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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기생충’] 무엇이 우리를 ‘무계획이 계획’인 삶으로 몰아넣었나?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세상에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이 영화는 자본주의가 낳은 사회적 계급과 거기에서 오는 모순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수직적 이미지와 공간의 대비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낸다. 피라미드형 사회적 구조 속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그격차는 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 없는 것이 돼 버렸다. 부자가 되기 위해, 사회적 계급 상승을 위해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 그래서 그런지 기택은 기우에게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라며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이라고 말한다.

 

※ 이 기사는 영화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옥자’ 이후 2년 만에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신작 ‘기생충’. 6월19일 기준 864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좀처럼 만날 일이 없는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이 우연한 기회에 만나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신(新) 계급사회의 가족 희비극’이다. 영화는 자본주의가 낳은 피라미드형 사회적 계급, 빈부격차, 최상위 계층의 허영, 최하위 계층의 절망 등 여러 겹으로 겹쳐진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반지하’, ‘계단’, ‘비’, ‘냄새’, ‘지하철’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로 꼬집는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전원 백수다. 동네 피자가게의 박스를 접어주고 일당을 받는 것이 유일한 소득. 그런 가족에게 어느 날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 분)의 친구인 민혁(박서준 분)이 찾아와 자신이 하고 있던 부잣집 딸(다혜, 정지소 분) 영어 과외 자리를 기우에게 넘겨준다. 수능을 4번이나 봤지만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기우는 민혁이 소개해 준 과외 강사를 하기 위해 대학 재학증명서까지 위조한다. 그러면서도 “저는 이게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내년에 이 대학에 꼭 갈 거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런 기우에게 기택은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며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칭찬한다.

 

 

 

위조한 대학 재학증명서와 함께 자신을 ‘캐빈’이라고 소개한 기우는 집안의 안주인인 연교(조여정 분)와 마주한다. 그 자리에서 연교는 민혁이 과외를 그만두는 데 아쉬움을 표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나 다혜 만족도가 높았거든, 아이 성적하고는 별개로.”

 

기우가 가진 계획이 이것이었을까? 기우가 다혜의 영어 과외 강사가 된 이후 박 사장의 가족을 수행하던 사람들은 모두 기택의 가족들로 바뀐다. 첫 과외를 마치고 나온 기우에게 연교는 막내아들인 다송(정현준 분)이 “완전 예술가 체질”이라며 그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기우는 “진짜 상징적이다. 진짜 센데요?”,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이해를 못 하는 거지, 다송이의 이 천재적인 감각을”이라며 맞장구치고는, 이 예술적 감각(?)을 키워주고 싶어 하는 연교에게 사촌의 과 후배라며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응용미술과를 다녔다는 제시카를  송의 미술 과외 강사로 슬쩍 소개한다. 그가 말한 제시카는 친동생 기정(박소담 분). 기정은 “인터넷에서 미술치료 검색한 것, 설 좀 풀었더니” 연교를 만족시켰고, 다송의 미술 과외 강사가 됐다.

 

 

 

이런 식으로 기택네 가족은 박 사장 가족의 주변 인물들을 한 명씩 자기 식구들로 갈아치운다. 기정은 박 사장의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자신의 속옷을 벗어 차 안에 숨겨 박 사장의 운전기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큰 아빠 댁에서 일했던, 제가 삼촌, 삼촌하며 따랐던 김 기사님”이라며 기택을 소개, 그가 박 사장의 운전기사로 일할 수 있게 한다. 문광에 대해서는 그가 복숭아 알러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이용, 그에게 알러지를 유발하는 한편, 연교에게는 그가 결핵에 걸린 것 같다고 속여 내쫓고는 그 자리에 충숙(장혜진 분)을 앉힌다. 이로써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의 집에서 ‘기생’하게 된다.

 

어느 날 다송의 생일을 맞아 박 사장의 가족이 캠핑을 떠나게 되자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의 집이 마치 자신들의 집인 마냥 먹고 마시며 최상위 계층 삶의 달콤함에 빠진다. 하지만 달콤함도 잠시, 갑작스러운 문광의 방문으로 기택의 가족은 그 집 지하벙커에 문광의 남편인 근세(박명훈 분)가 무려 4년 3개월 17일 동안이나 숨어 살았던 사실을 알게 되고, 문광과 근세는 기택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캠핑을 떠났던 박 사장의 가족마저 폭우 때문에 계획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영화는 급격히 반전된다.

