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씁쓸한 기억을 남겼다. 정책과 비전의 경쟁보다 선거 관리의 허술함이 더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투표소에서 긴 줄이 생기고, 일부 유권자들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투표가 사실상 종료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출구조사 발표 시점을 조정하는 것이 상식에 가까운 판단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생겼다면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연기했어야 한다.
아직 투표하지 못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고 특정 후보의 우세가 뚜렷하게 나타났을 경우 "이미 승부가 끝났구나"라고 생각하며 투표 의지를 잃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실제 투표 포기 사례가 확인됐는지와는 별개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심 자체를 낳았다는 점에서 선관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각 투표소에서 용지가 부족하다는 보고가 잇달았음에도 투표가 중단될 때까지 선관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투표일 다음 날까지도 투표소 몇 곳에서 투표용지 부족과 투표 중단이 발생했는지, 투표용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출구조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공개되었다.
투표용지의 외부 반출 등 대선 관리 부실로 선관위원장의 사과는 불과 1년 전이다. 4년 전 대선 때도 소쿠리 투표로 질타를 받았지만, 선관위는 달라진 게 없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독립적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시 대신 자체 혁신위 같은 셀프 개혁을 내세웠지만 제대로 이행했다는 실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선거 관리 부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선관위 개혁을 위한 각종 법안을 발의하고 이후엔 제대로 논의조차 없었다. 특별감사관을 선관위에 두는 법안에서부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감시위원회를 설치하자는 법안까지 모두 1년 이상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투표용지 수요를 예측하는 것은 선관위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에 속한다. 비가 오는지, 유권자가 얼마나 참여할지, 어느 지역에 사람이 몰릴지까지 분석하는 것이 선거 관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선거만을 위해 존재하는 헌법기관의 조직 역량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채용 비리 의혹, 관리 부실 논란, 각종 선거 과정에서의 미숙한 대응 등이 반복되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선관위인가?"라는 항의까지 나오고 선관위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선관위 해체론까지 제기한다. 실제로 해체가 답인가 아닌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선관위에 대한 국민 신뢰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음임은 분명하다.
민주주의에서 선거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에 대한 신뢰다. 결과에 승복하는 이유는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돼서가 아니라 절차가 공정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절차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선거 결과 역시 존중받기 어렵다.
그 신뢰를 잃는 순간 선관위의 존재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해명이 아니다. 단 하나, 문제가 드러났다면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헌법기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