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농정 숙제
2022년 4월 양파 가격이 폭락하자 농민들은 수확을 포기한 채 밭을 갈아엎었다. 4년이 지난 올해도 농민들은 양파밭을 갈아엎고 소비 촉진 행사를 벌이고 있다. 생때같은 농산물 밭을 갈아엎고, 가격이 내려가 소비 촉진 운동을 벌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농민은 고통을 겪고, 전가되는 유통비용에 소비자 또한 한숨짓는다.
이러한 모순은 오랫동안 우리 농정이 풀지 못한 숙제였다. 경기도는 전국 최대의 소비지이자 중요한 농축수산물 생산지다. 화성·평택·안성·이천·여주·김포·파주 등지에서는 농수산물이 생산되고, 1400만 도민의 식탁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먹거리가 소비된다.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장 가깝게 공존하는 곳이 경기도다. 그런데도 농민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비싸게 농산물을 구매한다.
경기도의 농정 개혁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새로 당선된 추미애 경기도지사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추미애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기득권과 관행에 맞서는 개혁의 상징이었다. 검찰개혁이 그릇된 권력구조를 바꾸는 데 필요한 과제라면, 이제 경기도에는 밥상과 유통구조를 바꾸는 생활밀착형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농정은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소비 쿠폰을 지급하고, 가격이 폭락하면 산지 폐기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이 반복돼 왔다. 이는 문제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사후 약방문에 가깝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가격 폭락 전에 수요를 연결하고, 폭등 전에 공급망을 관리하는 예방형 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G푸드 든든마켓’과 ‘AI 온라인 거래지원 플랫폼’
경기도 농축수산물 유통혁신 정책을 제안한다. 생산과 유통, 소비를 데이터로 연결하고, 경기도가 보유한 학교급식지원센터, APC, 공영도매시장, 전통시장, 동네 마트 등을 하나의 공공 유통망으로 묶어 농민에게는 제값을, 도민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을 보장하는 새로운 먹거리 안전망을 구축하자.
유통혁신의 목표는 농민이 밭에서 농산물을 갈아엎지 않아도 되는 경기도, 도민이 밥상 물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경기도, 생산된 농산물이 끝까지 활용되는 경기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추미애표 농정 개혁이 가야 할 방향이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G푸드 든든마켓’과 ‘AI 온라인 거래지원 플랫폼’ 구축이다.
경기도 인구는 이미 1,400만 명을 넘어섰다. 전국 인구의 약 4분의 1이 경기도에 살고 있다. 그만큼 경기도의 먹거리 정책은 단순한 농업정책을 넘어 도민 생활비, 밥상 물가, 지역경제, 소상공인 정책과 직결된다.
경기도에는 이미 활용할 수 있는 먹거리 인프라가 있다. 학교급식지원센터, 로컬푸드직매장, APC, 지역농협, 공영도매시장, 전통시장, 동네 마트, 공공 급식 기관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시설들이 각각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 정보, 재고정보, 소비수요, 가격정보, 물류정보가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과잉생산이 발생해도 사전에 대응하기 어렵고, 가격이 급등해도 공급을 조정하기 어렵다.
경기도형 유통혁신의 출발점은 기존 인프라를 연결하는 데 있다. 우선 생산 단계에서는 농가, APC, 지역농협, 산지 유통조직이 생산량, 재배면적, 생육 상황, 출하 예정 물량, 규격 외품 발생 가능성 등을 ‘AI 온라인 거래지원 플랫폼’에 등록한다. AI는 경기도 기상정보, 재배면적, 과거 출하량, 도매시장 가격, 소비 동향, 학교급식·공공 급식 수요, 소매점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여 품목별 수급을 예측한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서 토마토, 양파, 배추, 대파 등의 과잉생산 가능성이 확인되면 사전에 계약재배 물량 조정, 저장을 통한 출하기 분산, 공공 급식 연계, 가공용 전환, ‘G푸드 든든마켓’ 특판을 추진할 수 있다. 가격이 폭락한 뒤 산지 폐기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폐기되기 전에 수요처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유통 단계에서는 APC, 공영도매시장, 학교급식지원센터, 로컬푸드직매장, 전통시장, 동네 마트, 공공 급식 기관을 하나의 공공 유통 벨트로 연결한다. 기존에는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시설들이 생산·재고·수요·물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지역 내 먹거리 공급망으로 기능하게 된다.
경기도 내 공영도매시장은 수원, 안양, 안산, 구리 등 4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학교급식지원센터, 로컬푸드직매장, 지역농협, APC를 연결하면 경기도는 별도의 대규모 물류센터를 새로 짓지 않고도 생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하는 공공 유통망을 만들 수 있다.