 

피라미드형 사회적 계급…·좁혀지지 않는 계급 간 격차

 

영화는 기택의 반지하 집과 박 사장의 저택, 계단과 비 등을 이용해 끊임없이 수직적 이미지와 ‘위·아래’ 두 가지 공간을 분리, 비교해 보여줌으로써 피라미드형 구조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계급과 계급 간 좁혀질 수 없는 격차를 표현했다.

 

 

‘반지하’ 집에 사는 기택의 가족은 술에 취해 노상방뇨하는 사람들의 모습마저 ‘올려봐야 하는’ 사회적 계급과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대표한다. 반면, 오르막길을 한참 오른 후에도 계단을 한 번 더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저택에 사는 박 사장 가족은 사회의 최상위 계급에 속한다. 그들은 높은 곳에 살면서 바깥세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자신과 고용-피고용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일종의 ‘노예 관계’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정이 박 사장의 운전기사를 내쫓기 위해 차에 자신의 속옷을 숨겼고, 박 사장이 그것을 발견한 후 집에 들고 와 연교에게 보여주자 연교는 “어떻게, 주인님 차에서”라고 말한다.

 

 

다송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캠핑을 떠났던 박 사장 가족이 갑작스럽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숨기 바빴던 기택과 기우, 기정이 우여곡절 끝에 박 사장의 집에서 빠져나와 폭우를 뚫고 반지하 집까지 가는 장면은 사회적 계급 간 격차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끊임없이 내려가는 계단의 연속이다. 여기에 세차게 내리는 비는 하강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기택 가족이 피라미드형 사회적 계급의 가장 아래 있는 것처럼 그칠 줄 모르고 내리던 비는 기택의 가족이 살고 있는 반지하 촌에 떨어져 그들의 집을 집어삼키고 생활 터전을 파괴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박 사장의 집에서 최상위 계급의 생활을 영위하다가 그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물에 잠긴 집에서 집기류 몇 가지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 가는 기택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를 겪으면서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반지하 가구에 대한 통계조차 없었을 정도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회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있었다. 그들이 주목받게 된 것은 2001년 7월 홍수가 일어나면서부터다. 당시 홍수로 수도권 주택 9만2,000여 가구가 수해를 당했는데, 그중 80%가 반지하 가구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5년, ‘반지하’ 항목이 통계 항목으로 등장했다.

 

그 이후로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반지하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삶은 열악하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하 가구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가격 때문.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가면 갈수록 더 단단해지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처럼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져 종국에는 땅 밑에서 살아야 하는, 계급 간 격차가 더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같은 계급에 속해 있다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계급 간 격차뿐만 아니라 영화는 기택의 가족과 문광·근세를 통해서 같은 계급에 속해 있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닌 현실을 꼬집는다.

 

기택과 근세는 모두 2016년 하반기에 갑작스럽게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만식 카스텔라’ 프랜차이즈에 뛰어들었다가 망한 인물로 설정돼 있다. 기택의 경우에는 그 전에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다가 망하기도 했다. ‘대만식 카스텔라’는 한 종편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제기된 이후 ‘살충제 계란 파동’까지 겹치면서 프랜차이즈에 뛰어들었던 수많은 소시민들은 실패와 몰락을 경험하게 됐다. 그것은 곧 유행하는 프랜차이즈나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기를 반복하는 현실 속 소시민들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택은 망한 후에 청담동에서 대리주차(Valet parking) 일을 하면서 실패를 어느 정도 수습한 반면, 근세는 사채까지 끌어 쓰다가 사채업자들에게 쫓겨 결국에는 지하실에서 숨어 사는, 빛을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신세가 됐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현실 속에 안주해버린 소외계층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박 사장 가족이 속해 있는 최상위 계급도 마찬가지다. 박 사장의 집에서 주로 2층에서 생활하는 다혜, 다송은 박 사장 부부가 떠받드는 존재고, 부부 사이에서 연교는 남편인 박 사장에 대해 “그분”이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상위 계급의 ‘허영(虛榮)’, ‘기생’을 허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택의 가족과 문광의 가족이 박 사장네와 같은 최상위 계급에 ‘기생’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공생’이고 ‘상생’일지도 모르겠다. 이를 위해 기택은 30년 이상 CEO나 기업대표를 모셔온 베테랑 운전기사로, 충숙은 VIP 대상 베테랑 인력 소개업체로부터 소개받은 베테랑 가사도우미로, 기우는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캐빈’으로, 기정은 일리노이 주립대학 응용미술학과 출신 ‘제시카’로 보기 좋게 스스로를 포장한다. “경비원 한 명만 뽑아도 대졸자, 4년제, 500명씩 몰려드는 시대”에 ‘격(格)’을 따지는 그들의 허영심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리라.

