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면 어김없이 당선자들의 과거 발언과 행동이 다시 소환된다. 과거 인터뷰, SNS 게시물, 강연 영상, 유튜브 클립 등이 실시간으로 유통되면서 당선자들의 현재 모습과 과거 모습을 비교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과오를 정치적·도덕적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동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도 여러 유명 인사들과 교류했던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 파일은 정치·경제·학계의 권위자들까지 도덕적 검증의 대상에 올려놓았다.
진보 지식인의 우상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한편 러시아 여성과의 혼외정사 등 빌 게이츠(Bill Gates)의 사생활 문제는 오랫동안 쌓아온 그의 자선자적 이미지에 상처를 남겼다.
역사적 인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헨리 D, 소로(Henry David Thoreau)에 관한 이상화된 이미지와 실제 삶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기사가 그의 사후 153년 만인 2015년에 주간지 「뉴요커」에 실렸다.
그는 숲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의 집에 수시로 들러 어머니가 구운 쿠키를 먹고 빨래를 맡겼으며 주말마다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지만 마치 철저한 고독에서 살아 남은 척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느냐"가 아니라 "그 결함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모순을 안고 살아간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사생활에서는 실망스러울 수 있고, 반대로 개인적 결함이 있는 사람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바지를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흑백이 아니라 복잡한 회색 지대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오(過誤)를 가볍게 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공적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감이 요구된다. 부패, 범죄, 차별, 권력 남용과 같은 문제는 엄격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설명할 의무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검증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단순한 잘못보다 '내로남불'이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행동을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로 비난하거나, 원칙을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은 예외를 요구할 때 사람들은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이는 도덕적 완벽성을 요구해서가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살펴봐야 할 것은 과거의 실수 자체보다 그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현재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가? 여부일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도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영상과 기록은 영구적으로 남고, 언제든 재소환된다. 그렇다면 사회는 과거를 발굴하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평가의 기준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첫째, 범죄와 단순 실수를 구분하고, 둘째, 일회적 발언과 지속적 행태를 구분해야 한다. 셋째,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한 사람에게는 일정한 갱생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성장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민주주의는 성인군자를 선출하는 제도가 아니다. 완벽한 인간을 찾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들 가운데 누가 더 책임감 있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과정에 가깝다. 과거를 검증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인물 전체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기록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만이 아니라 판단력이다.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되, 한 인간의 삶 전체와 변화의 가능성까지 함께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 요구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