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수소 시장의 선순환, 공급과 수요를 어떻게 함께 키울 것인가’를 주제로 한 정책 간담회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 발제를 맡은 박진남 한국수소 및 신에너지학회 학회장(경일대학교 교수)은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생산·수요·인프라를 동시에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학회장은 대규모 실증사업과 정부 지원 확대의 시급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수소는 에너지 특성상 석유와 전기 사이의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석유는 저장이 쉬워 생산과 소비의 시차를 흡수할 수 있으나 전기는 생산과 소비가 실시간으로 연결된다. 수소는 저장이 쉽지 않아 생산과 활용, 운송 인프라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으면 공급 불안과 비용 증가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배관망과 저장시설 등 인프라가 수요보다 먼저 구축돼야 한다.
박 학회장은 “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수소 활용 비중을 크게 확대할 계획"이라며 "하지만 정부의 기대 수준에 비해 투자와 지원은 부족하다"고 짚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국가별 수소경제 추진 현황도 소개됐다. 박 학회장은 "유럽은 청정수소 생산과 산업용 활용에 집중하고 있으며,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수소 배관망(EHB) 구축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생산보조금도 ㎏당 최대 4.5유로 수준으로 적극 지원하지만 발전용 수소 활용 순위가 낮으며, 대부분 철강·석유화학 등 산업용으로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중국은 수소산업을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면서 대규모 수전해 설비와 배관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수소차와 충전소 보급 규모가 세계 최대"라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은 산업용 활용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으며, 특히 지방정부와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미국은 정권 교체 이후 수소 정책 추진 동력이 다소 약화됐지만, 생산세액공제(45V) 등 지원제도는 유지되고 있다. 현재도 산업용 활용이 중심이며 발전용은 연구·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향후 15년간 약 15조 엔 규모의 민관 투자를 추진하며 수소산업 육성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일본은) 우리나라와 여건이 비슷해 해외 수소 도입과 기술 개발 등에서 협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소산업이 초기 투자 이후 성장 속도가 다소 둔화됐지만, 각국은 새로운 정책과 지원책을 마련하며 방향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 수립한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과 탄소중립 로드맵을 현 시점에 맞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앞으로의 정책 방향으로는 생산과 활용을 연결하는 대규모 실증사업 추진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울진-포항, 영광-여수 등 수소 생산지와 활용지를 연결하는 배관망 구축 사업을 대표 사례로 언급하며, 경쟁보다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 추진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청정수소 생산설비 구축뿐 아니라 운영 단계까지 보조금을 지원해 사업자의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해외 청정수소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는 일본 등과 공동 투자 필요성을 제안했다.
수요 확대 측면에서는 청정수소를 발전보다 수소환원제철, 석유화학, 그린암모니아·그린메탄 생산 등 산업 분야에 우선 활용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수소충전소 구축과 운영 지원을 지속 확대해야 하며, 발전용 청정수소 활용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수소 생산 확대와 함께 대규모 수요처 확보 중요
청정수소 발전제도(CHPS)의 안정적 운영과 수소발전 확대를 통해 국내 수소경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창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수소발전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가별 수소정책은 각국의 여건에 따라 방향이 다르다"며 "미국과 중국은 수소를 생산·수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한국, 일본, 유럽은 수소를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소 생산 확대와 함께 대규모 수요처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장기적으로는 철강과 석유화학 등 산업용 활용이 확대돼야 하지만, 초기 시장 형성과 안정적인 수요 창출을 위해서는 발전 부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발전의무화제도(CHPS)는 사업자에게 청정수소 사용을 의무화하고 경쟁입찰을 통해 시장을 조성하는 제도"라며 "2024년 첫 입찰에서 한국남부발전의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사업이 선정됐지만, 정부가 2040년 석탄발전 폐지 정책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입찰을 취소하면서 사업자들의 투자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발표된 2026년 CHPS 입찰 공고에서는 물량이 크게 축소되면서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며 "이러한 정책 변화는 사업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투자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반 구축이 필수적”이라며 정책의 일관성과 법적 안정성을 강조했다.
