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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정한용, "그냥 사람이 좋아요"

그에게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냥 행복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만난다. 그런 그를 두고 인맥이 넓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매일 누군갈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게 좋고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고 사람을 만난다는 탤런트 정한용. 몇 번의 약속을 미뤄서 만남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포근한 이미지에 구수한 목소리의 주인공 대한민국의 편안한 남자 정한용을 만났다.


1980년대 탤런트로 데뷔한 정한용은 ‘보통사람들’ ‘욕망의 문’, 그리고 ‘하얀거탑’ 등의 드라마를 비롯해 ‘맥베스’, ‘주노와 공작’, ‘꿀맛’, ‘굿닥터’, ‘호랑이 아줌마’ 등 연극 무대에서 눈부신 활동을 해왔다.


"요즘은 많이 바쁘네요. 내가 원래 쓸데없이 일을 많이 해요. 또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최근 개국한 산업TV에서 MC도 보고… 또 드라마제작사에서 회장직도 맡고 있어요. 아 그러고 보니 또 하나가 더 있네. 경상영상위원회 위원장도 겸직하고 있고…." 최근의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바쁜 일정을 한참이나 소개했다.


미니시리즈를 준비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요.


"제가 경남영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냐면 경상남도의 영상문화예술을 진흥시키고 영상산업을 발전시켜 경상남도를 영상 관광지역으로 육성시키기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인데 속을 들여다보니까 내용이 형편없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왜냐면 도에서 예산을 조금 지원해주면 뭐 그렇게 보고서를 쓰는 게 많은지 도통 일이 진행되질 않아요. 이러다 아무 일도 못하겠다 싶어서 위원회 자체적으로 예산을 만들기로 하고 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기초단체에서 보조금을 조금씩 받아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는 여기와 관련해서 미니시리즈를 하나 기획하고 있어요. 내용이 과거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건설 비리에 관한 건데, 가제를 ‘독식’이라고 정했습니다. 최대한 우리 상황과 맞게 각색했는데 재미있을지 모르겠어요. PD수첩을 담당했던 작가가 원고를 쓰고 여고괴담을 만들었던 감독이 연출을 맡았어요. 아주 능력 있는 친구라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MC도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5월초 개국한 산업TV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그우먼 이성미 씨랑 둘이서 진행하는데 기업인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살아 있는 경험담을 듣는데 너무 좋아요. 일주일에 4번 방송을 하다 보니 분량도 상당히 많고요. 하루에 기업인 네 사람을 만나서 얘기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김밥으로 때우면서 녹화를 하는데 몸은 힘들지만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우리나라 기업인들 정말 대단해요. 좋은 철학을 가지고 있고 성공해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잖아요.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죠. 불공정한 현실 속에서 그걸 뚫고 올라온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해요. 그들을 사람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이라 기대가 큽니다."


40년 연기열정을 발판으로 "한류 알리기에 앞장선다"는 차원에서 잡지를 발간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처음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책을 발간하기로 생각한 겁니다. 관광이라는 게 콘텐츠인데 이제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관광대국이 됐잖아요. 더욱 코미디가 뭐냐면 아시아에서 도쿄박물관이나 북경박물관이나 대만박물관을 제치고 서울국립중앙박물관이 내방객 순위 1위에요.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한류문화 때문에 한국에 온 관광객들 모두 거길 들려가는 겁니다."


"한류를 만들어낸 게 대중문화 스타들인데 그들이 정말로 큰일을 한 것이죠. 우리가 만들어 낸 이야기, 콘텐츠, K-POP, 대장금과 같은 드라마들이 전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겁니다. 산업적으로 봤을 때 큰 내실이죠. 그런 게 탄탄해지면서 Made in Korea가 신뢰를 얻어가는 게 되는 거고요. 물론 이면에는 동대문, 남대문, 명동 등 쇼핑이 융합이 되고 아름다운 제주도의 자연과 역사가 함께 하기 때문이지만 어찌되었든 한류가 대세인 것은 확실하잖아요."


