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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영국의 EU 탈퇴, ‘노딜’로 가나?…혼돈 속 브렉시트(Brexit)

-1월15일 영국 하원서 사상 최대 표차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
-EU와의 재협상, 제2차 국민투표, 조기 총선 등 거론되지만…‘브렉시트’ 예정일 연장 필요해
-메이 총리 ‘브렉시트 플랜B’ 발표… 英 언론·의회 “사실상 합의안 원안”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벼랑 끝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가 불과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았지만, 영국 정부가 EU와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안’을 둘러싼 영국 주요 정당 간 정치적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영국 하원에서 치러진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가 230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부결됐다. 합의안 부결에 따라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영국 총리는 수일 내에 의회와 EU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정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만약 합의안 수정안마저 영국 하원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조기 총선이나 제2차 국민투표 등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두 시나리오 모두 ‘브렉시트’ 예정일을 올해 3월 29일에서 연기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EU와의 재협상이 필요하지만, EU는 전면 재협상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아무런 합의 없는 EU 탈퇴를 의미하는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면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20조 달러 규모의 EU 경제권이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15일 영국 하원에서 치러진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가 부결됐다. 총 634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합의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찬성하는 사람보다 무려 230명 더 많았다. 영국 의회에서 정부가 200표 넘는 표차로 패배한 것은 1924년 10월 당시 노동당의 램지 맥도널드 총리가 기록한 166표 이후 95년 만에 처음이다.

 

찬성표는 보수당 196표, 노동당 3표, 무소속 3표 등이었고, 반대표는 노동당 248표, 보수당 118표,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제3당) 35표, 자유민주당 11표, 민주연합당(DUP) 10표, 웨일즈민족당 4표, 녹색당 1표, 무소속 5표 등이다. 집권 보수당에서 합의안에 반대한 의원은 118명이었지만, 노동당 내에서 합의안에 찬성한 의원은 3명에 불과했다. 집권 보수당과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DUP도 합의안에 반대했다. 합의안 부결을 우려해 당초 지난해 12월11일이었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를 투표 하루 전 연기한 메이 총리는 의회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부결을 막지 못했다.

 

합의안 부결 직후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 노동당 대표는 정부 불신임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원은 1월 16일(현지시간) 정오부터 정부 불신임안에 대한 토론을 진행해 오후 7시부터 표결에 들어갔다. 정부 불신임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진 것은 1994년 존 메이저 총리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코빈 노동당 대표는 메이 총리에 대해 “역사에 남을 만한 굴욕적인 패배로 통제력을 잃었다”며 조기 총선을 요구했고, 메이 총리는 “EU 탈퇴 여부를 국민에게 물었던 것은 의회인 만큼 이를 마무리하는 것 역시 의회의 의무”라면서 “노동당의 조기 총선 요구는 단결이 필요할 때 분열을 강화하고, 명확성이 필요할 때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표 결과는 찬성 306표, 반대 325표. 19표차 부결이었다. 찬성은 노동당 251표, SNP 35표, 자유민주당 11표, 웨일즈민주당 4표, 녹색당 1표, 무소속 4표 등 야당은 일제히 정부 불신임안에 찬성했다. 반대는 보수당 314표, DUP 10표, 무소속 1표였다.

 

정부 불신임안 부결로 메이 총리는 위기를 넘겼지만,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에서 부결된 만큼 의회와 EU를 모두 설득시킬 수 있을 만한 합의안을 만들어내야 하는 큰 정치적 숙제를 떠안게 됐다. 메이 총리는 정부 불신임안 부결 이후 기자회견에서 “의회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표명한 것에 대해 만족한다”며 “유럽연합을 탈퇴하겠다는 국민투표의 결과를 이행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야당 대표들을 (총리 관저로) 초대하겠다. 오늘 밤(1월16일, 현지시각)부터 브렉시트 대안을 논의하고 싶다”면서 “내일부터 저를 포함한 정부 고위 대표들과 의회 전체로부터 가능한 한 넓은 범위의 견해를 대변하는 모임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도 시간이지만,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있는 상황에서 EU는 고사하고 영국 의회를 설득 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메이 총리 탄핵위기까지 몰아넣은 ‘브렉시트 합의안’

 

