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음식 라면
밀가루와 물로 만든 면을 기름에 튀기고, 소금과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국물에 말아 먹는다. 영양학적으로만 보면 매일 먹기에 썩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세계인은 라면에 열광한다.
세계라면협회(WINA)가 발표한 최신 집계를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재미있는 숫자가 나온다. 1년: 약 1,242억 900만 식. 하루: 약 3억 4,033만 식. 1시간: 약 141만 8,000식. 1분: 약 23,630식, 1초: 약 394식이다. 그러니까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서 1초마다 약 394개의 인스턴트 라면이 소비된 셈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전 세계에서 1초에 약 400개씩 라면이 팔려 나간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소비량은 40억 6100만 식으로 세계 9위이고, 1인당 소비량은 약 79식으로 베트남에 이어 세계 2위다. 라면은 이제 어느 한 나라의 서민 음식이 아니라 지구촌의 보편적인 한 끼가 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라면을 이토록 강력한 음식으로 만들었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봉지 안의 라면을 볼 게 아니라, 수천 년 전 인간이 밀을 갈아 반죽하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밀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저장 식량이었다.
밀은 쌀과 달리 재배하기 쉬운 곡물만은 아니지만, 한 번 수확한 밀은 저장성이 좋고, 빻아 가루로 만들면(물론 처음에 제분이 어려웠지만) 물과 섞어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밀을 이용해 빵을 만들어 먹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에너지를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일종의 ‘식량 배터리’였다.
여기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발효다. 밀가루 반죽에 미생물이 작용하면 밀 속의 당을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각종 향미 물질을 만들어 낸다. 반죽은 이산화탄소로 인해 부풀고, 냄새와 맛이 달라진다. 인간은 처음부터 미생물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 아니다. 우연히 부풀어 오른 반죽을 구워 먹으면서 발효라는 거대한 식품과학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밀가루는 빵만 만드는 재료가 아니었다. 물을 넣어 반죽한 뒤 길게 늘이고 잘라내면 면이 된다. 밀의 글루텐 단백질은 반죽에 탄력과 점성을 부여한다. 즉, 밀은 빵과 국수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 독특한 곡물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 문화는 중국에서 크게 발전했다. 라면의 먼 조상을 찾아가면 중국의 면 문화와 만나게 되는 이유다. 다만 여기서 역사적 계보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라멘이 중국의 어느 한 면 요리가 그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특정한 한 명의 스님이 제분 기술을 일본에 가져와 라멘을 만들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여러 문화와 기술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합쳐졌다고 보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타당하다.
◇중국의 면, 일본에서 국물과 만나 라멘이 되다
1858년 일본이 개항하면서 외국인과 외국 음식이 일본으로 대거 들어왔다.
요코하마 등지에는 중국인 사회가 형성됐고, 중국식 면 요리도 일본인의 식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870년에는 요코하마에 중국 음식점이 생겼고, 20세기 초에는 중국식 면과 일본식 식재료를 결합한 음식이 등장했다. 1910년 도쿄 아사쿠사에서 문을 연 중국요리점 라이라이켄(来々軒)은 일본 농림수산성이 소개하는 것처럼 일본식 라멘의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변화가 생긴다. 중국의 면은 일본에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변했다. 밀가루 면에 고기나 해산물 등을 우려낸 국물을 붓고, 간장이나 된장 등으로 맛을 내는 방식이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라멘의 모습은 바로 이런 중국 면 문화와 일본의 식문화가 결합한 결과다.
1923년 관동대지진은 라멘의 대중화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도쿄와 요코하마의 음식점들이 큰 피해를 입은 뒤 상대적으로 개업하기 쉬운 포장마차가 늘어났고, 메뉴를 단순화한 라멘 포장마차가 확산됐다. 즉 라멘은 어느 날 한 사람이 발명한 음식이라기보다 이주, 도시화, 산업화, 식량 사정, 대중문화가 한 그릇에 들어간 음식이었다.
그리고 1958년, 라면의 운명을 바꾸는 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난다. 뜨거운 기름이 라면을 ‘인스턴트’로 만들었다. 1958년 일본의 안도 모모후쿠가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멘을 내놓았다. 핵심은 놀랍도록 간단했다. 면을 한번 익힌 다음 기름에 튀겨 수분을 빠르게 제거하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다시 원래의 면처럼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 이것이 라면의 핵심 과학이다.
