 서울 시내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흔히 인사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을 떠올리기 때문인지, 이날 찾은 세종마을은 한적하면서 조 용했다. 그러나 세종마을은 특유의 소박함과 여유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맞았다.

 

세종대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 세종마을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준수방(현 통인동, 옥인동 일대), 인달방, 순화방, 웃대, 우대, 상대마을(上村)이라고도 불렸다. 현 행정구역상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효자동 창성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통의동 체부동 필운동 적선동 일부 사직동 내자동 일부 등 15개 법정동()이 이에 해당한다. 경복궁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흔히 서촌이라고도 불리는 세종마을은 세종대왕이 준수방에서 태어났고, 서촌의 장의동(현 효자동, 궁정동)에서 살았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종로구 지명위원회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탄생지라는 역사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세종대왕 탄생 614주년 되는 2011515일 이곳의 지명을 공식적으로 세종마을이라고 명명했다. 사단법인 세종마을가꾸기회에 따르면 세종마을은 조선시대에 중인들과 일반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옥계시사(玉溪詩社, 백일장)가 열리고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백사 이항복, 송강 정철, 김상용, 성수침 등 문인·화가들이 태어나거나 살았던 마을이었다. 근현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이상, 박노수, 정병욱, 이상범, 노천명 등이 거주하며 문화·예술의 혼이 이어졌고, 현재도 600여채의 한옥과 전통시장, 소규모 갤러리, 공방 등이 자리하는 등 문화와 삶이 공존하는 마을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세종마을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9번 출구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갈 수 있다. 광화문역을 이용할 경우 역을 나와서 경복궁 담장을 따라 경복궁역 방향으로 걷다보면 세종마을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광화문광장과 경복궁을 볼 수 있는데, 이곳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관광지인 만큼 여기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수 백 년 백송(白松) 터와 홍기옥 할머니의 이야기

세종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지도부터 잘 살펴야 한다. 좁고 복잡한 골목길이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지도를 통해 건물번호를 확인하면서 이동하면 훨씬 수월하게 길을 찾을 수 있다. 경복궁역 방향으로 경복궁 담장을 따라 걸어 세종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인 대림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포토그래퍼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토드 셀비(Todd Selby)’더 셀비 하우스(The Selby House) : 즐거운 나의 집이 전시 중이다.

 

많은 관람객들이 한낮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이곳을 찾아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을 지나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 직진하다가 게스트하우스를 끼고 좌회전하면 통의동 백송터가 나온다. 조선시대 영조가 등극하기 전에 기거했던 창의궁 터이기도 한 백송 터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후 월성위의 봉사손으로 입양돼 4살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에 봉해졌고, 영조는 백송이 있던 이곳에 월성위궁을 내려줬다. 예전에는 인근 대로에 이곳이 창의궁 터였고, 추사 김정희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통의동 백송은 수명이 300년 넘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였다. ‘백송 터에 설치된 안내문에 따르면 통의동 백송은 우리나라 백송(白松) 중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樹形)이 가장 아름다워 1962123일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1990717일 태풍으로 넘어진 이후 고사돼 1993324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고, 같은 해 513일 벌목돼 지금은 밑동만 남아있다.

 

당시 천연기념물이었던 백송이 넘어졌을 때 이곳 주민들은 백송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며, 노태우 전 대통령도 나무 살리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청와대 인근 에 있는 고목(古木)이 죽는 것이 불길한 조짐이라는 소문이 돌자 노 전 대통령이 나무의 회생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에는 백송을 살리기 위한 백송회생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회생수술, 백송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경찰이 3교대 경계까지 벌였다.

 

스위스의 한 제약회사는 비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최상급 마사토를 공수해오는 등 백송의 회생을 위해 다방면의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이런 노력과 정성들이 결실을 맺었는지 1991년 봄 백송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등 회생의 기미가 나타났으나, 목재를 탐내던 사람들이 이제 살아나기 시작하는 백송과 흙에 제초제를 뿌렸고, 백송은 상태가 악화돼 1993년 결국 최종 사망판정을 받게 된다.