"우리는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과 가치 등을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주는 게 너무 감사하죠. 우리가 모르고 있던 멋과 매력을 외국인들이 찾아주는 게 한류고요. 우리가 현대화 과정 속에서 가장 크게 착각했던 게 모던아이즈와 웨스턴아이즈를 혼돈한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것을 다 버리고 서구화하는 게 현대화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지금도 우리 것을 찾아서 아름답게 재창조하느냐 이게 남아있는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고요. 그걸 찾아 알리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류잡지를 생각한 것이죠. 이름을 ‘리얼코리아’라고 지었는데 외국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책을 내자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지금도 발간을 하고 계시는지요.


"지금은 우선 접어놨죠. 그러나 다시 발간한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한류 잡지라는 게 정책적인 지원 없이는 힘든 상황이거든요. 애초 잡지를 시작할 때 한국이야기를 담아서 중국판을 내는 거였는데 처음에 발간할 때는 그들(중국)이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런데 두 번째 책을 내려고 하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판이 커질 것 같으니까 안 된다는 거죠. 중국은 일단 출판사 허가가 나질 않아요. 대부분 허가난 걸 산 다음에 바꿔서 책을 발간하는 건데 이들이 처음에는 자기네가 51% 지분을 같고 우리가 49% 지분을 갖기로 했는데 아예 다 갖겠다는 겁니다. 아휴~말도 말아요. 그때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정말로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일본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일본과는 이야기가 순조로웠어요. 같이 합작을 하기로 했던 회사는 다이아몬드 출판사라고 일본에서 꽤나 큰 출판사였는데 계약을 하고 나서 얼마 안 돼 일본에 지진이 발생했어요. 매달 일본에서 제작비를 지원받기로 한 것인데 천재지변으로 인해 이도 저도 어려운 상황이 생긴 것이죠. 일본 쪽에서는 조금만 연기하자고 하는데 우리는 직원들 다 뽑아놓은 상태라 피해가 너무 컸죠. 그렇다고 천재지변이라 위약금을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덮었습니다."


한때 구성작가로도 활동하신 것으로 압니다.


"아주 젊은 시절에 동양방송에서 탤런트 조금 하다가 그만뒀어요. 그때 수목드라마를 하나 했었는데 그게 대한민국 수목드라마 첫 번째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 다음에 KBS와 통폐합이 됐죠. 저는 그때 학교에 복학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과연 배우가 직업이 될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많았어요. 사람은 저마다 타고 난 소질이나 재능이 있기 마련인데 내가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닌데 얼굴을 팔고 사는 배우가 맞는 직업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졸업하고 나면 전공분야에 취직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시간적 여유가 남아서 드라마를 한편 써볼까 하고 방송국을 왔다 갔다 했어요."


"당시만 해도 방송국에 작가실이 있어서 서로 얘기도 하고 원고 쓰는 방법도 배우고 그랬거든요. 말이 배우러 가는 거지 기획안만 붙여놓고 매일 술만 마실 때죠. 그때 방송국에서 개그맨을 뽑아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작가실에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걸 듣고 작가 형님들이 ‘네가 하면 딱 맞겠다. 그러니 한번 해봐라’ 그러는 겁니다. 그때 제가 그랬죠."

 

"내가 지금 대하드라마를 쓰려고 하는데 무슨 코미디 대본이냐고. 솔직히 호기심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해본다고는 했는데 막상 대본을 쓴다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거기다가 프로그램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버라이어티라 MC도 나오고 가수들도 나와서 노래 부르고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세상에 모든 것들은 도서관으로 통할 때였으니까요. 그렇게 도서관에서 이틀을 뒤진 결과 미국 만화연감을 발견했어요. 내용이 굉장히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다음에 우리 정서에 맞는 콩트를 몇 개 써서 넘겨줬더니 너무 좋다는 겁니다. 그렇게 구성작가 생활을 1년 가까이 했을 거예요. 그러다 새로운 드라마를 하는데 제가 가장 보통사람처럼 생겼다며 출연해 달라고 여러 차례 제의가 들어와서 연기를 하게 된 것이죠."


굉장히 인기 있었던 작품이었다면서요.


