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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7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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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비자를 위한 농산물 경매는 없나?


 

며칠 한 방송사 출신 PD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농산물 경매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나라 농산물은 대부분 공영도매시장을 거쳐 거래된다. 경매사는 농산물의 규격과 크기, 중량, 외관, 신선도, 출하량 등을 종합해 가격을 결정한다. 이 제도는 생산자에게는 공정한 가격을, 유통업자에게는 효율적인 거래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생산과 유통을 위한 시장인 셈이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 서보면 조금 다른 의문이 생긴다.

 

가장 비싼 농산물이 과연 가장 맛있는 농산물일까? 가장 큰 사과가 가장 향기로운 사과일까? 가장 달고 단 수박이 가장 좋은 수박일까?-사실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천연 수박은 그렇게 달지 않았지만 먹고 나서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다. 또한, 가장 규격이 좋은 토마토가 가장 영양이 풍부한 토마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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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매가 평가하는 것은 주로 상품성이다. 운송하기 쉽고 저장하기 좋으며 규격이 일정한 상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상품성이 아니라 먹는 품질이다. 맛과 향, 영양, 안전성, 건강성은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상품성이 높은 농산물과 소비자가 가장 만족하는 농산물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상상을 해봤다. 전국에서 생산된 오이를 한곳에 모은다. 크기가 아니라 맛을 평가한다. 색깔이 아니라 향을 평가한다. 생산량이 아니라 영양 성분을 평가한다.

 

잔류농약과 토양 건강, 재배 방식까지 함께 평가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블라인드 시식에 참여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 최고의 오이를 선정한다.

 

가격을 결정하는 경매가 아니라 가치를 결정하는 경매다. 이런 '소비자 경매'가 오이뿐 아니라 사과, 쌀, 토마토, 감자, 배추 등 모든 농산물로 확대된다면 어떨까. 농부들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 농업은 오랫동안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 얼마나 규격을 맞추는가가 경쟁력이었다. 그 과정에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은 늘었고, 토양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훼손은 세계 농업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제는 생산량만이 아니라 토양 건강과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장의 기준이 바뀌면 농업도 바뀐다. 생물다양성을 살리는 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 농약과 인공화학비료를 최소화한 농산물. 흙을 되살리는 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 이런 농산물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더 좋은 값을 받는다면 농부들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꿈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식품의 외관 검사와 품질관리, 소비자 선호 분석, 생산 데이터 분석에 활용되고 있다. 정부도 AI를 활용한 농산물 품질 예측과 소비자 맞춤형 품질평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AI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어느 농산물이 가장 많이 생산되었는가?”가 아니라 “어느 농산물이 사람에게 가장 건강하고, 자연에게 가장 이로운가?”이다.

 

나는 은퇴한 방송인이다. 거대한 제도를 바꿀 힘은 없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질문 하나에서 시작됐다. 왜 소비자를 위한 경매는 없는가. 이 질문이 언젠가 우리 농업의 철학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농산물은 가격만 거래하는 상품이 아니다. 흙의 건강을 사고, 농부의 철학을 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사는 것이다. 이제는 농산물의 가격을 매기는 시장을 넘어, 농산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장을 만들 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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