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안보를 명분으로 한 결속은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삶과 자유를 외면한 권력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역사는 억압된 질서가 내부 균열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현재 이란의 '버티기 전략' 또한 국민의 지지 없이는 결국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이란의 권력 구조는 이중적이다. 형식적으로는 선출된 정부와 협상파가 존재하지만, 실질적 힘은 혁명수비대와 같은 강경 세력에 상당 부분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이념과 신앙으로 결속된 집단이다. 이들은 체제 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요 국가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체제 유지 자체를 목적화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협상의 주체가 불분명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세력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협상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란의 버티기 전략은 외부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경제 제재와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강경 노선은 단기적으로는 체제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국민의 삶을 희생시키는 대가를 요구한다. 물가 상승, 실업, 사회 인프라의 붕괴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어 결국 체제에 대한 신뢰를 잠식한다. 아무리 강력한 통제 장치가 존재하더라도, 국민 다수가 일상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장기화하면 균열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혁명수비대와 같은 조직이 ‘신앙의 군대’로 기능할수록, 현실적 판단보다 이념적 결단이 우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외부와의 갈등을 장기화시키고, 협상의 여지를 스스로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국가는 점점 고립되고, 내부 경제 기반은 약화한다. 설령 이러한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한다고 해도, 그 지속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존속하려면 단순한 권력 유지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협상파를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다. 만약 국민의 삶이 파탄으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제 유지가 최우선 목표가 된다면, 그 국가는 이미 자기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냉정한 실리적 판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부와의 교섭을 통해 제재를 완화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며,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은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국가 존속의 조건이다.
결국 정부는 국민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억압과 통제로 불만을 잠재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민의 삶이 무너지면 권력의 기반 역시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란의 버티기 전략이 지금 당장은 강인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절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가 재건과 국민 생활의 회복을 중심에 두지 않는 한, 어떤 강경 노선도 끝내 스스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이며, 그 출발점은 국민을 향한 책임이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