"당시 그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어요. 약 3년 동안 했던 장편드라마였는데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아직 그때 극중 별명인 ‘두꺼비’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어요. 그만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작품이죠.
제가 얼마나 착한 역할을 했냐면, 건설회사 토목기사인데 그 집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시골 처녀(금보라)가 식모살이를 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 학비를 대주거든요. 두꺼비가 그 친구를 처음에는 동정하다가 점점 사랑하게 되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인기가 너무 좋아서 당시 제가 대한민국 신랑감 1위였다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아주 행복했던 드라마로 기억됩니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오셨는데 어떤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요.


"다 기억에 남고 다 좋아요. 하나하나의 역할이나 작가나 연출자들이 준 재료로 빚어 만드는 게 등장인물이잖아요. 그 등장인물이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고 그 안에서 내가 성장해온 큰 가르침을 주고 그런 거죠. 물론 게 중에는 한심한 것도 많죠. 기억나는 역 중에 제가 맡은 역이 캠퍼스 커플이에요. 아주 부잣집 아들이죠. 그런데 여자가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고 엄마(강부자)가 만나지 말래요. 제가 심각한 마마보이였거든요. 그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데 엄마가 만나지 말라고 하니까 안 만나요. 얼마나 얄미웠으면 방송국 구내식당 아줌마들이 저한테 밥을 안줬다니까요. 재수 없다면서. 또 기억 나는 것 중 하나가 정치드라마인데 저한테 정치를 가르쳐 주시고 배우로 가장 크게 성장하게 만들어 주신 분이 계십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제게는 너무 큰 스승님이시죠."


방송계에선 ‘시청률메이커’라고 표현하시잖아요. 어떤 점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배우도 여러 가지 종류의 배우가 있잖아요. 어떤 배우는 함께 출연한 상대배우와 잘 되는 배우가 있고 어떤 배우는 상대방은 상관없이 나만 잘 되면 되는 배우가 있고요. 나는 나만 스타가 되기 위해서 애쓰거나 그러진 않아요. 같이 출연하고 있는 상대가 잘돼야 우리가 만든 드라마가 잘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죠.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가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게 점점 줄어가요.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우리사회의 가치관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죠. 더불어 사는 게 미덕인 우리나라의 가치관이 붕괴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로 걱정도 되고요. 모든 게 화합이고 조화거든요. 연기를 할 때도 그런 게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하다 보니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라디오진행도 꽤나 오래했던 것으로 압니다.


"MBC 여성시대를 아주 오래했죠. 1990년대 초반 손숙 씨와 함께 진행했던 MBC 표준FM ‘여성시대’는 KBS의 ‘안녕하세요 황인용·강부자입니다’에 뒤지던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래서 주부 청취자뿐 아니라 운전기사 등 남성층까지 노리는 전략을 짜고 황당한 모험을 하게 됩니다. 전국적인 여성시대 모임을 만들고 전국에 있는 몇천 명의 여성시대 가족들을 데리고 삼성전자에 견학을 가고 삼성연수원을 빌려서 1박 2일 캠프파이어도 열고요. 그걸 다 무료로 했어요. 지금도 여성시대에서 책이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그때 책도 처음 만들었어요. 그렇게 되면서 경쟁 프로그램보다 청취율에서 앞서게 되었죠. 어찌 보면 당시 여성시대 프로그램을 그렇게 올려놓은 공로자 중 한 사람이 접니다."


"그러다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었고 제가 그만두면서 당시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PD도 그만두게 됐죠. 그러다 정치를 한답시고 몇 년을 떠났다가 다시 2003년에 KBS라디오 ‘행복한 아침’이라는 프로를 왕영은 씨와 같이 시작했어요. 한 6년 정도했는데 재미도 있었지만 힘도 들었어요. 라디오는 생방송을 해야 하니까 여행을 다닐 수가 없어요. 그때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 있었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 가보지도 못하고 살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시간이 맞질 않다 보니 TV에 출연도 할 수 없고요. 그래서 그만뒀죠."


책을 굉장히 많이 읽으시는 것으로 압니다.