소비 단계에서는 경기도가 지정하는 ‘G푸드 든든마켓’ 500개소가 핵심 거점이 된다. ‘G푸드 든든마켓’은 별도의 대형 매장을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다. 기존 전통시장 점포, 동네 마트, 지역 슈퍼마켓, 로컬푸드직매장 등을 경기도가 지정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로컬푸드직매장의 지역성, 착한가격업소의 가격 안정 기능, 동네마트의 생활 접근성을 결합한 경기도형 공공식료품점 모델이다.
◇‘아까운 농산물’ 살리기
‘G푸드 든든마켓’에서는 쌀, 채소, 과일, 축산물, 수산물 등 기본 농축수산물뿐 아니라 친환경 농산물, 과잉생산 농산물, 저포장 농산물, ‘아까운 농산물’을 함께 판매한다. 소비자는 생활권 안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기본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고, 농민은 폐기 대신 판매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소상공인은 안정적인 공급망과 고객 유입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아까운 농산물’ 유통은 이 정책의 중요한 차별성이다. 경기도는 2026년 1월 ‘경기도 아까운 농산물 유통 활성화 지원 조례’를 공포·시행했다. 이상기후로 외관상 결함이 생긴 농산물,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기존 유통망에서 배제되는 농산물, 품질에는 문제가 없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는 농산물을 유통정책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화성에서 규격 외 토마토가 발생하면 ‘AI 플랫폼’은 이를 즉시 파악해 수요처를 자동 매칭한다. 크기와 모양은 일정하지 않지만, 품질이 양호한 물량은 ‘G푸드 든든마켓’ 할인판매로 연결하고, 외관상 흠집이 있지만 식재료로 문제가 없는 물량은 학교 급식용 가공원료, 공공 급식 식재료, 복지시설 급식, 식품기업 가공용 원료로 연계할 수 있다. 로컬푸드직매장에서는 ‘아까운 농산물 특판전’으로 판매하고, 전통시장과 동네 마트에서는 이를 생활물가 안정 품목으로 공급할 수 있다.
◇온라인도매시장의 한계와 보완책
이러한 공공 유통 체계는 정부 온라인도매시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라인도매시장의 한계를 보완하는 구조다.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은 2023년 11월 출범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거래액은 6,737억 원을 기록했고, 2025년 11월 3일 기준 연간 거래금액 1조 원을 돌파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거래금액 7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온라인도매시장은 산지와 소비지를 직접 연결해 유통 단계를 줄이고 물류비를 낮추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온라인도매시장이 모든 농축수산물 유통을 대체할 수는 없다. 온라인 거래는 상품을 직접 보고 고르는 방식이 아니라 사진, 등급, 규격, 물류 조건에 기반해 거래된다. 따라서 균일한 품질, 일정한 크기, 안정적 물량, 표준화된 포장이 중요하다. 이 구조에서는 대량·규격품 거래에는 강점이 있지만, 친환경 농산물, 소량 다품목, 규격 외 농산물, 과잉생산 농산물, 저포장 농산물은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경기도형 공공 유통 체계는 온라인도매시장과 병행되어야 한다. 온라인도매시장이 규격품 중심 유통의 한 축이라면, ‘G푸드 든든마켓’과 ‘AI 온라인 거래지원 플랫폼’은 ‘아까운 농산물’까지 포괄하는 먹거리 안전망의 또 다른 축이다.
◇‘G푸드 든든마켓’의 효과
‘G푸드 든든마켓’ 500개소가 도민 생활권 안에 구축되면 도정 효과는 분명하다. 첫째, 농민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한다. 규격품뿐 아니라 친환경·과잉생산·아까운 농산물까지 유통할 수 있어 농가 소득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도민 밥상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 기본 농축수산물을 생활권 가까이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장바구니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셋째,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가 있다. 기존 동네 마트와 전통시장 점포를 ‘G푸드 든든마켓’으로 지정하면 공공 유통망이 지역 상권으로 연결된다.
넷째, 농산물 폐기와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생산된 농산물을 끝까지 활용하면 산지 폐기, 매립, 소각으로 인한 자원 낭비와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다섯째, 경기도 행정의 예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별도의 대규모 시설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경기 서버, 수발주시스템, 학교급식지원센터, APC, 공영도매시장, 로컬푸드직매장, 동네 마트를 연계하기 때문에 저비용·고효율 정책 설계가 가능하다.
추미애 경기도정이 이 정책을 추진한다면, 경기도는 온라인도매시장 확대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그 한계를 보완하는 전국 최초의 ‘AI 기반 공공 유통 모델’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농가 소득 안정, 도민 밥상 물가 완화, 소상공인 매출 기반 확대, 농산물 폐기 감축, 탄소배출 저감, 사후 지원 예산 절감이라는 복합적 효과를 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