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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포트


87세 老 연구자 토종벌 질병 논문 발표 K.V 바이오젠 권혁진 농학박사

 

[M이코노미뉴스 이상용 수석편집주간] 서구나 일본 연구자들 중엔 80대에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들이 더러 있는 줄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87세에 당당히 학회 논문을 발표하는 연구자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 논문도 긴 세월의 사유와 표현력을 무기 삼아 추상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엄격한 실험 데이터를 제시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한 내용이었다. 논문의 주제도 토종 꿀벌의 감염병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 치료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꿀벌의 급격한 감소는 인류의 종말을 예고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지금 세계 학계의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 V 바이오젠 권혁진 소장의 논문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3회에 걸쳐 그가 일평생 연구해온 바이러스와 연구 인생을 소개한다.

 

꿀벌만큼 공중을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동물이 있을까. 꿀벌은 하루 종일 분주하게 꽃가루를 나르기 때문에 인류 식량의 60~70%가 꿀벌의 수분으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꿀벌의 개체 수가 감염병 등의 원인으로 감소한다면 식물의 성장과 열매도 덩달아 감소할 것이고 그건 인류의 식량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지구상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종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한다. 우리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무책임한 행위로 지구촌 생물종이 크게 위협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식물의 꽃가루를 전달하는 꿀벌이 병에 걸려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 것보다 어찌 보면 더욱 심각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벌의 감소는 인류 식량 위기 초래

 

우리나라 토종 벌꿀들이 걸리는 병은 한국형 낭충봉아부패병이다. 이 병은 바이러스가 병원이다. 동물전염병 국제전문가 최강석 씨의 저서 「바이러스 쇼크」를 보면 낭충봉아부패병의 피해 사례가 잘 정리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각지에서 꿀벌 개체군이 급감하고 있다. 2011년 명절날 최강석 씨는 토종벌 농사를 짓는 친척으로부터 토종벌 유충이 번데기로 되기 전에 죽는다며 하소연해왔으나 치료약도 예방약도 없어서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때 우리나라 토종벌 농가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낭충봉아부패병의 원인은 색부르드 바이러스다. 최강석 씨는 1904년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지구온난화로 미얀마, 태국, 중국, 일본 등을 거쳐 2008년경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적었다. 2009년 11월에 강원도 홍천에서 처음으로 피해가 발생해 전국으로 번졌다. 이 병으로 토종벌의 95%가 사라졌다. 생계가 막막해진 양봉농가들이 과천 청사 앞에 모여 생존보장을 요구했다. 토종벌이 집단 폐사하면서 인근 지역의 과일과 채소농가들이 직접 손으로 수정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호박과 가지 가격이 급등했다.

 

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으로만 관찰되는 초미세 미생물

 

파스퇴르는 병의 그 원인이 되는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미생물은 곰팡이와 세균, 바이러스로 나눈다. 이 가운데 곰팡이와 세균은 광학 현미경으로 볼 수 있으나 나노미터 크기인 바이러스는 광학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고 전자현미경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또 바이러스는 증식과 유전은 하되 스스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소화시켜 성장하고 에너지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오로지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만 증식한다. 바이러스의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세균과 곰팡이에 비해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훨씬 크다. 한국형 낭충봉아부패병도 지금까지 치료법과 예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살아있는 세포에서만 증식하는 바이러스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 쉽게 오가지 못하고, 동물 간에도 같은 종이 아니면 살 수 없다. 일본뇌염 등 사람과 동물에서 모두 증식할 수 있는 바이러스는 극히 적다. 권혁진 박사는 1977년 돼지 일본뇌염 생독백신을 개발한 경험이 있고 지난 60년간 바이러스 연구 현업에서 떠나지 않고 현재까지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Q. 지난 2월 대한수의사회지에 발표한 토종벌의 질병 치료에 관해 논문 내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A. 꿀벌 바이러스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려면 먼저 꿀벌 바이러스를 배양할 수 있는 곤충 주화세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으나 곤충 주화세포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곤충 주화세포는 액체질소에 보관하는데, 바이러스를 증식할 때 주화세포를 꺼내서 거기에서 증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꿀벌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를 돼지 신장에 넣어서 그곳에서 증식시켰습니다. 제가 돼지 일본뇌염 생독백신을 만든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꿀벌 질병 연구에 적용한 겁니다.

 

꿀벌 바이러스는 색브루드 바이러스라고 부르는데, 그동안 학계에서 다른 종에서는 증식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돼지 신장에서 색브루드 바이러스를 증식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증식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걸 알기 위해 세포변성효과를 일으켜서 바이러스가 증식한 것을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바이러스 증식을 확인한 것도 이번 논문의 중요한 성과입니다.

 

Q. 바이러스를 치료하려면 백신을 개발해야 되는 거죠?

 

A. 꿀벌은 항체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백신은 안 됩니다. 그래서 꿀벌의 유충에 본래의 바이러스를 약독화시킨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약독화된 유충은 외부로부터 낭충봉아부패병의 바이러스 침입을 막을 수 있게 됩니다. 약독화 시험과는 별개로 돼지에게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실험을 통해 면역 혈청을 만들었습니다. 이 면역 혈청을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린 토종벌의 알이나 유충에 분무한 결과 70%가 회복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방법은 약독화 방법보다 안전합니다. 면역 혈청은 직접 분무해도 되고 물에 꿀을 타서 벌통 가운데 놓아두면 벌이 와서 먹고 유충 등에게 면역 혈청을 전파하게 합니다.

