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 결혼식에서 나는 울었다. 주례사가 없는 대신 3분 안에 덕담해달라는 녀석들의 부탁을 받았다. 원고를 미리 준비했다.
"너희도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 봐야 한다…" 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면서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나를 공부시키겠다며 편안한 교편생활을 접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신 아버지. 아버지는 가기로 예정된 기업의 간부 자리가 무산되고 온갖 사업을 벌이시다가 내가 군대에 간 사이에 과로로 쓰러졌다.
그 뒤 10년간 병석에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길지 않은 삶을 생각하는 순간, 아들의 결혼이라는 가장 기쁜 날에 내 안에서 오래 잠자고 있던 시간이 갑자기 깨어나고 만 거였다. 이를 악물고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그쳤다. 그러나 가슴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감정은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30여 초가 흘렀을까? 겨우 마음을 추스른 나는 원래 준비했던 이야기를 건너뛰어 "쉽게 말해 너희들도 아이를 가져보라는 말이다"라고 얼버무리고 하객들을 향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들은 대부분 한 글자입니다. 물, 흙, 밥, 쌀, 몸, 눈, 코, 귀, 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어는 '곁'입니다. ‘내 곁에 있어 달라’ 할 때의 곁이란 단어 말입니다. 곁은 사랑입니다. 곁에 있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다시 녀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곁에서 껌딱지처럼 붙어살아라!" 나는 그 말을 하고 단상을 내려왔지만, 자리에 앉아서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 뒤에서 휴지를 건네주었다.
젊은 사람의 눈물은 현재의 고통에서 나오지만 나이 든 이들의 눈물은 과거에서 나온다. 살아오며 만난 사람들, 잃어버린 사람들, 이루지 못한 꿈들, 지나가 버린 계절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니까.
“눈물은 슬픔의 침묵하는 언어”라고 볼테르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방울의 눈물 속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녹아 있다. 그래서 나이 든 이들은 작은 일에도 우는가 보다. 손주의 재롱을 보고, 오래된 노래를 듣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울고, 나처럼 자식 결혼식에서도 울기도 한다. 그러나 이 눈물은 지나간 모든 시간에 대한 경의이며 감사에서 오는 것이다.
경제는 성장한다지만 곁은 줄어들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함께 늙어가는 사람은 줄었다. 가족은 작아졌고 공동체는 느슨해졌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욱 외롭고, 더욱 쉽게 상처받고, 더욱 쉽게 분노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좋은 집, 좋은 직장, 좋은 조건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일이다. 사랑은 거창한 감정보다 오래 곁에 머무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 가지 더 깨닫는 게 있다면, 행복은 새로운 것을 얼마나 많이 얻느냐가 아니라 잃지 않은 것에 대해 얼마만큼 감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돌아볼 것이 많다는 것은 때로 슬프지만, 그것은 축복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랑했고, 그만큼 살아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부부가 될 아들과 며느리에게 "너희도 부모가 되어보라" 며 울먹였을 때, 하객들 가운데도 함께 눈물을 흘린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 눈물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해서였을 수도, 누군가의 곁이 되어주었던 시간을 떠올려서였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성공도 돈도 권력도 아니다. 내 곁에 끝까지 남아줄 단 한 사람, 그리고 내가 끝까지 곁을 지켜줄 단 한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언제나 누군가의 '곁'에서 나오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