밀가루 반죽을 면으로 만들고 찐 뒤 뜨거운 기름에 넣으면 면 속의 물이 빠르게 증발한다. 그 자리에 수많은 작은 구멍과 통로가 생긴다. 이 다공성 구조 때문에 뜨거운 물이 면 내부까지 빠르게 침투한다. 그래서 라면은 3~5분이면 먹을 수 있다. 여기에는 놀라운 식품공학이 숨어 있다. 기름에 튀긴다는 단점이 동시에 라면의 가장 큰 장점이 된 것이다.
튀김은 지방을 증가시키지만 면을 다공성으로 만들어 재수화 속도를 높인다.
실제 연구에서도 튀긴 면은 벌집 같은 다공성 구조가 형성돼 물이 내부로 빠르게 침투하고 조리 시간이 짧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라면은 그래서 단순한 ‘밀가루 음식’이 아니다. 건조식품, 튀김, 전분의 호화, 단백질 구조, 수분 이동이라는 식품과학이 한 봉지 안에서 만난 결과물이다.
◇한국에서 라면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과학’이 됐다
한국에서 라면이 등장한 것은 1963년이다. 한국전쟁 이후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쌀은 귀했고, 값싼 밀가루 식품을 확대해야 했다.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은 (미군 부대에서 나온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보고 일본으로 건너가) 인스턴트 라면 생산기술을 배우려 했다. 그러나 기술을 알려주지 않다가 귀국하는 날 기술 노트를 복사한 것을 받고 1963년 9월 15일 한국 최초의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한 봉지 가격은 10원이었다.
처음부터 잘 팔린 것도 아니다. 밥과 국, 반찬을 먹어야 ‘제대로 된 식사’라고 생각했던 한국인에게 밀가루로 만든 꼬불꼬불한 면은 낯설었다. 그러나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과 쌀 부족이라는 시대적 조건이 라면의 보급을 밀어 올렸다.
1966년 11월에는 판매량이 240만 봉지, 1969년에는 1500만 봉지까지 늘었다. 여기서 한국 라면의 독특한 진화가 시작된다.
일본식 라멘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국물을 바꾸었다. 맵고 짜고 진한 국물, 고춧가루와 마늘, 소고기와 사골의 풍미가 더해졌다. 1986년 등장한 신라면 같은 제품은 한국 라면을 대표하는 매운맛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라면은 이제 ‘일본에서 온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이 새롭게 만든 하나의 음식문화가 됐다.
◇그런데 왜 건강에 좋지 않다는 라면에 열광하는가?
여기서 라면의 역설이 시작된다. 라면의 가장 큰 약점은 동시에 가장 큰 매력이다. 우선 국물의 나트륨이다. 라면 스프에는 짠맛을 내는 소금뿐 아니라 감칠맛을 강화하는 여러 조미 성분이 들어간다. 나트륨 자체가 나쁜 물질은 아니다. 신경과 근육의 기능에 반드시 필요한 무기질이다. 문제는 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을 2,000㎎ 미만, 소금으로는 5g 미만으로 권고한다. 나트륨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혈압을 높이고 심혈관질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라면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한 끼에 맛을 완성하기 위해’ 나트륨이 농축돼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튀긴 면의 지방이다. 일반적인 유탕면은 뜨거운 기름에서 건조되기 때문에 일정량의 기름을 흡수한다. 연구에 따르면 인스턴트 유탕면의 높은 지방 함량은 주요한 영양학적 고려 사항이다.
그렇다고 ‘기름에 튀긴 라면은 무조건 나쁜 음식’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과학적이지 않다. 튀김 과정은 면의 다공성 구조를 만들어 물이 잘 스며들게 하고, 독특한 향과 식감을 만들어 낸다. 일부 연구에서는 튀김 과정에서 전분과 지방의 상호작용이 생기면서 소화 특성이 달라질 가능성도 관찰됐다.
문제는 라면이라는 식품 하나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무엇과 함께 먹느냐에 있다. 라면은 ‘맛의 과학’에서 거의 완벽한 음식이다
◇ 건강에 결고 도움이 안 된다는 데도 세계인은 왜 라면을 좋아할까?
첫째는 속도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맛있는 음식을 원했지만, 현대인은 여기에 ‘빨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라면은 물을 끓여 넣고 몇 분만 기다리면 뜨겁고 향이 강한 한 끼가 된다.
