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다시 한반도에 평화의 순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9·19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하며, 지난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이후 막혀 있던 북핵 협상의 혈이 뚫렸다. 특히 공동선언 제5항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고 밝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는 결국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문제다. 문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은 평화열차 위에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라 담판을 지어야 한다.
총론보다 각론이 어렵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지난 9월7일 국회에서 열린 ‘북미관계와 북핵전망’이라는 강연회에서 “4·27 판문점 선언이나 6·12 싱가포르 선언은 총론에 해당한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긴다”며 이는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에 접근하는 방식에 기본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특보에 따르면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일괄타결 방식’인 반면 북한은 ‘점진적 방식’을 고수한다. 즉 미국은 기본적으로 ‘선 폐기 후 보상’이라면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비핵화 단계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이른바 ‘살라미 전술’이다.
비핵화 단계를 보자. 핵에 대한 동결에서 시작해 핵시설·핵물질·핵탄두·탄도미사일 등 관련된 모든 사항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신고한다. 이후 그 신고 리스트에 대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에 들어가는 사찰 단계를 거친다. 신고와 사찰 단계가 끝나면 구체적인 검증의 범위가 설정된다. 그리고 그 검증의 결과로 핵을 폐기하고 폐기 이후에도 재검증의 과정을 거친다. 그동안 북한의 입장은 각 단계마다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미국의 보상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해왔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납득할 만한 이유는 있다. 과거 2007년 2·13 합의에서 북한은 1단계 영변 핵 시설 봉인·폐쇄 및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2단계 불능화, 3단계 검증 가능한 폐기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이를 이행하면 다른 국가들은 중유 지원 등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 북한이 원하는 ‘행동 대 행동’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2단계에서 파국을 맞았다. 북한과 다른 국가들은 서로 상대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이 2단계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2·13합의는 무산됐다. 미국 입장에선 ‘먹튀’라고 할 만하다.
서로 다른 시계(視界)에 머물러 있는 북미
문 특보는 북한과 미국의 입장 차이를 각각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3분의 2 이상 폐기했고, 북한에 하나밖에 없는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설도 폐기했다. 발사대도 상당 부분 폐기했고, 미군 유해까지 넘긴 것은 북한으로선 미국에 상당히 많은 성의를 보였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그에 대한 대가가 없어 북한은 상대적으로 박탈감 느끼고 있다”고 했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건 미국 외교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그 정도 미국이 대접을 해줬으면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가시적 조치를 해야 하는데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 하지 않았느냐 하는 입장이다”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풍계리, 동창리 핵 시설을 폐쇄한 건 미래의 핵 활동에 대한 선제적 동결로, 동결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미국이 정말 원하는 것은 현재 북한이 가진 핵에 대한 폐기다. 미국은 현재의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탄도미사일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폐기가 시작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특보는 “북한은 미래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서 미국은 현재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북미 간 상당히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과 미국의 각론의 차이에는 비핵화 시간표 차이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1년 1월까지 완전한 비핵화를 시사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금부터 2년반 동안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재검증’의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 특보는 “북한이 상당히 협조적으로 나오면 가능하긴 하다”며 “가령 북한이 선제적 조치로 핵탄두를 화끈하게 20개면 20개, 30개면 30개 모두 해외 단체를 통해 폐기하거나 국내에서 미국·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국제원자력기구 입회하에 폐기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아주 화끈하게 먼저 해체했을 때 2년 반 내에 비핵화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고 동결-신고-사찰-검증의 과정을 겪으면서 2년 반 내에 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9월26일(현지시간) “우리는 시간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가) 2년이나 3년 아니면 5개월이 걸리든 상관없다”며 시간표 부분에 대해선 어느 정도 유연함을 드러냈다.
문 특보는 이날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있는 미국의 고위직 인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문 특보는 “그는 북한과 미국 사이 신뢰가 없으면 핵 리스트 신고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북미 간 신뢰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플루토늄 60㎏, 고농축 우라늄 10㎏ 핵탄두 30개라고 신고한다면 미국이 당장 반발할 거라는 이야기다. 미국이 추정하는 플루토늄은 7~80㎏이고 고농축 우라늄도 30㎏ 이상, 핵탄두도 65개라는 식으로 나오면 신고 단계 처음부터 싸움이 일어난다. 문 특보는 “그렇기 때문에 북미 충분한 신뢰가 쌓인 가운데 신고와 사찰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면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싸움이 붙으면서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 보상은 3가지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는 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한다. 결국 미국이 그에 따른 보상을 얼마나 해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문 특보에 따르면 북한의 요구는 3개인데, 이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상국가 인정’이다. 첫 번째는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는 정치적 보상이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북한의 유일지도체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북한 사회주의 경제체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북한을 하나의 정치 체제로 인정하게 되면 종국에는 국교수교까지 가능해진다.
두 번째는 군사적 보상 문제다. 북한을 향해 미국의 전략무기를 전진 배치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재래식 군사적 위협도 가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약속도 포함된다. 문 특보는 “군사적 보상의 핵심은 불가침조약이든 서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북한이 가장 바라는 경제적 보상이다. 문 특보는 “북한이 비핵화의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면 그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그것 없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제재 완화가 자체가 상당한 비핵화 유인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 특보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 일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걸 꼽았다. 다만, 여기에는 북한의 변화도 필요하다. 북한이 IMF나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의 일원이 되려면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가 공인할 수 있는 경제 통계를 투명성 있게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문 특보는 “(이것이)제일 중요한 부분”이라며 “IMF나 세계은행과 특정국가에 대해서 경제관계를 맺는 것은 경제데이터, 통계의 투명성과 진실성의 문제다. 북한이 그걸 우선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과정과 북한이 원하는 이러한 인센티브를 같이 놓고 한국·미국·북한·중국이 함께 로드맵을 만들어낸다면 2021년 1월까지 정말 전 세계가 납득할 수 있는 북한 비핵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