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전쟁 후 재건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 시설 시공 경험을 가지고 있는 국내 건설사들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MOU는 미국이 이란의 재건 및 경제 발전을 위해 최소 3000억 달러(약 450조원) 규모의 재건 펀드를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펀드를 어디에서 어떻게 조성할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자금이 모인다는 점에서 건설업계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중동 재건 사업은 현재 기대감 뿐이다. 중동 정세의 변동성이 매우 크고 합의 후 60일간 미국과 이란의 협상에 따라서 상황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 중에서는 대우건설이 중동 재건 사업을 위해 가장 먼저 움직였지만 타 기업들은 현재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신규 수주 기대’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향후 정세 변화 추이를 지켜보며 검토하겠다는 의견이 많다.
◇ 국내 건설사 중 가장 먼저 움직인 대우건설
대우건설은 지난 6월 23일 ‘중동 재건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앞서 19일 정부는 ‘중동 인프라 협력 실무 TF’를 가동해 유망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고위급 대표단을 현지에 파견하는 등 정부 간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2일에도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을 중심으로 한 재건사업 참여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며 계획을 구체화 했다.
대우건설은 해외영업을 총괄하는 글로벌인프라본부를 중심으로 플랜트·토목·건축 등 각 사업본부의 해외 개발사업과 수주 영업 기능을 아우르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파이프라인 복구를 비롯해 정유·석유화학·가스처리시설 개선 공사가 잇따라 발주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나아가 전력·항만 등 인프라 시설 보수와 주택·도시개발 분야의 신규 시장도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란에서 △반다르 아바스-바프간 철도공사 △아화즈 발전소 △하르그섬 해상 송유기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사를 수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진출 경험을 통해 수주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란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개방될 경우 국내 건설업계 전반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열리는 만큼, 선제적 준비를 통해 미래를 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주요 건설사들은 좀 더 신중한 모습이다. 중동 정세의 변동성이 큰 만큼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전언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우리가 시공한 시설에 문제가 있으면 발주처로부터 요청을 받아 보수 작업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요청은 없는 상태며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동 재건 사업이 전개된다면 정부 TF를 중심으로 ‘팀코리아’ 협업 구조로 수주전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팀코리아가 체코 대형원전 건설사업을 수주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중동 진출해 경험을 가진 건설사들이 개별적으로 수주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설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중동에 진출해 있는 건설사들에게는 좋은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트렉 레코드 가진 국내 기업 다수
LS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4월 13일 기준 이번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에너지 인프라 시설은 △이란 마흐샤흐 석유화학단지·사우스파 가스전 △쿠웨이트 미나 알 아프마디 정유시설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 산업단지 △사우디아라비아 라스타누라 원유 수출 터미널·안부(Yanbu) 프로젝트 △카타르 라스라판 LNG 단지 △이라크 바스라 정유 단지 △바레인 시트라 정유·화학 단지 등으로 파악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손상된 에너지 시설 복구 비용을 최대 580억 달러(약 89조원)으로 추산했다. 업계에서는 에너지 인프라 시설 80여 곳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가스시설은 물론 전력망과 항만 등 연계 인프라 복구 사업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건설사들이 얼마나 가져오느냐다. 김세련 LS증권 연구원은 ”한국 건설사들의 레코드(시공 실적)가 많기 때문에 실제 생산 시설의 피해가 재건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각국 피해지역의 국내 건설사 수행 프로젝트들을 제시했다. 이란의 경우 과거 먼 시점(1975년~2025년)이긴 하지만 DL이앤씨, 현대건설, GS건설, 현대엔지니링 등이 시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 쿠웨이트에서는 GS건설·삼성E&A·DL이앤씨, UAE 삼성E&A·GS건설, 사우디·카타르 삼성E&A, 이라크 현대건설·대우건설, 바레인 삼성E&A 등이다.
업계에서는 중동 재건사업의 수혜 기업으로 실적이 많은 DL이앤씨, 현대건설, GS건설, 삼성E&A 등을 꼽는 분위기다. 실제 중동 지역 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설사 한 관계자는 ”파괴된 시설을 우리가 시공한 것이라고 해서 수주 가능성이 반드시 높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발주처가 제시하는 가격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수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미국의 이란 제재 완화 여부 핵심 걸림돌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동 재건 사업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중동 전쟁의 주체인 미국과 이란이 MOU 체결 이후 60일간의 추가 협상 기간에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협상이 결렬되면 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구조다.
이번 재건 수요는 걸프지역 전반에 걸쳐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피해 규모와 시장 잠재력이 가장 큰 국가는 이란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란은 현재 미국의 금융·에너지 제재로 인해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 국제 금융 거래, 해외 자본 유치 등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란은 세계 3위 수준의 원유 매장량과 2위 수준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 이란국영석유공사(NIOC)가 국가 에너지 자원의 개발과 생산을 총괄하고 있다.
류태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6월 15일자 보고서에서 ”장기간 지속된 투자 공백을 감안할 때, 향후 제재 완화와 금융망 정상화가 이루어질 경우 NIOC를 중심으로 유전·가스전 개발, 정유·석유화학 설비 증설 등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예상되며, 이란은 다시 한번 글로벌 EPC 기업들의 핵심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2016년 이란 핵합의 체결로 제재가 완화되고 일부 은행의 글로벌 금융 메시지 공급망인 스위프트(SWIFT) 재연결이 이뤄지면서 국내외 기업들의 이란 시장 진출이 활발하게 일어난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이 핵합의를 파기하면서 대이란 재재를 복원했다. 이로 인해 상당수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류 연구원은 ”결국 이란 시장의 실질적인 개방은 종전을 넘어 SWIFT 재편입과 미국의 2차 제재 완화 등 국제 금융망 정상화가 동반될 때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향후 이란 경제 제재가 완화될 경우 국내 기업의 사업 경험과 현지 지사를 기반으로 구축된 네트워크는 시장 재개방 초기 국면에서 경쟁우위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제2의 중동 붐’이 오기까지 또 다른 걸림돌도 존재한다. 종전 합의 이후에도 사업 조건 확정, 현지 안전 확보, 자재·인력 이동 정상화 등도 풀어야할 숙제다.
◇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기시감
일각에서는 2023년부터 고조됐으며 1300조원 규모 ‘제2의 마셜플랜’이라고 불린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대한 얘기도 거론된다. 여전히 종전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정체중인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은 당시 국내 건설업계에서 기대감이 상당히 높았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며 기대감을 키웠다.
2023년 9월 국토교통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공동으로 ‘6대 선도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앞선 7월에는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빈 방문 중인 폴란드 바르샤바에 국내 주요 기업들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해 우크라이나 현지 기업들과 재건 관련 MOU를 다수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국내 정권도 교체됐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오리무중인 가운데, 새롭게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처럼 중동 재건 사업도 장기화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다”며 “다만, 국내 진출 기업이 거의 없고 국가 차원에서 기여한 지원 실적도 크지 않아 수혜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됐던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과 달리 중동 재건 사업은 국내 기업들이 다수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혜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중동 재건사업은 국내 건설사들에게 새로운 해외 수주 시장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성과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완화와 국제 금융망 정상화, 전후 협상 결과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