◇ 현재 수소 가격, ㎏당 1만 원 수준...경제성 충분하지 않아
김희수 한국건설기계연구원 실장은 수소 모빌리티는 전체 수소 수요 규모는 발전이나 산업보다 작지만, 안정적인 초기 수요 창출과 국민 수용성 확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수소경제 확대를 위해서는 공급과 활용이 함께 성장해야 하며, 모빌리티는 수소 활용 생태계 조성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동차뿐 아니라 건설기계, 선박, 항공 등 다양한 운송 분야에서도 수소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비도로(Non-road) 모빌리티 분야는 국제 환경규제와 탄소배출 규제 강화에 대응해야 하는 산업"이라며 "다만 건설기계와 선박 등은 장시간 운행과 높은 에너지 소비가 필요한 장비인 만큼 배터리보다 수소연료전지가 더 적합한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건설기계와 선박 등에 적용되는 연료전지는 대부분 100kW 이상의 대용량 제품이 요구되기 때문에, 승용차용 연료전지 기술을 활용하면 개발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다"며 "기존 기술의 약 80% 이상을 공유할 수 있어 기술 확장성도 높다"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에너지 산업은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장기간이 필요한 만큼, 수소경제 정책도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추진하고 필요한 부분만 단계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달성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필수
남정임 한국철강협회 기후환경안전실 실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3%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의 탈탄소화가 없이는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렵다"며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철강업계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장기적으로는 기존 고로·전로 공정을 수소환원제철 공정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해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핵심 기술개발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추진됐으며, 현재는 연간 3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실증설비 구축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8년까지 실증설비를 구축하고, 2030년까지 상용화 설계와 사업계획을 마련한 뒤, 2037년 이후 기존 고로 설비를 순차적으로 수소환원제철 설비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남 실장은 “수소환원제철은 국가 탄소중립과 제조업 경쟁력을 동시에 좌우하는 핵심 과제인 만큼, 정부와 산업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 국가 차원의 전략과 연구개발(R&D), 해외 공급망 구축이 함께 추진돼야
박래상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수소전문위원은 “수소산업은 초기 시장 형성이 어려운 대표적인 정책 산업"이라며 "공급과 수요가 선순환 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처럼 수소 생산과 탄소포집·저장(CCUS), 인프라 구축 등에 대한 보조금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해외 출장과 현장조사를 통해 글로벌 수소 공급망 변화도 살펴봤다"고 소개하며, "해외 청정수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호주 등에서 생산한 수소를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해외 공급망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도 조선업계를 중심으로 액화수소 운반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창원과 울산, 인천 등에서는 액화수소 플랜트가 운영되고 있지만 핵심 장비 상당수가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국산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는 "액화수소 생산과 저장, 압축기술 등 핵심 기반기술에 대한 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라고 소개하며 "액화수소는 별도의 화학반응 없이 고순도 수소를 저장·공급할 수 있어 수소차는 물론 반도체 산업 등 고순도 수소가 필요한 분야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청정수소를 도입하는 노력과 함께 국내에서도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며 "민간은 수익성이 불확실한 대규모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만큼, 국가 연구개발(R&D)이 선행돼 기술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수요 맞춤형 공급 전략으로 전환해야
이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청정수소 저장활용 전략연구단 단장은 철강과 AI 데이터센터 등 국가 핵심 산업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려면 대용량 에너지 저장수단으로서 수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유 단장은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으로 국내 철강업계가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수소환원제철 도입이 불가피하다"며 "필요한 수소 물량과 공급 시기를 고려한 국가 차원의 공급계획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도 에너지 문제 해결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AI 데이터센터는 향후 5년 안에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요하나, 원자력발전소는 건설에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산업 프로젝트가 실현되려면 전력 공급 계획도 수립돼야 한다'며 "단순히 공급 확대를 선언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 전략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향후 국가 전력 수요가 기존 예상보다 훨씬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에는 약 100GW 규모의 신규 전력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AI 산업과 메가프로젝트 등을 감안하면 200GW 이상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재생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간헐성이라고 지적했다. 배터리는 수 시간에서 수일 단위의 저장에는 적합하고, 양수발전도 일정 기간 저장이 가능하지만 입지와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반면 수소는 계절 단위의 장기 저장과 기가와트(GW)급 대용량 에너지 저장이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라며,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수소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 분야에서도 수소의 중요성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철강은 석탄, 비료는 암모니아, 플라스틱은 석유를 기반으로 생산되나 탄소중립 시대에는 이러한 화석연료 기반 공정을 대체해야 한다는 전망이다.
유 단장은 "에너지 정책은 특정 에너지원 하나를 선택할 게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원을 조합하는 에너지 포트폴리오 전략이 중요하다"며 "재생에너지 시대에 수소를 포함한 다양한 유연성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시장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정부 “수소경제 축소 아닌 정책 전환...청정수소·대형모빌리티 중심으로 재편”
고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수소경제기획과장은 미국, 유럽 중국 등의 나라들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무역장벽을 강화하는 등 세계 수소산업의 경쟁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석탄·암모니아 혼소발전과 청정수소발전입찰시장(CHP) 축소에 대해 업계의 우려가 있었다"며 "해외 암모니아 수입 의존만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청정수소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정수소발전입찰시장 규모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발전설비 가동률 기준을 적용한 결과"라며 "시장 자체가 급격히 축소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연료전지 시장 개편과 함께 관련 프로젝트도 승인했으며, 국내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만, 산업의 부가가치가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새로운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수소경제의 필요성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청정수소와 전략 분야 중심으로 정책을 재편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제도 개선과 새로운 정책 방향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