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AI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읽고 분석하고, 요약하며 심지어 기사를 쓰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2억5천만 달러에, 세일즈포스의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는 타임지를 1억9천만 달러에 각각 인수했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즈 또한 뉴 리퍼블릭을 전격 인수했다.
AI 시대의 승자라고 불리는 슈퍼 리치들이 종이신문 시대를 끝냈다고 선언한 지 오래인데, 왜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였던 종이신문의 세계에 거액을 베팅하는 것일까?
돈이 남아돌아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누구보다 미래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AI가 정보를 거의 무한하게 만들어 낼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정보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와 그것을 믿게 만드는 신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은 정답보다 이야기에 끌린다
AI는 정답을 찾는 데 탁월하다.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비교하고, 과거의 패턴을 찾아내고, 가장 합리적인 답을 계산한다. 정확성과 효율성, 최적화의 세계에서 인간은 AI를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수학 시험이 아니다. 현실의 기업과 시장에는 정답이 없다. 특히 세상일이 그렇다.
어제까지 잘나가던 기업이 오늘 갑자기 무너지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작은 기업이 어느 날 시장의 판도를 뒤집는다. 전문가들이 만장일치로 실패를 예상했던 사람이 성공하고,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업자의 집념 하나가 수십억 달러의 기업을 만들어 낸다.
완벽한 논리구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세계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인간은 그런 드라마를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두 팀의 실력이 완벽하게 같고 모든 결과가 사전에 계산되어 있다면 누가 경기를 보겠는가? 경마도, 경륜도 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재미가 사라진다.
인간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 때문이다. 다친 선수가 마지막 순간 기적 같은 결승 골을 넣고, 절대 강자가 신인에게 무너지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언더독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이처럼 완벽함은 예측을 가능하게 하지만, 불완전함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AI가 점점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더 강한 서사(敍事,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사실)를 쓰는 일)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신문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신문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종이가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것만이라면 AI가 훨씬 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질문이다. “그래서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같은 사건을 놓고도 어떤 기자는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읽어내고, 어떤 기자는 그 사건 속의 한 사람의 인생을 발견해 낸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숫자 뒤에 숨은 시대의 욕망을 포착하고, 어떤 편집자는 수많은 사건 중 무엇을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만들 것인지 결정한다. 이것은 단순한 정보처리가 아니다. 선택이고, 해석이고, 관점이다. 무엇보다 서사다.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비싸진다
AI 시대의 인재 시장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난다. 과거의 인재 선발은 스펙의 시대였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자격증을 가졌는지, 어느 회사에서 몇 년 일했는지가 중요했다. 이력서는 한 사람의 능력을 증명하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였다. 하지만 AI가 평균적인 업무능력을 빠르게 평준화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졌다.
AI는 누구에게나 비슷한 수준의 지식과 분석 능력을 제공한다. 누구나 훌륭한 보고서를 만들고, 외국어를 번역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작성하고, 코딩을 보조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채용하는 사람의 질문도 바뀔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로 말이다.
한 사람의 커리어에서 가장 강력한 자산은 결국 남들이 복제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실패했던 경험, 예상하지 못한 분야에서 성공한 경험, 한 산업을 깊이 파고든 경험,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온 경험, 남들이 보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한 경험이다.
스펙은 복제될 수 있지만 이야기는 복제하기 어렵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사실은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있다. 유명 기업에서 일했다는 경력도 수많은 사람이 공유한다. 하지만 “나는 왜 그 일을 시작했고, 무엇을 실패했으며, 그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발견했고, 그래서 지금 무엇을 믿는가?”라는 이야기는 오직 한 사람만이 가진다.
AI가 평균을 높이는 시대에는 평균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가 오히려 경쟁력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의 자기소개서는 경력 목록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자기 경험을 하나의 관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관점이 타인에게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그것이 AI 시대의 새로운 스펙일 것이다.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움직임은 이런 변화의 신호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내신 만점자가 속출하고 AI로 다듬어진 천편일률적인 에세이가 범람하자 변별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하버드, MIT 등의 주요 명문 대학들은 한동안 폐지했던 표준화 시험인 SAT 점수 제출을 다시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입 제도 역시 2028년부터 ‘내신 5등급제’를 도입한다. 사실상 기존의 단순 성적만으로는 학생을 정교하게 가려낼 수 없는 구조로 선회하고 있다.
◇정보보다 귀한 것은 신뢰다
정보가 넘치면 정보의 가격은 떨어진다. AI는 이 원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기사 한 편, 보고서 한 장, 시장분석 자료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계속 내려갈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진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고 소셜미디어에는 수많은 의견이 있다. AI는 몇 초 만에 그럴 듯한 분석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그 가운데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뢰가 새로운 희소 자산이 된다. 100개의 보고서를 읽는 것보다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한 명의 전문가가 “이것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강력할 수 있다.
왜일까? 그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에 어떤 판단을 했고, 얼마나 정확했으며, 틀렸을 때 어떻게 인정했는지를 우리는 기억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판단과 행동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일종의 평판 자산이다.
AI는 정보를 무한히 생산할 수 있지만 신뢰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앞으로 미디어의 경쟁력도 단순히 얼마나 많은 기사를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말했을 때 사람들이 믿는가로 이동할 것이다. 신문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도 종이가 아니다. 기자의 이름, 편집국의 명성, 독자와의 관계,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신뢰다.