‘브렉시트’ 관련 발언이 처음 나온 것은 2013년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는 2015년에 보수당 단독집권하게 되면 영국의 EU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이를 ‘새로운 대(對) EU 관계, 2017년 말 이전 브렉시트 국민투표 실시’로 정리해 2015년 총선 공약집에 실었고, 같은 해 5월 실시된 총선에서 총 650석 중 330석을 확보하며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2016년 6월23일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탈퇴 반대’가 우세할 것이라는 영국 정부의 예상과 달리 탈퇴 찬성(51.9%)이 탈퇴 반대(48.1%)보다 많이 나오면서 브렉시트가 결정됐고, 캐머런 당시 총리는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캐머런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취임한 메이 총리는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했으면 정부의 역할은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선언했고, 영국 정부는 다음 해인 2017년 3월29일 EU의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에 ‘브렉시트’를 공식 통보하게 된다. 이에 따라 리스본 조약 제50조에 의해 ‘브렉시트’ 예정일이 2019년 3월29일로 정해졌고, 2년간의 협정 시한이 발동됐다.

 

리스본 조약은 EU의 정치적 통합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미니 헌법’으로, 2005년 프랑스·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EU 헌법을 대체하기 위해 마련된 개정조약이다. 제50조는 안정적인 탈퇴 절차 진행과 경제·안보 분야에서의 협력, 탈퇴협상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정부와 EU는 브렉시트 전환기간,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북아일랜드 국경문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브렉시트 합의안’과 자유무역지대 구축 등 미래관계 협상 내용을 담은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합의하고 같은 달 25일 서명했다. 그러는 사이 관계 장·차관 6명이 사임하는 등 부침도 적지 않았다.

 

합의안이 하원에서 부결될 것을 우려한 메이 총리는 당초 12월11일이었던 승인투표일을 하루 전인 12월10일 연기했고, 합의안 내용에 반발한 집권 보수당 내 강경파들은 메이 총리에게 브렉시트를 맡길 수 없다며 이틀 뒤인 12일 메이 총리에 대한 재신임(당대표 교체 여부)을 묻는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당대표 교체 반대 200표 대 찬성 117표. 당내 재신임을 확인한 메이 총리는 올해 말까지 총리 자리를 유지하면서 브렉시트를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국경문제와 ‘백스톱(Backstop)’

 

‘브렉시트 합의안’은 ▲전환기간 ▲아일랜드 국경 및 관세동맹 ▲동일규제·공정경쟁 ▲금융시장 등 크게 4가지를 핵심으로 한다. 강유덕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9일 한국무역협회가 개최한 ‘브렉시트 설명회’에서 “전환기간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2020년 12월31일까지 EU 단일시장, 관세동맹에 잔류하며 현행 EU 제도와 규제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것”이라며 “양측이 전환기간에 연장을 희망하면 2020년 7월1일 이전 공동합의에 따라 한 차례 최대 2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영국은 EU를 탈퇴했기 때문에 EU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브렉시트가 이뤄져도 경제에 있어서 영국과 EU의 관계는 이후 2년간 사실상 변화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국경문제와 이에 따른 ‘백스톱(Backstop)’ 이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하나의 섬 안에 있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다. 지금은 영국이 EU 회원국이기 때문에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에 제품 및 인력의 이동 자유가 보장돼 있지만,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양측 사이에는 국경이 발생하게 된다.

 

‘백스톱’은 브렉시트가 이뤄졌을 때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생기는 국경으로 인한 ‘하드 보더(Hard Border)’ 문제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합의안은 ‘백스톱’이 한번 발동되면 EU의 동의 없이 영국이 일방적으로 종료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했다. ‘하드 보더’는 국경관리들이나 경찰 또는 군인 등이 주재하면서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물리적 인프라가 있는 국경을 말한다. 영국산 제품이나 인력이 북아일랜드를 통해 아일랜드로 이동하고자 할 때 아일랜드 측에서 이를 검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강 교수는 “2020년 전환기간이 종료되기 전까지 영국과 EU가 별도의 ‘포스트 브렉시트’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지 못할 경우에 발동됨으로써 영국 전체가 한시적으로 EU 관세동맹에 잔류하게 되는, 2021년 1월부터의 상황”이라면서 “‘안전장치(백스톱) 가동 중에 영국은 EU의 여러 가지 분야의 규제와 동등한 규제를 유지하고, 그 기준을 완화할 수 없다’고 합의안에 돼 있다. 이것에 대해 보수당 의원들은 ‘굴욕이다’, ‘독자적인 규제주권의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이 총리에 대한 재신임 투표에서 찬성 117표, 합의안 승인투표에서 보수당의 반대가 118표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EU 시장 접근성, 정책 자율성·규제주권 회복 원하는 영국

…EU “명확하게 하나만 선택하라”

 

관련해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의 관계는 다섯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유럽경제지대(EEA, European Economic Area) 모델 ▲스위스 모델 ▲양자 간 포괄적 FTA ▲터키 모델 ▲WTO 모델이 그것이다.