 

 

최상위 계급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이 정도 재산과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은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 몇몇은 부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연교는 기존에 주변에 있던 인물들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서 “믿는 사람 소개로 연결, 연결. 이게 베스트인 것 같아요.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라고 말한다. 믿을 만한 사람들로부터 일종의 ‘검증’이 된 사람을 소개받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기정에게 ‘김 기사’를 소개받으며 ‘믿음’을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 가족에 기생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그 ‘믿음’이라는 것은 자체로 ‘위선’이고 ‘거짓’이다.

 

믿는 사람에게 소개받은 사람을 쉽게 바꾸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박 사장 가족과 같은 최상위 계급 입장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굳이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박 사장의 말처럼 문제가 생기면 “격 떨어지지 않게 적당한 핑곗거리 만들어서 조용히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구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일할 사람은 많으니까.”

 

 

그들 속에서 ‘기생’하지만, 숨길 수 없는 ‘냄새’

 

박 사장이라는 기생하기 좋은 숙주를 통해 기택의 가족은 피라미드형 구조 최상위 계급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박 사장 가족이 집을 비운 날, 기택 가족은 박 사장 집 “거실 복판에서 술도 잔뜩 마시면서” 최상위 계급의 생활을 만끽한다. 최상위 계급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기택 가족은 박 사장 집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원래부터 내 집이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기택은 “여기가 지금 우리 집이야, 아늑하잖아”라고 말하며, 쫓겨난 박 사장의 전 운전기사 걱정까지 한다. 그러나 기정은 “우리는 우리가 제일 문제잖아. 우리 걱정만 하면 되잖아. 아빠, 우리한테 집중 좀 해줘. 제발 좀”이라고 투덜대고, 충숙은 “이러다가 갑자기 박 사장이 딱 들어온다 쳐 봐. 바퀴벌레처럼 샤샤샥 숨겠지? 왜, 형광등 밤중에 켜면 바퀴벌레들이 쫘악 숨는 거”라며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自嘲)한다.

 

영화는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 가족과 가깝게 생활하지만, 절대로 그들과 섞일 수 없음을, 그들이 속한 계급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기택의 가족한테는 그들에게서는 나지 않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택의 가족을 반지하 집으로 내몰고, 거기에 살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가 그들에게 입혀놓은 것이다.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 기택과 충숙은 고민하지만, 기정은 “반지하 냄새야. 이 집을 떠나야 냄새가 없어진다고” 일갈한다.

 

그래서 박 사장 부부는 자신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가 ‘불쾌하다’. 박 사장은 연교에게 그 냄새에 대해 “냄새가 차 뒷자리로 ×× 넘어와.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어. 지하철 타는 놈들 특유의 냄새가 있거든”이라고 말한다. 연교는 다송의 생일 파티를 위해 장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택의 냄새에 싫은 티를 대놓고 낸다.

 

또 지하벙커를 벗어난 근세는 기정을 칼로 찌르는 등 다송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을 향해 칼부림을 하다가 기정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충숙이 휘두른 바비큐 꼬치에 옆구리를 찔리고 쓰러진다. 그 사이 박 사장 부부는 근세의 기괴한 몰골을 보고 경기를 일으킨 다송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기택에게 차 키를 던지라고 소리치는데, 갑작스러운 칼부림과 기정이 칼에 찔린 것을 보고 멍해진 기택은 박 사장을 향해 차 키를 던지지만, 차 키는 근세 옆에 떨어지고 만다. 다급한 박 사장은 차 키를 줍기 위해 근세에게 다가가는데, 순간 멈칫하며 코를 막는다. 근세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이다. 그것은 기택과 같은 사회적 계급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최상위 계급의 무시 혹은 업신여김, 낙인이다. 그동안 박 사장 부부의 그런 무시 혹은 업신여김을 인내해왔던 기택은 박 사장의 모습을 보고 순간 이성을 잃고 그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는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달 6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냄새’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에 대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이 사실 보통 밀접하지 않고서는 힘들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움직이는 동선을 보면 사실 많이 안 겹친다. 항상 공간적으로 나눠진다”며 “이 영화는 주인공 아들이 과외선생으로 처음 부잣집에 들어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되게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하는 이야기다.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하면 몸에서 땀 냄새가 나기 마련이듯이 냄새라는것은 사람의 당시 상황이나 형편이나 처지를 드러낸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데, 그것이 붕괴되는 어떤 순간 같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관심 속 아귀다툼