슈퍼 리치들이 미디어를 사는 이유를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콘텐츠 공장이 아니라 이미 사회에 축적한 신뢰의 네트워크일 수 있다.
◇사람의 손이 다시 비싸진다
더 흥미로운 역설도 나타날 것이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되면 오히려 “AI가 하지 않은 것”이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 커피를 직접 볶는 장인이 주목받고, 손으로 쓴 편지가 특별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AI가 만든 수천 개의 글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기자가 직접 현장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고, 그 사람의 표정과 침묵을 관찰해 쓴 기사는 다른 가치를 갖는다.
“이 글은 AI가 썼습니다”라는 표시보다 오히려 “이 글은 기자가 직접 취재했습니다”라는 표시가 신뢰의 상징이 될지도 모른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AI가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시대에는 한 장의 서툴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이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기술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너무 강력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반작용이다.
대량생산이 수공예품의 가치를 높였듯이 AI가 지적 생산물을 대량 생산할수록 인간이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고 만든 결과물의 희소성이 커질 수 있다. 미래에는 “AI를 얼마나 잘 쓰는가?”만큼이나 “어디에서 AI를 쓰지 않을 것인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사라질 줄 알았던 것들의 반격
모든 비즈니스 소통과 네트워킹이 슬랙, 이메일, 그리고 온라인 프로필 링크 하나로 대체되는 비대면 디지털 경제 시대에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던 종이 명함이 다시금 강력한 비즈니스 무기로 급부상하고 있다.
셀프 브랜딩이 생존의 필수가 되고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기업이 사람을 정규직으로 장기간 고용하기보다, 필요한 순간에 프로젝트·업무 단위로 사람을 계약해 일을 맡기는 노동시장을 말함)의 확산으로 프리랜서와 1인 기업가가 넘치는 현재 시점에서 종이 명함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명확한 물리적 신뢰 기제에 기인한다.
그래서 종이신문뿐 아니라 종이 명함도 다시 주목받는 것인지 모른다. 디지털 명함은 효율적이다. 연락처를 쉽게 저장할 수 있고, 정보를 수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효율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 손에 종이 명함 한 장을 건네는 행위에는 디지털 데이터에는 없는 물성이 있다. 그 사람의 이름과 직함, 회사가 인쇄된 작은 종이를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하나의 실제 인물로 기억한다.
AI 시대에는 이런 물리적 접점의 가치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모든 것이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모든 관계가 플랫폼 안에서 관리될수록 손으로 건네받은 명함, 직접 서명한 계약서, 손 편지, 종이책 같은 아날로그적 경험이 인간관계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종이신문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0.7초 만에 소비되는 뉴스와 아침 식탁에서 한 장씩 넘겨보는 신문은 같은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경험이 다르다. 디지털은 정보를 전달한다. 아날로그는 경험을 남긴다. AI 시대에는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해질 것이다.
◇정답의 반대편에 미래가 있다
AI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가능성 높은 답을 찾아낸다. 그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AI가 가장 잘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데이터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답하는 것이다. 반면 인간의 위대한 혁신은 종종 “그런데 정말 그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모두가 인터넷으로 이동할 때 종이를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모두가 모바일로 뉴스를 소비할 때 종이신문은 낡은 매체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종이를 샀다면? 모두가 AI로 콘텐츠를 만들 때 사람이 직접 취재한 기사를 강조하고, 모두가 디지털 명함을 사용할 때 종이 명함을 건네고, 모두가 데이터를 분석할 때 자신의 직관을 믿는다면?
역발상은 단순히 남들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를 의심하는 능력이다. AI가 점점 더 정확해질수록 인간의 경쟁력은 정확한 예측 그 자체가 아니라 예측을 거스르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에서 나올 수 있다. “왜 모두가 이것이 맞다 생각하지?”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가?” “데이터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인간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신문을 산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산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AI 시대의 슈퍼 리치들은 신문사를 사는가? 나는 그들이 종이를 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사를 만드는 플랫폼을 산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뢰와 관점의 자산을 산 것이다. 신문사는 한때 하루에 한 번 뉴스를 인쇄해 배달하는 기업이었지만 오늘의 미디어는 다르다.
무엇을 중요하다고 판단할 것인지, 어떤 인물을 주목할 것인지, 어떤 기업을 혁신의 상징으로 만들 것인지, 어떤 사건을 시대의 전환점으로 기록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의제와 관점의 문제다. 정보가 희소한 시대에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강했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는 해석권을 가진 사람이 강하다. 그리고 AI가 해석까지 자동화하는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누가 그 해석을 믿을 만하게 만들 수 있는가, 즉 인간의 고유한 흔적과 역발상의 혜안이 얼마나 담겨있는가가 중요하다. AI가 모든 답을 만들어주는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답이 아니다.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앞으로 가장 비싼 사람은 반드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아닐 것이다. 정보를 의미로 바꾸는 사람, 기술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 숫자 뒤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 자기 경험을 독창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사람, 그리고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릴 때 “왜?”라고 묻는 사람이 비싸질 것이다.
AI는 인간을 평준화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평준화되지 않는 인간의 가치는 더욱 비싸질 것이다. 나만의 스토리,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 직접 경험에서 나온 판단,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만드는 관계, 그리고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을 한 번 더 의심하는 역발상, 어쩌면 이것이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