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과의 대미 투자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 한미는 ‘일괄 현금 선지급’이 아닌 프로젝트별·단계별 집행 원칙에 합의했고, 총규모는 3500억 달러 수준이다. 양국 간 협력 포트폴리오는 첨단제조 분야와 에너지·전력 인프라 중심으로 짜였다. 미국 내에서 관세 인하를 지렛대로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에 대한 신중론이 있었지만, 한국은 맞춤형 패키지형태로 접점을 찾은 것이다.
29일 APEC 정상회의 계기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은 ‘APEC CEO 서밋’ 특별연설에서 “한국과도 무역 합의를 곧 타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고, 앞서 25일에도 “한국과의 협상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한국·미국 간 합의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현실화됐다.
한미 양국 간 정상회담을 마치고 백악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 유치 성과를 공식 발표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국빈 방문 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입과 대미 투자를 본국에 가져왔다(SECURING BILLIONS IN EXPORTS AND INVESTMENTS)’는 제목의 팩트시트를 통해 구체적인 투자 내역을 공개했다. 발표 내용은 지난 8월 열린 1차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한국 산업계가 밝힌 투자 계획과 거의 중복된다.
◇한국, 희토류 등 핵심광물 중심 에너지 협력...발전소·원전건설 내용 빠져 ‘아쉬움’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희토류 등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미국 리엘레멘트 테크놀로지스는 미국 내에 분리·정제·자석 생산을 아우르는 수직 통합형 복합단지를 설립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민관 협력을 통해 핵심광물 채굴·정제의 안정화와 다변화를 추진한다.
에너지 조달 측면에서 한국가스공사는 트라피구라, 토탈에너지 등과의 장기 계약을 통해 향후 10년간 연 330만 톤 규모의 미국산 LNG를 추가 도입한다. 원자력 연료 부문에서도 센트러스 에너지, 한국수력원자력,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국 오하이오주 피켓턴 우라늄 농축 설비 확장을 공동 추진한다. 미국 내 3000여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전력망 인프라 강화도 병행한다. LS그룹은 2031년까지 30억 달러를 투자하고, LS전선의 미국 자회사 LS그린링크는 버지니아주에 6억8100만 달러 규모의 제조시설을 건설 중이다.
백악관은 “핵심광물 채굴·정제 분야에서 민관 협력으로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다변화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의 포트폴리오는 핵심광물·LNG·전력망에 무게를 두고 있어, 대형 발전소와 원전 신증설 같은 굵직한 사업 협력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 5500억원 대미투자...절반이 미국 전력·에너지 사업에 배분
일본은 미국에 5500억 달러를 대미 투자 형식으로 투입하기로 합의했으며, 절반 이상이 전력·에너지 분야에 배분될 전망이다. 이 금액은 2024년 기준 일본 GDP의 10% 이상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제1호 사업은 전력 분야”라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일본의 초기 투자는 송전망 보강·발전설비 확충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가스터빈·변압기·냉각 시스템을 포함한 발전설비와 그리드 업그레이드에 일본 기업들이 뛰어든다는 관측이다.
또한 미국이 한국·일본·대만 등에 참여를 요청해온 알래스카 LNG도 일본의 초기 개발 투자처로 꼽힌다. 일본 최대 발전사 제라는 9월 알래스카 LNG 수출 프로젝트와 연 100만 톤급 장기 오프테이크에 합의, 사업성 검증 단계에 들어갔다. 다만 투자금융 조달·원가 경쟁력·최종투자결정(FID) 등 불확실성은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한국과 미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형 투자로, 일본과 미국은 5500억 달러 패키지 형태로 대미투자 협상을 타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이 ‘전력 1호’에 속도를 내는 사이, 한국은 핵심광물·LNG·전력망처럼 우리 산업과의 접점이 큰 영역을 중심으로 단계적·맞춤형 협력을 택했다.
우리 기업에게 관건은 선투자 사업을 얼마나 빠르게 착공으로 연결하느냐다. 초기 성과가 나오면 관세 인하 효과와 민간 매칭 투자가 선순환을 만들 수 있지만, 인허가나 비용 변수에 막히면 약속된 총액은 숫자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