 

박 사장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달콤한 최상위 계급의 생활을 즐기던 기택의 가족 앞에 갑작스러운 문광의 등장과 그의 남편인 근세가 박 사장의 집 지하벙커에 4년 3개월 17일 동안이나 숨어있었다는 사실은 기택 가족을 현실로 소환한다. 기택 가족에게 “꿈 깨”라는 호통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모습을 기택 가족과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문광은 자신이 박 사장의 가사도우미 자리에서 쫓겨나 남편 근세를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됐지만, 충숙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존재를 공개한다.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언니야. 저희는 불우해요. 저희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빚만 있어요”라며 근세가 지하벙커에 계속 머무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하지만, 충숙은 매몰차게 거절한다. 지금 숙주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들이 마치 문광·근세와는 다른 계급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은 착각 때문이리라. 하지만 곧 상황을 지켜보던 기택과 기우, 기정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문광과 근세는 기택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둘의 입장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결국 두 가족은 하나의 숙주를 온전하게 차지하기 위한 혈투를 펼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문광은 계단에서 굴러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박 사장의 가족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른다. 어쩌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고장 난 듯 깜빡거리기 현관 센서등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지하벙커에 살고 있는 근세가 현관 센서등 스위치를 조작해 자신에게 계속 먹을 것을 주는 박 사장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스부호였다. 하지만 연교는 집 현관 센서등이 제멋대로 켜졌다가 꺼지는 것을 보고 “쟤는 어째, 센서가 제멋대로야” 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센서등을 고치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도 않고, 집안을 관리하는 것은 자신의 관심사 아니기 때문이다. 즉,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취약 계층의 절규,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나타내는 장면이다. 그래서 지하벙커에서의 기택 가족과 문광·근세의 싸움은 세상은 모르는 혹은 관심 없는,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바꾸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는 ‘아귀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무계획이 계획”…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불과 20여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이웃끼리 정을 나누고, 서로를 생각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살펴주는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심지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 돕는 사람을 돕는 것은 사치스러운,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 자기 먹고 살기 바쁘고, 자기를 꾸미는 데 매몰됐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고 부유해지는 것이 최고의 가치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 따위는 없다. 여기에 더 높은 곳에 올라야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의 시스템은 모든 가치의 중심을 ‘자기’, ‘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은 기대하기 어려운, 삭막한 세상이 됐다. 그나마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돈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계승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그래도 위로 올라가 보겠다며, 아니면 더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여러 계획을 세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 실패하기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결국에는 지쳐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근세는 사채까지 끌어 쓰다가 사업을 잘 이끌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하면서 지하벙커로 숨어든 인물이다. 그가 실패를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고, 실패한 이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도 여러 계획을 세웠을 것이지만, 결국은 실패해 지금의 현실 속에 안주하게 됐다.

 

기택도 마찬가지다. 문광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도망치듯이 박 사장의 집에서 빠져나와 폭우를 뚫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떻게 할 거야? 계획이 뭐냐고?” 묻는 기정에게 기택은 “생각이, 계획이 다 있다”며 기정을 타이르지만, 사실 그에게는 계획이 없다. 수해를 당한 주민들이 모여 있는 체육관에서 기택은 기우에게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여기도 봐봐.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 떼거리로 체육관에서 잡시다’ 계획을 했었겠냐? 근데 지금 봐, 다 같이 마룻바닥에서 쳐 자고 있잖아? 우리도 그렇고”라면서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 계획이 없으니까 뭐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상관없는 거야.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 다 상관없다 이 말이지”라고 말한다.

 

기택의 가족 역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박 사장 가족 주변 인물들을 모두 자기 식구들로 갈아치우고 기생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에는 실패한다. 이처럼 영화는 사회적으로 좀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려는 등장인물들의 계획이 실패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개인의 노력으로는 사회적 계급을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우는 또 계획을 세운다. 기우는 다혜로부터 다송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아 박 사장의 집에 들어가면서 민혁이 자신에게 영어 과외 자리를 넘겨줄 때 선물한 수석을 들고 간다. 근세를 죽여 자신이 박 사장의 집에 과외 강사로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 모든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다. 기우는 수석을 들고 근세가 있는 지하벙커로 조심스럽게 이동하지만, 도중에 들고 있던 수석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게 되고, 근세는 그 수석으로 기우의 머리를 내려친다.