 

제초제를 뿌린 사람들은 죽은 백송을 이용해 관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백송은 살아나지 못했지만, 백송의 회생을 위한 노력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홍기옥 할머니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1970년대에 통의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백송과 인연을 맺게된 홍 할머니는 폭우로 백송이 쓰러지자 일본 홋카이도를 오가며 일본의 조경과 산림, 나무관리법 등에 대해 직접 공부했을 정도로 백송을 아끼고 보살 피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백송이 너무 멋있었고, 백송 밑에서 마을 사람들과 도란도란 지내면 서 백송에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1994년 서울 강남구 포이동으로 이사를 했다가 백송이 눈에 밟혀 다시 통의동으로 이사를 왔을 정도로 홍 할머니의 백송에 대한 애정과 정성은 남달랐다. 1991년 백송에 욕심을 냈던 사람들이 나무와 흙에 제초제를 뿌렸을 당시 할머니는 제초제가 뿌려진 흙을 맨손으로 퍼내다가 손을 다쳤고, 상처로 제초제가 들어가 제초제의 독성으로 인한 후유증에 걸리기도 했다. 홍 할머니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갈라진 손을 매만지며 백송에게서 받은 훈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송에 대한 문화재 지정이 해제된 이후 홍 할머니는 백송 후계목을 키우는 일에 몰두했다. 홍 할머니와 문화 재청, 서울시청, 종로구청은 쓰러진 백송의 가지를 잘라 원래 백송이 있던 자리 주변에 심었고, 수목원과 청와대, 헌법재판소 등 에도 백송의 나뭇가지를 보내 다른 곳에서도 백송이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이때 통의동에 심은 어린 백송’ 4그루는 밑동만 남은 어머니 백송주변에서 사람 키의 두 배가 넘을 정도로 많이 자랐다.


 

서울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서촌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통의동 백송 터감상을 끝내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맞은편에 서촌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다시피 서촌이라는 지명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서촌 한옥마을과 흔히 비교되는 북촌 한옥마을에는 조선시대의 내로라하는 권문세가들이 주로 살았다면 서촌에는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 중인과 궁녀들이 살았던 공간이다. ‘서촌 한옥마을에는 좁은 골목을 따라 한옥과 양옥, 한옥을 개량한 카페나 상점, 갤러리 등이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어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북촌 한옥마을과 비교되는 점은 북촌의 한옥이 전통 한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서촌 한옥마을의 한옥은 대부분 1910년대 이후 주택 계획에 의해 대량으로 지어진 개량 한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과 약간은 어두운 느낌 의 서촌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 놀던 동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서촌 한옥마을에는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만큼 이 곳을 방문했을 때는 상당히 조용한 모습이었다.

 

이따금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국내 관광객들 정도만 마주 칠 수 있었다. 이곳을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골목길은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어디가 어디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데다, 이 정표도 없기 때문이다. 종로구청이 추천한 코스로 한옥마을 구석구석을 다녔지만, 별다른 이정표가 없어서 왔던 길을 몇 번이나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는 서촌 한옥마을 특유의 감성과 여유, 분위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서촌 한옥마을을 나와서 대로변을 따라 청와대 쪽으로 걷다보면,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迎秋門) 맞은편으로 통의동 보안여관이 보인다. 1930년대에 문을 연 보안여관80년 넘는 시간동안 한 자리를 지킨 역사 그 자체다. 광복 이후 지방에서 서울로 귀경한 젊은 시인과 작가 등 예술인들이 장기 투숙하는 공간이었다.

