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불러온 화두
최근 삼성전자 DS 부문의 특별경영성과급 논란은 단순한 임금협상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반도체 초호황 속에서 수억 원대 성과급이 현실화된 가운데, 이제 논쟁의 핵심은 성과급 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다.
성과급은 노동자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기업의 혁신과 노동자의 기여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반도체, AI, 플랫폼 산업에서 만들어지는 막대한 초과이윤을 기업 내부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가 연구개발 투자, 공교육, 전력과 용수 공급, 산업단지와 교통·통신 인프라, 그리고 국민이 부담한 세금과 사회적 안정이라는 공공적 기반이 함께 작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초과이윤 자체가 아니다. 혁신과 투자, 기술개발을 통해 더 큰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사회적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초과이윤이 특정 기업과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고, 그 과실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지 않을 때 불평등은 심화된다.
실제로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생산성과 기업가치는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그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있지 않다. 반도체와 플랫폼 기업의 수익은 급증하는 반면, 청년층은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고, 농촌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산업과 지역에 부가가치가 집중될수록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갈등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이 불평등을 단순한 소득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성장의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면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사회적 갈등 비용은 증가한다. 결국 초과이윤의 사회적 환원은 기업의 성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과실을 보다 넓게 공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 새로운 사회적 질문
최근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을 계기로 대기업 초과이윤의 사회적 분배와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논의를 제기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사회적 자산 위에서 창출된 성과를 어떻게 사회 전체와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질문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0년대 한·미 FTA를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농업계는 시장개방으로 자동차·전자·철강 등 수출산업은 큰 혜택을 얻는 반면, 농업과 농촌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등장한 것이 바로 무역이득공유제다.
무역이득공유제의 골간은 단순했다. 국가의 시장개방 정책으로 혜택을 얻는 산업과 기업이 그 이익의 일부를 피해 보는 농어업·농어촌과 공유하자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 선택에 따른 이익과 부담을 사회적으로 조정하자는 사회계약적 발상이었다. 다시 말해 수혜자와 피해자를 연결하고, 성장의 과실을 보다 공정하게 배분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무역이득공유제는 결국 도입되지 못했고, 대신 기업의 자발적 출연에 기반한 농어촌상생기금이 마련됐다. 무역이득공유제가 ‘수혜자 부담 원칙’에 기반한 제도였다면, 농어촌상생기금은 ‘자발적 협력 원칙’에 기반한 제도였다. 전자가 권리와 책임의 문제였다면, 후자는 선의와 참여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정부와 산업계가 무역이득공유제를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이익 측정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특정 기업의 수익이 FTA 때문인지, 환율 변화 때문인지, 기술혁신 때문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기업 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것이 준조세나 이중과세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 초과이윤의 성격과 사회적 이익공유제
하지만 오늘날 AI와 반도체, 플랫폼 경제가 만들어내는 초과이윤을 바라보면 당시의 논쟁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기업의 성과가 다양한 요인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회적 기여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국가 연구개발 투자, 교육 시스템, 디지털 인프라, 에너지 공급망, 법·제도와 사회적 안정이라는 공공 자산이 없다면 오늘날의 초과이윤 역시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은 사회 환원을 개별 기업의 이익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완벽하게 계산한 뒤 재분배하는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노르웨이는 북해 유전 개발 수익을 국부펀드에 적립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함께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알래스카는 석유자원 수익을 영구기금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배당한다. 탄소배당제 역시 개별 기업이 기후변화 피해를 얼마나 유발했는지 정확히 계산한 뒤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 아니다. 탄소배출이라는 행위 자체에 사회적 비용을 부과하고, 그것을 재원으로 국민에게 환원하는 구조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역시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를 자본과 부의 과도한 집중으로 진단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질수록 부는 상층에 집중되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된다. 따라서 초과 축적된 부의 일부를 사회 전체와 공유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이제 질문은 ‘이익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사회적 기반 위에서 창출된 성과를 어떻게 공정하게 공유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원의 조성 방식보다 사용 방향이다. 사회적 이익공유제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나누자는 주장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든 초과이윤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선택의 문제다.
만약 그 쓰임새가 단순한 현금 배당이나 일회성 복지 지출에 머문다면 지속가능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고 국가의 미래 기반을 강화하는 공공 인프라에 투자된다면 사회적 이익공유제는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이 될 수 있다.
◇ 식량안보와 기본유통
그 핵심 분야가 바로 식량안보와 기본유통이다. 식량은 국민의 생존과 국가안보를 지탱하는 전략 자산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위기는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보여주었고, 식량안보를 국가 핵심 과제로 부상시켰다.
그러나 한국 농업은 고령화와 농촌 소멸 위기, 기후변화 등 다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동시에 소비자는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민은 가격 폭락을 걱정하고 소비자는 가격 폭등을 걱정하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생산보다 유통구조에 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본유통이라는 새로운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기본유통은 생산자에게는 생산비를 반영한 정당한 가격을 보장하고, 소비자에게는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줄인 적정가격을 제공하는 공공적 유통체계다. 농민과 소비자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기본유통은 농림축산식품부만의 정책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 식량안보는 농업정책인 동시에 물가정책이고, 복지정책이며, 지역균형발전 정책이고, 국가안보 정책이기 때문이다.
생산과 유통, 물류와 정산, 공공급식과 소비, 데이터와 AI를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범정부 차원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온라인도매시장은 이러한 기본유통 체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것만으로 가격안정과 식량안보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계약재배 확대, 생산비 기반 기준가격 체계 구축, 공공급식과 공공식료 공급망 확충, 공공정산시스템과 AI 기반 수급예측 체계 구축, 공동물류망 강화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농업 지원 정책이 아니다.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농촌의 역할도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오늘날 농촌은 식량 생산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생산, 물 공급, 탄소흡수 등 다양한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반도체와 AI 산업 역시 막대한 전력과 용수, 산업부지와 물류망이 필요하며, 이는 결국 농촌과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공간과 자원, 환경 수용성 위에서 가능하다. 첨단산업의 성장 역시 농촌과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공공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 어디에 재투자할 것인가
결국 사회적 이익공유제의 핵심은 초과이윤을 얼마나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든 성과를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에 있다.
과거 무역이득공유제가 시장개방의 과실을 농어촌과 공유하자는 제안이었다면, AI 시대의 사회적 이익공유제는 첨단산업의 성장 과실을 국민의 밥상과 식량안보, 기본유통 체계에 재투자하는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발전해야 한다.
반도체는 국가의 성장동력을 만들고, 식량은 국가의 생존기반을 만든다. 성장동력과 생존기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국가전략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초과이윤을 누구에게 나눌 것인가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든 성과를 어디에 재투자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그 투자 대상은 국민의 밥상과 식량안보,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본유통 체계여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의 성장과 분배를 연결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이며,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가전략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