 

또 박 사장을 죽인 기택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다가 지하벙커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기택에게 쓴 편지에서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라며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기우는 돈을 얼마나 벌어야 그 집을 살 수 있을까? 그 돈을 버는 데 과연 얼마나 걸릴까? 벌 수나 있을까? 또 한 번의 실패가 예상되는 계획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씁쓸해진다.

 

그렇다고 무계획이 좋은 것도 아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일단 지하벙커로 몸을 피한 근세가 무려 4년 넘는 시간동안 그곳에 안주하게 된 것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숙주인 박 사장을 기생충인 기택이 칼로 찌르는, 일종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한 것도, 지하벙커로 숨어 들어간 것도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에 대한 우발적인 선택이다.

 

눈 가린 포스터…‘겉모습’이 ‘능력’인 사회

 

관련해서 영화 포스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스터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눈이 모두 가려져 있다. 이런 모습은 영화 속에서도 나오는데, 기택은 체육관에서 계획은 묻는 기우의 질문에 눈을 가린 채로 답한다. 그런가 하면 근세가 내려친 수석에 머리를 맞고 정신을 잃은 기우는 다혜 덕에 병원으로 옮겨진 후 뇌수술을 받고 한 달 만에 깨어난다. 그리고 처음 본 얼굴이 “전혀 형사같이 안 생긴” 형사와 “의사같이 안 생긴 의사”였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 같은 설정과 대사를 통해서 그 사람의 능력 자체가 아닌 겉모습, 스펙이 그 사람의 자격을 결정하는, 사회가 입혀놓은 ‘냄새’가 능력의 평가 기준이 된 사회를 비판한다. 수석도 마찬가지다. 그저 돌일 뿐인데, 특이한 문양이나 형태, 색깔 등에 따라 사람들은 ‘산수경석’, ‘색채석(色彩石)’, ‘문자석(文子石)’ 등의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부여한다. 기우나 기정의 경우를 봐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학벌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들에게 약점이 됐고, 충숙은 한 때 촉망받던(사진과 메달을 봤을 때) 헤머 던지기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반지하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회가 원하는 겉모습과 스펙을 갖추지 못한 힘없는 개인은 더 나은 삶을 살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근세가 지하벙커 생활이 만족스럽기라도 한 듯 박 사장을 향해 “리스펙트!”를 외치며 현관 센서 등을 이용해 그들은 전혀 눈치 챌 수 없는 모스부호로 감사를 표하고, 기택과 처음 마주했을 때는 “난 그냥 여기가 편해. 아예 여기에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결혼식도 여기서 한 것 같고. 그래서 말인데, 나 여기 계속 좀 살게 해주쇼”라고 부탁까지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간극 극복할 수 없는 현실 씁쓸

 

영화의 제목인 ‘기생충’은 돈이 전부가 돼 버린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겉모습을 가지지 못해 점차 아래로 밀려 결국에는 땅 밑으로 들어가 살게 된 사회 최하위 계급이 사회 최상위 계급을 위해 일하는 현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 기생인 이유는 사회 최상위 계급이 자신들의 부와 권위, 거기에서 오는 행복을 아래와 나누지 않은 채 더 키워가기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간극은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피라미드형 사회적 계급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기택의 반지하 집 천장에 매달려 있는 양말을 한참 비추며 문을 연다. 깨끗하게 빨린 양말은 천장에 매달려 반지하 집에 얼마간 들어오지 않는 햇빛에 몸을 말리며 ‘쓰임’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쓰임이라고 해봐야 사람의 신체 중 가장 아래에 있는 발에 신기는 것뿐. 아무리 스펙을 쌓고 겉모습을 훌륭하게 해도 결국에는 사회 최상위 계급의 밑이고, 그 간극을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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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대 정원 확대는 불변”... 의협 차기회장 “대정부 강경투쟁”
대한의사협회가 임현택 차기 협회장을 중심으로 대정부 강경 투쟁에 나설 전망인 가운데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의료 정상화의 필요조건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7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27년 만의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정상화를 시작하는 필요조건”이라며 “의대 정원을 늘려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 수를 확충해야한다" 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의사들은 갈등을 멈추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의료 정상화 방안을 발전시키는데 함께 해달라"고 말하며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복귀하도록 설득해주고 정부와 대화에 적극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데. 그런 가운데 정부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와 군의관 200명이 현장에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한편,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 당선인은 "전공의 등이 한 명이라도 다치면 총파업을 하겠다"며 강경대응 입장을 굽히지 않아 의정 간 갈등이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26일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임현택 회장의 임기는 오는 5월 1일부터지만,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반발해 꾸려진 의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