 

EEA 모델로 갈수록 EU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WTO 모델로 갈수록 EU 시장에서 멀어지게 된다. 강 교수는 “EEA 모델은 EU 회원국에 준하는 지위를 갖게 되기 때문에 EU 회원국은 아니더라도 EU 시장 접근성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지만, EU의 규제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영국이 원하는 규제주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라면서 “WTO 모델은 규제주권을 전면적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EU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EEA 모델과 WTO 모델의 중간 정도의 형태로 EU와의 관계 정립을 희망한다. 즉, EU 시장에 최대한의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율적인 정책·규제주권의 회복을 바라는 것이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 초반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으로부터 탈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영국은 EU와 기본협정을 체결해서 그 안에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협력 의제를 놓고 공동 의원회를 구성해 문제들을 논의해 나가는 한편, 민감한 주체에 대해서는 별도의 양자협상을 체결해서 개별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시장 접근성을 유지하고, 자율적인 정책과 규제주권을 회복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EU는 이런 영국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양측 관계를 단일 모델로 정해야지, 영국이 자율적인 정책·규제주권을 가지면서 EU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허용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탈퇴비용을 높여야 제2의 영국과 같은 국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이유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브렉시트’는 ‘노딜 브렉시트’는 안 된다는 공감대만 형성됐을 뿐 영국 내에서도 합의안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향후 EU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뭔가 정해진 것이 없다. 향후 EU와의 관계 정립은 고사하고, 영국 정치권 내에서의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브렉시트’ 예정일인 3월29일을 연장할 필요성이 제시되지만, 메이 총리는 이를 일축했다.

 

 

브렉시트 예상 시나리오 ① - EU와의 재협상 추진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영국이 브렉시트로 가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EU와의 재협상 추진 ▲제2차 국민투표 ▲조기 총선 등 크게 3가지다. 다만, 영국 정치적 상황과 EU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어떤 경우도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먼저, 영국은 ‘백스톱’ 기한 명시 등을 놓고 EU와 다시 한 번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백스톱’은 전환기간 이후에도 영국과 EU의 관계가 정립되지 못하면 발동되는 것으로, 그 기한에 대해 ‘일시적’이라고 표현했을 뿐 정확하게 기간을 설정하지 않았다. 또한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를 종료하기 위해서는 EU 전체의 동의가 필요하고, ‘백스톱’ 가동 중 영국은 각 분야에서 EU의 규제를 수용해야 한다.

 

합의안에 반대하는 보수당 내 강경론자들은 이 부분을 문제 삼기 때문에 메이 총리는 이를 수정함으로써 이들이 합의안에 찬성하도록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백스톱’ 기한 등을 두고 EU와 재협상을 해 EU와 반대파 의원들의 입장을 모두 담은 수정안이 마련된다면 기존 합의안에 반대했던 118명의 보수당 의원들의 표를 찬성표로 바꿀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하원의 합의안 승인에 필요한 과반인 320표를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관련해서 메이 총리는 의회의 정부 재신임 확인 이후 각 당의 지도부와 함께 합의안 통과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통해 EU와 협상이 가능하면서도 의회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안이 도출되면 EU와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의회 의사일정안 개정안’을 존중해 승인투표 부결일로부터 3개회일 이내인 21일까지 ‘플랜B’를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EU는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영국 하원에서 합의안이 부결된 이후 EU는 영국에 대해 잔류를 촉구하는 한편,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투스크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협상이 불가능하고 아무도 ‘노딜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는다면 누가 긍정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말할 용기를 가질 것인가?”라며 영국의 EU 잔류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투스크 의장 대변인은 “영국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다음 단계 조치에 대해 명확하게 할 것을 촉구한다”며 “EU 27개 회원국은 단합해서 브렉시트로 인한 손실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영국이 EU를 혼란스럽게 떠날 위험이 더 커졌다”면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 만큼 EU 집행위원회는 EU가 (노딜 브렉시트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비상계획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렉시트 예상 시나리오 ② - 제2차 국민투표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영국 국민에게 ‘브렉시트’에 대해 다시 한 번 묻는 것이다. 국민투표를 통해서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만큼 국민 의사를 다시 한 번 물어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만약 ‘EU 잔류’로 결과가 나온다면 상당한 정치적 명분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복잡성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해 12월10일 유럽사법재판소(ECJ, European Court of Justice)는 ‘올해 3월29일 전까지 내지는 영국이 EU로부터 탈퇴하기 전까지 탈퇴 의사를 밝히면 일방적으로 브렉시트는 없던 것이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며 “영국이 탈퇴 의사를 밝혔을 때 다른 EU 회원국들의 동의는 필요가 없다. 영국이 ‘안 나가기로 했어, 마음 바꿨어’ 하면 그날로 2년 동안의 복잡성이 없었던 일이 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단, 여기에는 ‘탈퇴 의사는 무조건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영국 국내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딱 맞는 것이 국민투표다.