둘째는 가격이다. 값싼 밀가루를 기본으로 하면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냉장고가 없어도 된다. 조리 기구가 거의 필요 없다. 물과 불만 있으면 된다.
셋째는 감각의 밀도다. 라면 국물에는 짠맛, 감칠맛, 매운맛, 지방의 고소함, 향신료의 향이 동시에 들어간다. 여기에 뜨거운 국물과 쫄깃한 면의 물성이 더해진다. 우리 뇌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압축돼 있는 것이다.
특히 감칠맛은 라면의 세계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단맛처럼 즉각적인 에너지를 연상시키고, 짠맛처럼 강한 자극을 주며, 지방은 향과 식감을 오래 끌고 간다. 여기에 고추의 캡사이신이 들어가면 통증에 가까운 자극과 온도감까지 더해진다.
그래서 라면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다. 뜨겁고, 짜고, 맵고, 고소하고, 쫄깃한 감각을 짧은 시간에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음식이다. 그리고 한국은 라면에 ‘문화’를 넣었다. 한국 라면의 세계적인 성공을 단순히 맛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라면을 먹는 방법까지 상품으로 만들었다. 계란을 넣고, 파를 넣고, 김치를 곁들이고, 치즈를 올리고, 떡을 넣는다. 라면을 끓이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레시피가 생긴다.
최근에는 이 현상이 국경을 넘어갔다. 매운맛 라면을 먹는 영상, 이른바 먹방과 챌린지가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졌다. 특히 불닭볶음면 같은 제품은 ‘한국의 매운맛’을 하나의 놀이이자 콘텐츠로 만들었다. 한국 라면은 더 이상 봉지 속 식품이 아니라 경험하는 음식이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라면 수출은 최근 크게 증가했다. 한국 라면은 1969년 베트남을 시작으로 해외 수출을 시작했고, 이후 일본·동남아·미국 등으로 시장을 넓혀갔다. 코로나19 시기의 간편식 수요 증가에 더해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 장면 등이 한국 라면을 세계인의 눈에 각인시키는 문화적 계기가 됐다.
◇ 라면은 완벽한 음식이 아니라 완벽하게 설계된 음식이다
라면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라면은 처음부터 ‘건강식품’으로 태어난 적이 없다. 밀이라는 곡물을 오래 저장하고, 반죽을 면으로 만들고, 찌고, 튀겨 수분을 빼고, 다시 뜨거운 물로 되살린다. 여기에 소금과 향신료와 감칠맛을 더한다.
이 모든 과정의 목표는 하나였다. 적은 비용으로, 오래 보관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는 것. 그 목표에는 라면만큼 성공한 음식도 드물다.
그래서 라면은 식품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시간을 압축한 음식’이다.
밀의 생명력을 밀가루로 압축하고, 조리 과정을 공장에서 미리 끝내고, 수분만 다시 공급하면 과거의 면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한국은 여기에 매운맛이라는 강력한 정체성을 넣었다. 중국의 면, 일본의 라멘, 서구의 산업화와 식품공학, 한국의 매운맛과 대중문화가 만나 오늘날의 K-라면이 된 것이다.
그러니 라면을 두고 ‘건강에 나쁜 음식’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라면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물론 나트륨과 지방 섭취를 생각하면 매일 라면만 먹는 식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적절한 양을 먹고, 스프의 양을 조절하고, 국물을 남기고, 계란이나 채소 같은 식재료를 더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라면의 진짜 힘은 건강식이라는 데 있지 않다. 값싸고, 빠르고,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조리가 쉽고, 맛있으며, 무엇보다 자기 방식대로 변형할 수 있다는 것. 이 다섯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음식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밀빵에서 시작해 중국의 면을 거쳐 일본의 라멘이 되고, 1958년 인스턴트 라면으로 산업화한 뒤, 1963년 한국에 들어와 매운 국물과 만나고, 이제는 K-콘텐츠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간 라면. 라면 한 봉지에는 인류의 식량사와 도시화, 산업화, 식품공학, 미각과학, 그리고 문화의 세계화가 모두 들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라면은 건강식품이라서 세계를 정복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음식을 통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놀라울 만큼 효율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세계를 정복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라면이 단순한 ‘인스턴트 식품’을 넘어 하나의 생활과학이 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