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규제와 인허가 절차로 지연되는 약 4조3000억원 규모의 기업 투자 프로젝트를 조기 이행시키기 위한 정부가 규제를 대폭 개선한다. 13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현장 애로를 토대로 마련한 ‘현장중심 기업투자·혁신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규제와 인허가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는 ‘현장대기 프로젝트’를 선별해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현행 건축법은 ‘1대지 1허가’ 원칙을 적용해 공장 증설 과정에서 새 건축물이 추가되면 기존 허가 변경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변경 심사가 끝나기 전에 또 다른 증설 수요가 발생하면 절차를 중단하고 전체 건축물을 재심사받아야 하는 만큼 공사 일정과 설비 가동이 반복해서 지연됐다. 반도체 공장은 기술 변화와 수요 변동에 따라 생산라인·폐수처리시설·에너지 공급시설 등을 수시로 추가하는 특성이 있어 업계는 제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정부는 일정 면적 이상의 산업단지에서 증설 건축물에 대해 기존 허가와 분리해 신규허가를 받도록 건축법을 올해 하반기 개정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약 2조5000억원 규모의 용인 클러스터 투자가 조기에 집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양산 전 단계에서 제품을 검증할 수 있는 실증시설 ‘트리니티 팹’의 세제 지원도 신설한다.
현재 비영리 실증법인은 공익법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기업 출연금과 시설·인력 제공에 대해 증여세를 부담해 왔다. 정부는 2027년~2031년에 실증법인이 증여받은 재산과 이익에 증여세를 비과세하는 특례를 조세특례제한법에 신설, 8000억원 규모의 실증시설 투자가 제때 이행되도록 지원한다.
이차전지 분야에서도 규제 완화가 이뤄진다. 구미·포항 국가산업단지에도 폐배터리 재자원화(리사이클링) 업체의 입주가 허용된다. 폐배터리에서 리튬·니켈·코발트·망간·흑연 등을 회수하는 재자원화 산업은 이차전지 공급망의 핵심 공정임에도 제도적 제약이 있었다. 정부는 산업단지계획과 관리기본계획을 올해 하반기 변경해 1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도하고, 국내에서 확보가 어려운 핵심광물을 폐배터리에서 회수하는 자원순환 생태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충북 오창과학산업단지의 녹지를 산업용지로 전환해 5300억원 규모의 바이오 제조시설 증설을 지원한다. 기존 공장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증설이 필요했지만 산단 내 유휴부지가 부족해 투자가 막혀 있었던 문제를 해소했다. 식품 분야에서는 전북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음료제조업 전용부지를 식·음료 제조업체도 사용하도록 관리기본계획을 변경해 35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촉진한다. 음료제조업 부지 분양률이 22.2%에 그쳤지만 식·음료 제조업 부지 분양률은 90.3%에 달해 업종 전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는 첨단·신산업 전반의 규제도 폭넓게 손질한다. AI데이터센터(AIDC)는 상주 인력이 적음에도 일반 건축물과 같은 주차장·승강기·미술품 설치 기준이 적용됐는데, 앞으로는 전산실 면적 등을 제외해 시설 설치 기준을 합리화한다. 올해 6월 제정된 AI데이터센터 특별법을 토대로 내년 3월까지 시행령을 마련할 계획이다. 반도체 팹의 도시가스 안전검사 기간은 기존 7일에서 3일로 단축하고, 일부 검사항목을 면제해 전체 절차를 12일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
피지컬 AI 확산에 대비해 협동로봇 안전규제도 정비한다. 현행 규정은 고정식 로봇 주변에 높이 1.8m 이상의 울타리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나, 국제 기준 변화와 산업현장 여건을 반영해 KS·ISO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울타리 없이도 근로자와 로봇이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세부 가이드라인을 내년 상반기 마련한다. 또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전략산업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성능기반설계를 도입해 안전 확보와 유연한 설계 대안을 적용하게 한다.
산업단지 입지 규제도 완화된다. 신산업·RE100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업종의 입주가 허용되는 ‘제한업종 계획구역’ 지정 한도를 산업용지 면적의 30%에서 최대 50%로 확대하고, 업종특례지구 지정에 필요한 토지소유자 동의 요건도 3분의 2에서 과반수로 낮춘다. 비수도권 기회발전특구의 지정 면적 상한도 광역시는 495만8677㎡(150만평)에서 661만1570㎡(200만평), 도는 661만1570㎡에서 991만7355㎡(300만평)으로 늘려 대규모 부지가 필요한 데이터센터·해상풍력·조선수리업 등 신산업 수요를 반영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도록 지속해서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주환욱 재정경제부 정책조정관은 “초혁신경제 선도 프로젝트와 녹색산업 등을 중심으로 한 2차 대책도 조속히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