"저는 도서관을 자주 다니는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도서관 단골손님이었죠. 외아들로 크다 보니 누구랑 같이 하는 놀이를 못해요. 대신 혼자서 바이올린 켜고 조용히 책 읽고 혼자 노는 걸 잘하죠. 방송국 탤런트실에 가면 바둑을 둔다든가 하면서 노시거든요. 그럴 때도 저는 방송국 안에 있는 도서관에를 가요. 도서관에 갔다가 방송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게 있으면 빌려다 보기도 하고요. 책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하나 소개하자면 방송국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방송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어서 빌려 보려고 했더니 탤런트는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대여해 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장실로 곧장 올라가서 책이 필요해서 대여 좀 하려는데 복사해 가라고 한다고 했더니 곧 바로 도서관장을 부르더니 빌려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도서관장이 하는 말이 예전에는 탤런트들도 책을 빌려줬는데 빌려만 가지 반납을 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출근을 안 하니까요. 그때 내가 서있는 포지션을 정확히 알게 된 것 같아요."


"연예인에 대한 정치참여 편견이 심해 정치할 생각이 없다" 정치를 하고 나신 후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예전에 제 친구가 인도를 여행을 하는데 벽에 포스터가 쭉 붙어있더래요. 마침 거기서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벽보에 붙은 후보자들 반이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을 찍었더라는 거예요. 너무 웃긴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후보자들이 영화배우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그런 생각을 했대요. 영화배우들이 저렇게 많이 정치에 나와서 나라가 어떻게 되나하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후보자들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들이더라는 거예요. 우리나라와 영화배우의 품질자체가 틀렸던 거죠."

 

"무슨 말이냐면 우리나라는 영화배우가 정치를 하면 국민들이 아주 걱정을 많이 합니다. 왜냐면 우리나라 연예인은 무식하거든요. 그러니까 국민들이 연예인이 무슨 정치를 하냐고 걱정하는 거죠. 우리나라만 그래요. 우리나라는 연예인 99%가 연극영화과에서 키워내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뭘 배우냐면 성형수술하고 몸 만드는 것만 배워요. 나머지 시간에는 그냥 놀죠. 공부는 안 해요. 다른 나라의 연극영화과는 연극 영화에 대한 이론과 기술과 철학 이런 걸 배우는데 우린 완전히 달라요."


"외국은 연극영화과를 안 나오면 감독이 될 수가 없어요. 반면에 배우들은 다 전공이 있죠. 철학을 전공했다든가 정치를 전공했다든가 공학을 전공했다든가... 그러다 보니 외국 배우들은 전문직 연기를 아주 잘 해요. 배우가 교수 역할을 맡으면 진짜 교수같이 하고, 의사 역을 맡으면 진짜 의사같이 연기하죠. 그런데 한국 배우들은 그게 안 돼요. 전문직을 연기하는 게 아주 약하단 말이죠. 잘 하는 게 뭐냐면 깡패연기예요. 그건 잘하죠. 놀았으니까. 미국에서는 영화감독이 정치를 한다고 하면 다들 걱정을 해요. 영화나 만들지 무슨 정치를 하냐고. 그런데 배우가 정치한다고 하면 무슨 상관이 있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지해주는 거죠. 우리는 배우가 기능인에 불과해요."


"우리나라처럼 연극영화과에서 얼굴이 잘생겼다고 점수를 더 주는 그런 나라는 세계에 그 어디에도 없어요. 외모가 조금 잘 생긴 게 무슨 객관성이 있어요. 음악이나 미술처럼 객관적인 게 없잖아요. 그런데 교수가 보기엔 매력이 있다는데 누가 말리냐고요. 공부 잘하는 애는 절대 연극영화과에 가질 못해요. 거긴 돈 많은 집 애들이나 가는 곳이죠. 감독도 마찬가지예요. 연극영화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요. 진짜 배우가 되려면 전문적인 교양과 지식을 갖추고 그 역할을 연기해내야 하고 감독은 정확하게 찍어대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그 반대로 교육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제가 경제학과를 나왔는데 국회의원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태산이에요. 같이 일하는 국회의원들 보면 나보다 더 모르는 것 같은데도 그들은 그냥 국회의원이라고 보니까 아무런 상관을 안 하는데 유독 나한테만은 시시콜콜 따지는 게 많죠. 연예인 국회의원이다 보니까요. 소개할 때도 무슨 배우인지 뭘 공부했는지 다 소개해야 돼요. 이미 연예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보니까 그냥 국회의원으로 봐주지 않는 거죠. 그때 느꼈죠. 야~ 이거 정말 힘들구나! 하고요. 그래서 연예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편견을 말했던 거고요."