 

그동안 돼지 세포에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를 증식시킨 연구는 있었는데 이번 논문에서는 세포변성효과를 통하여 증식을 확인한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한국에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외국에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저명한 벌 질병 연구자에게 메일과 함께 영문 논문을 보냈습니다. 또 벌 주화세포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미국 농무성 원예연구소에 있는 연구자에게도 저의 연구 논문을 메일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내가 하지 못한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보낸 논문을 보면 좋아할 겁니다.

 

Q. 과학의 세계에서 연구자들끼리는 국적을 넘어 서로 통하며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군요. 어떤 연구든지 쉬운 게 없겠습니다만 바이러스 연구도 무척 어렵죠?

 

A. 바이러스 연구는 집요하게 파고들고 동시에 넓게 봐야 합니다. 다른 연구자들이 뭘 연구했는지 쭉 살펴봐야 합니다. 연구 역사를 알고 연구 문헌을 많이 보고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남이 10년 전에 연구해놓은 걸 하는 경우도 있어요. 바이러스마다 증식하는 방법이 다르고 그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실험을 통해서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요즘에도 아침 일찍 맨 먼저 연구실에 출근하여 연구를 합니다. 이전에는 밤늦게 실험실에서 있었습니다만 요즘에는 정시에 퇴근하는 편입니다. 아침 2시쯤 일어나 내가 밥을 해서 먹고 5시 30분이 되면 집을 나서 연구실로 출근합니다. 바이러스 연구는 끈질기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Q. 가축 바이러스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A.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방을 맞았습니다. 가난하고 혼란한 시기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16살 때 안양에 있는 농진청 가축위생연구소 시험실에 취직했습니다. 16살엔 법적으로 취업을 못하게 돼 있었지만 자유당 시절이라 가능했습니다. 저는 가축위생연구소에 있으면서 야간중학교를 다녔어요, 6.25전쟁이 터지자 피난 갔다가 복직하고선 공고를 다녔어요. 그러던 중 연구직이 되려면 농고를 나와야 한다고 해서 다시 농고를 갔지요. 학교 선생님들이 제가 가축위생연구소에 있는 줄 알고 병아리를 사달라고 해서 자주 사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병아리를 길러서 파는 게 돈이 되던 시절이었어요. 병아리를 사주는 심부름으로 고등학교 학비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가축위생연구소에 유영진 과장이라고, 서울농대를 나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그 분의 조수로 일을 했습니다. 그 분이 영어를 잘 하셨어요. 해방 후 군정 때는 일본어는 완전히 못 쓰게 하고 영어가 각광을 받았습니다. 유 과장님이 농진청 영문 문서작업을 도맡아 하셨어요. 그분한테 영어를 배웠어요. 그 영어 실력으로 고등학생인 제가 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야간에 가르치기도 했지요.(웃음) 유영진 과장님은 겨울에 오버를 두 개나 껴입고 연구를 하신 분입니다. 그 분한테 연구하는 걸 배웠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신 분인데 젊은 시절에 결혼도 못하고 폐병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후 1969년에 호주 퀸즈랜드 대학으로 연수를 가서 1년 2개월간 있었습니다. 공무원 해외연수는 원래는 제 순서가 아니었는데, 농림부에서 영어시험을 본 17명의 연수 후보자들이 과락을 했습니다. 제 성적이 가장 높았어요. 하지만 저도 합격점수에 0.5점이 모자라 어학연수를 받고 현지로 떠났습니다. 현지에 가서는 틈만 타면 교수들과 1대1로 토론을 하니깐, 영어가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바이러스 실험을 한국에서 쭉 해왔기 때문에 영어도 못해도 바이러스에 관한해서는 그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 있으면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과 대학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제가 그 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Q. 처음 가축위생연구소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60년간 바이러스 연구를 계속한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무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A. 1964년 가축위생연구소에 있으면 연구직 자격시험을 합격했습니다. 재직 중인 50대에 일본농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도교수가 스즈끼라는 분인데,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으로 와서 논문 지도를 하고 그러면 제가 논문을 써서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마지막 논문 발표하러 일본에 가서 일주일 간 있으면서 발표해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그때가 1979년 4월이었습니다.

 

Q. 일본대학 학위는 굉장히 어렵다고 들었는데, 일본어로 논문을 써야 하지 않습니까?

 

A. 초등학교 다닐 때 일본어를 배우고선 완전히 잊고 살았지요. 해방되고 난 뒤에 일본어를 배척하는 분위기였지요. 제가 40대에 호주 퀸즈랜드 대학에 연수 갔을 때 어학연수를 받는 데서 일본통산성 공무원을 만났습니다. 그는 영어를 잘 못했어요. 그때 서로 일본어로 대화하면서 옛날에 배웠던 일본어가 생각나더군요. 그 이후로 일본어를 조금씩 하게 되었는데, 그게 일본농업대학 논문 쓰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논문을 쓸 때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더 힘들어서 제가 직접 썼습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돼지 일본뇌염에 관한 것으로 국내외 학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내용은 다음호에서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MeCONOMY magazine Jun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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