 

그렇다면 ‘바로 국민투표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제2차 국민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하원에서 이를 결정하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여기에는 합의안 통과 때와 같은 320표가 필요하다.

 

전 교수는 “자유민주당(11석), SNP(35석)은 제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고, 노동당(257석)도 조기 총선이 실패하면 국민투표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다 합쳐도(303표) 여전히 320표가 안 나온다”며 “제2차 국민투표 투표일은 탈퇴일을 한참 넘긴 6월 20일경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EU에서 만장일치로 협상기간을 연장해줘야 한다(리스본 조약 제50조)”고 지적했다. 국민투표는 정치적으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만큼 투표 질문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와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등 일반적으로 22주가량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만약 EU가 ‘브렉시트’ 날짜를 연장해줘 국민투표가 가능하게 됐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지난달 6일 유고브(Yougov)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EU 잔류를 원한다’는 응답은 46%였고, ‘EU 탈퇴를 원한다’는 응답은 39%, 나머지 15%는 ‘모른다·무응답’이었다. 2016년 국민투표 결과와 비교해보면 ‘EU 탈퇴’ 의견이 11.9%p 줄기는 했지만,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다. 전 교수는 “잔류와 탈퇴가 7%p 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모른다’는 사람이 15%나 되기 때문에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예상 시나리오 ③ - 조기 총선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선택지는 조기 총선이다. 조기총선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의회에서 정부 불신임안이 통과되고, 14일 내에 새로운 내각을 구성한 후 이에 대한 신임안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조기 총선을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하원 재적 의원(650명)의 3분의 2가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는 안을 통과시키면 되는데, 434표가 필요하다.

 

전 교수는 “조기 총선은 하원 해산 이후 최소 25회기일이 법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빨리 실시하면 올해 3월7일 정도에 실시할 수 있을 것이나 조기 총선에 가장 적극적인 노동당과 SNP, 자유민주당을 합쳐도 434표도 안 되고 320표도 안 된다”면서 “3월7일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고 해도 하원 구성과 정부 구성 등에 필요한 시간을 생각하면 3월29일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여전히 EU의 협상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조기 총선을 한다고 해도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당이 나올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조기 총선 이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전 교수는 “지금의 문제도 보수당이 나눠져 있고, 어느 당도 과반의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는데,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고 해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며 “317석이었던 보수당은 291석으로 의석수가 줄 것으로 보이고, 노동당은 257석에서 조금 오른다. 결국 현재와 똑같이 어느 당도 과반의석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렉시트’ 연기?…시기가 안 좋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8일 ‘해외경제 포커스’에서 ‘EU측 인사는 승인투표 부결에 대비해 탈퇴일 연기(최장 7월)를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는 같은 달 13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을 인용하며 “어떤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탈퇴예정일까지 명확한 결론 도출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시장에서는 영국이 리스본 조약 제50조에 의거, 탈퇴일 연기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 및 보수당 강경파를 제외한 대다수 의회 의원, EU 측 모두 ‘노딜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고, 조기 총선이나 제2차 국민투표를 위해서도 탈퇴일 연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 따르면 ‘노딜 브렉시트’는 2023년까지 영국의 GDP 성장률을 최대 7.75% 떨어뜨리고, EU 27개 회원국은 향후 2~3년간 GDP의 0.8~1.0%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올해 EU 의회 일정을 들어 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5월23~26일로 예정돼있는 EU의회 선거와 원 구성 및 회기 시작(7월2일), EU 집행위원 선출(11~12월 완료), EU 예산 결정 등을 감안하면 탈퇴일 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 교수는 “EU의회 선거 때도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는다면 영국도 EU법상 EU의회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 영국의 EU의회 의원 수는 73석인데, 만약 영국이 나간다고 하면 27석은 EU 회원국에 재배정되고 나머지 46석은 소멸된다”면서 “만약 영국이 6월 정도에 국민투표를 한다면 영국의 의석을 받은 27명의 의원들은 의원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원 구성 및 회기 시작 이후로 탈퇴일이 연장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짙어지는 ‘노딜 브렉시트’…메이 “합의안 통과가 ‘노딜’ 피하는 길”