정치를 그만둔 후 상당히 힘들었던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국회의원을 그만두었을 때 굉장이 힘들어요. 경제적인 위험이 무지하게 크거든요. 그 이유가 뭐냐면 과거에는 국회의원 선거 자체가 돈이었어요. 선거에 나온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후원금을 받으러 오고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지금처럼 자원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써야 했어요. 그야말로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면 당선이 되는 그런 시대였죠. 그러니 선거 한 번 하려면 몇 십억 원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니 선거에 떨어지면 어려운 건 당연하죠."


인맥이 아주 넓으신 것으로 압니다.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저는 사람을 만나는 데 원칙을 가지고 만나거나 그러진 않아요. 목적을 가지고 사귀지도 않고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가 도움이 된 적은 거의 없다고 봐요. 그렇다고 제가 스스로 연결해주지도 않아요. 잘못될까봐 연결해주는 것도 싫어해요. 더불어서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고 행복한 걸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에 대해 굉장히 미숙해요. 그래서 저는 돈 많은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아요. 그럼 상처받거든요. 돈이 있거나 능력이 있는 친구들은 드러내서 자랑하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살다보면 결과물도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입은 옷을 보면서 잘 하고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에게는 아주 깎듯이 대우를 해주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동이 달라져요.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건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잘 대하고 조금 허름한 옷을 입었다고 해서 못 대하는 그런 게 아니거든요. 저는 오늘 저녁에 누가 호텔 일식집에서 밥을 사 준다고 해도 가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순대랑 떡볶이를 팔고 있는데 그게 먹고 싶으면 그걸 먹어요. 비싼 양주를 먹는 거보다는 좋은 친구를 만나서 소주를 먹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거죠. 각기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 나눠야 되는데 우리는 그걸 못해요."


"그러다 보니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생색을 내기를 하려고 하잖아요. 기념사진 찍고 꼭 자료를 남기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을 무조건 휘두르기만 한단 말이죠. 가진 자들이 나눔에 대해서 아주 미숙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을 어릴 때부터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발생한 여객선 사고로 모든 국민들이 비통해 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어떤 심정이었는지 한 마디 해주세요.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대형 사고들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또 사고가 날 때마다 그 순간을 때우는 척하고 다시 정부규제가 강화되고 이런 일들이 연속되고 있어요. 이러한 사고들은 우리 정부의 규제가 모자라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몰라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죠. 아는데 안 지켜서 일어난 사고에요. 가령 어떤 공사를 한다고 합시다. 이제 부실공사를 하면 언젠가는 사고가 난다는 걸 다 알아요. 그런데 언제 무너질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조금씩 빼먹다가 무너지는 겁니다.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닌 거죠.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로 만들어 놓은 규칙들을 모두 무시해서 일어난 거예요."


"결국 성숙한 국민이 못됐다는 말이죠. 미국에 가보셨으면 알겠지만 그 나라는 아무 황색 선에든 차를 유턴해도 돼요. 그런데 우리는 황색 선에서 유턴하라는 재량을 맡겨 놓으면 아마도 싸우고 난리법석을 피울 겁니다. 그게 왜 그러냐면 국가가 국민을 인정하지도 않지만 국민도 지키려고 하질 않기 때문이에요. 무조건 법규를 적용하는 시스템이 사람들을 못 믿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미국 경찰은 재량이 아주 많아요. 그래서 경찰의 재량에 따라 용서할 수도 있고 처벌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르죠. 서로 신뢰가 없는 나라니까 믿지를 않고 성숙한 국민성도 가질 수 없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도 미국과 같은 나라처럼 일단 믿어주는 재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국민 스스로가 알아서 성숙한 국민이 되어 갈 것 아닙니까? 지금처럼 정부가 ‘이걸 계속 우리가 해줘야 돼’ 하면서 규제를 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계속 후진국민성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됩니다. 이번 사고는 그런 점에서 너무나 아쉬운 점이 많죠. 그동안 대형사고가 너무 많았는데도 우린 또 이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제발 앞으로는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MeCONOMY Ma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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