 

서정주 시인도 이곳에 머무르며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 과거 재개발 영향으로 사라질 뻔 했지만, 예술가들이 힘을 합해 여관을 지켜냈다. 지금은 투숙을 할 수 없는 여관이지만, 여전히 간판을 달고 있으면서 2010년부터 여러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여관 뒤편으로 기존 여관과 연결된 신축 건물이 세워져 더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보안여관다음으로 찾은 곳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오서점이다. 이곳은 가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사진에 등장한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1951년 문을 연 대오서점은 조대식, 권오남 부부가 헌책방으로 처음 운영하기 시작한 곳이다. 부부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서 서점의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서점 외관은 유지한 채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세종마을에서는 근대 선교사들의 주택도 만나 볼 수 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배화여자고등학교의 생활관(등록문 화재 제93)’이다. 배화여고는 미국의 선교사인 캠벨 여사(J. P. Campbell)이 설립한 학교로, 1898년 기독교 전파와 여성 계몽을 목적으로 캐롤라이나 학당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1910배화학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배화여고 생활관은 붉은색 벽돌로 이뤄진 서양식 건물로, 반지하가 있는 2층 구조다. 전체적인 외형은 서양식이지만, 지붕은 한옥의 기와지붕을 사용해 서양식 건축과 한국식 건축이 섞인 독특한 모습이다.


 

이곳은 배화여고 설립 당시에는 없었다가 1916년 현재의 위치로 학교가 이전하면서 세워졌다. 원래 선교사들을 위한 주택이었다가 1971년부터는 배화여고 생활관 및 동창회관으로, 1997년부터는 동창회관으로 사용됐다.

 

통인시장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어딘가를 놀러갔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먹는 즐거움이다. ‘세종마을을 찾았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는데 바로 마을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통인시장이다. 종로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재래시장인 통인시장은 일본인들을 위한 공설시장으로 개설됐다가 1925년 문을 닫은 후 19416월 공설시장으로 다시 개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2005년 아케이드 사업을 통해 시장 정비가 이뤄져 현재의 모습을 갖췄고, 70여개 점포가 이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통인시장하면 떠오르는 것은 기름떡볶이엽전도시락이다. 시장에는 저마다 원조간판을 단 기름떡볶이 가게가 많이 있었고,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도 엽전도시락기름떡볶이를 담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장은 생각보다 길이(?)가 짧다. 서두르지 말고 시장 처음부터 끝까지 이동하면서 판매하고 있는 각종 전, 반찬, 음료, 과일 등 음식들을 눈에 담아보는 것이 좋겠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면 왔던 길로 되돌아와서 시장 중간에 있는 고객만족센터 2층으로 올라가 시장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엽전을 구매해 본격적인 식도락 여행을 즐기면 된다. ‘엽전은 개당 500원으로, 시장에서 판매하는 음식들 대부분은 엽전 2개로 맛볼 수 있다. ‘엽전1인당 10, 그러니까 5,000원부터다. 누군가와 함께 갔다면 1인당 엽 전 10개 정도로 충분히 시장의 음식들을 즐길 수 있겠지만, 혼자 갔다면 엽전을 조금 더 구매하는 것도 좋다.

 

엽전을 구매했으면 시장으로 내려가 음식들을 골라 엽전으로 구매하면 된다. 정신없이 음식을 골라서 도시락에 담다보면 어느 덧 도시락이 꽉 차 손이 묵직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다 골랐다면 다시 엽전을 구매했던 곳으로 자리를 옮겨 밥과 국을 구매한 후(이것도 엽전으로 구매할 수 있다) 2층과 3층에 마련된 자리에서 맛있게 즐기면 된다. 구매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곳에는 음식을 고르는 동안 식었을지도 모를 음식을 데울 수 있도록 전자레인지도 구비돼 있다.

 

통인시장 서쪽 출입구로 나오면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효자베이커리가 자리하고 있다. 청와대에 26년간 빵을 납품했을 정도로 빵맛과 품질이 좋아 지금은 세종마을을 대표하는 맛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줄을 서지 않고서는 빵을 구매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줄을 서있는 동안 가게 직원이 계속 시식 빵을 제공한다고 하니, 이 또한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유명한 빵으로는 콘브레드와 어니언 크림치즈베이글, 블루베리번 등이 있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과 함께 세종마을을 찾아 과거 서울의 역사가 담긴 장소를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도 즐기면서 마지막 여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MeCONOMY magazine  Augus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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