 

영국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거부되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결국 영국이 가게 될 길은 최악의 시나이로 꼽히는 ‘노딜 브렉시트’다.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영국 하원의 첫 승인투표가 부결된 이후 메이 총리는 1월 21일 ‘브렉시트 플랜B’를 공개했지만, 의회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노동당 등 야당이 요구한 ‘노딜 브렉시트 배제’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고, ‘백스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브렉시트 합의안’ 원안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플랜B’를 발표하면서 “브렉시트 관련 논의가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지만, 코빈 대표는 “메이 총리는 합의안을 거부한 의회의 결정을 수용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플랜B’를 발표하면서 ‘백스톱’에 대해 의원들과 더 많은 논의를 갖고 그를 토대로 EU와 재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의회의 발언권을 확대하고, 협상 내용을 의회와 신속하게 공유하겠다고도 했다. 또한 노동당의 요구를 수용해 브렉시트 이후 노동자들의 권리·환경보호·환경 기준 등을 강화하고, 영국에 계속 거주하기를 바라는 EU 시민들에게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던 방안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합의안 거부의 핵심인 ‘백스톱’과 관련해서는 “의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며 기존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하라”는 코빈 대표의 요구에 대해서는 “EU와의 합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이야말로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강조했고, 브렉시트 예정인 연기와 관련해서는 “영국에서 탈퇴방안이 확립되지 않으면 EU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향후 한-EU·한-영 FTA 개정 및 체결 이슈 발생

 

향후 한-EU, 한-영간에는 FTA 개정 및 체결 이슈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 교수는 “‘노딜 브렉시트’를 피한다는 전제 하에 ‘브렉시트’가 일어나도 2020년 12월까지는 영국이 EU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한국과 EU간 관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한-EU FTA가 발표된 지 7~8 년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개정에 대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U와 한국이 여러 가지 개정 요구를 산발적으로 교환했었는데, 그것들에 대한 논의가 비공식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는 FTA 필요성이 계속 언급됐었지만, 영국이 EU 회원국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협상을 시작되지 않았다. ‘브렉시트’가 된다면 이를 위한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영국은 EU의 기체결된 FTA를 그대로 물려받기를 원한다.

 

강 교수는 “특히, EU산 물품들을 영국산으로 인정받는 ‘유사누적조항’을 한-영 FTA에 관철시키려 할 것”이라면서 “‘유사누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로컬 콘텐츠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우리 측에 요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EU는 한국에 비해 경제 규모가 14배 더 크지만, 영국은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20~30% 정도 더 크다. 그렇다면 EU한테 열어줬던 한국 시장을 그대로 영국에게 열어줄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 체급이 같으니까 어느 정도 영국에게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실리적 접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한다면 EU 및 영국과 통상관계를 맺었던 기업들의 통상환경은 상당한 변화를 맞게 된다.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전환기간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영국은 그야말로 제3국이 된다. 한-EU FTA의 적용을 받지 않고, WTO 체제에 편입된다. 따라서 관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이 부과돼 기업들의 비용이 증가하게 돼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연결되고, 새로운 통관절차의 적용을 받게 됨에 따라 수출·입 지연으로 인한 각종 부품 및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영국이 EU 회원국이었을 때 받았던 통상 관련 인증·승인·면허도 다시 받아야 할 수도 있다.

 

 

한편, 지난 1월29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테레사 메이 총리가 제시한 ‘플랜B’와 관련해 하원의원들이 제출한 수정안 7건 중 보수당 평의원 모임인 ‘1922 위원회’ 그레이엄 브래디 의장이 제출한 수정안이 찬성 317표, 반대 301표로 가결됐다. 이 수정안은 ‘백스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메이 총리는 해당 수정안이 가결되자 ‘브렉시트 합의안’의 의회 통과를 위해 EU와의 재협상에 나서 ‘백스톱’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EU는 여전히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 브렉시트 예정일까지 불과 두 달여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노딜 브렉시트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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