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일본·콜롬비아·인니 모두 강진 발생...사상자 규모는 천지차이
-진원 깊이·내진 설비가 생사 갈랐다...같은 규모라도 피해는 극과 극
-칠레·대만은 이미 증명했다...조기경보·내진 보강이 해법
올여름 지구촌을 덮친 규모 7급 강진들은 하나의 불편한 사실을 드러냈다. 지진의 규모가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대비했는가’가 생사를 갈랐다는 점이다. 같은 규모 7이라도 진원이 깊어 충격파가 지층에 상당 부분 흡수된 지역은 사상자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일본과 같이 건물이 엄격한 내진 기준에 따라 지어진 지역 역시 큰 흔들림과 폭발에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
반대로 베네수엘라와 같이 진원이 얕고 내진 대비가 미비했던 지역은 비슷한 규모의 지진에도 대규모 참사로 번졌다.
◇ 두 달 새 다섯 번 규모 7...사망자 숫자는 천차만별
지난 6월 24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인근을 덮친 규모 7.2·7.5 연쇄 지진은 진원이 10km 안팎으로 얕았던 탓에 라과이라 일대 건물 상당수가 무너지며 사망자 6300명, 부상자 6만1000명이라는 참사로 이어졌다. 그런데 한 달여 뒤 일본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규모 7.1 지진은 대형 쇼핑몰이 가스 폭발로 파손되는 피해를 냈음에도 사망자는 39명이었다. 두 지진의 규모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사망자는 160배 가까이 벌어졌다.
이달 콜롬비아(규모 7.4)와 인도네시아(규모 7.7)의 대비도 비슷하다. 지난 10일 AP·CNN 등에 따르면 콜롬비아 지진은 콜롬비아 지질청이 “이번 세기 최강”이라 표현할 만큼 강력했지만 진원이 약 103km로 깊어 국내 언론 종합 기준 17일까지 사망자가 294명 선에서 늘었다.
반면, 진원이 15km에 불과했던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지진은 AP가 16일 53명, CBS뉴스가 17일 68명으로 집계를 갱신하며 규모(7.7)에 비해 인구가 적은 지역인데도 피해가 빠르게 불어났다. 여기에 알자지라 집계로 사망자 100명을 넘긴 6월 8일 필리핀 민다나오 규모 7.8 지진까지 더하면, 올여름에만 규모 7급 지진 다섯 건이 지구촌 곳곳을 훑고 지나간 셈이다.
◇ 왜 갈렸나...진원 깊이와 내진 설계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진원 깊이와 내진 대비 수준으로 설명된다. 진원이 얕을수록 지진파 에너지가 손실 없이 지표면을 때려 흔들림이 커지는데, 베네수엘라·인도네시아 지진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 따르면 콜롬비아 지진은 진원이 103km로 비교적 깊어 충격파 상당 부분이 지층에 흡수되면서, 규모 자체는 7.4로 컸는데도 얕은 지진들보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두 번째 변수는 건축 기준이다. 알자지라는 일본이 엄격한 내진 기준을 갖추고 있어 인도네시아나 중남미였다면 훨씬 큰 피해로 이어졌을 흔들림도 견뎌냈다고 짚었다.
실제로 구마모토 지진은 규모 면에서 베네수엘라 지진에 못지않았지만, 내진설계 덕에 대다수 대형 건축물이 붕괴를 면해 사망자를 40명 아래로 묶어뒀다. 결국 '불의 고리'냐 아니냐, 규모가 몇이냐보다 더 결정적인 건 그 땅 위에 무엇이, 어떻게 지어졌느냐였던 셈이다.
◇ 대책은 있다...조기경보와 불법건축 단속
그렇다면 대책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세계에서 내진 기준이 가장 엄격한 나라로 꼽히는 칠레는 1960년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5 지진을 겪은 뒤 건축 허가 기준을 규모 9.0 지진에도 견디도록 끌어올렸고, 2010년 강진 때는 비슷한 시기 지진을 겪은 최빈국 아이티보다 훨씬 적은 피해를 내며 그 효과를 입증했다.
일본의 내진 기술을 이식한 대만도 1999년 타이중 대지진 당시 건물이 무너지기보다 옆으로 기우는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사례에 공통으로 깔린 기술이 지진조기경보(EEW)다. 상대적으로 느린 S파가 도달하기 전 더 빠른 P파를 먼저 감지해 단 몇 초라도 먼저 경보를 내보내는 방식인데, 현재 전국 단위로 이 체계를 갖춘 나라는 일본·한국·대만·중국·이스라엘 정도에 그친다. 이번에 큰 피해를 낸 콜롬비아·인도네시아는 아직 조기경보 시스템을 개발 중이거나 일부 지역에만 적용하는 단계다.
또한 개발도상국 다수는 건물의 상당수가 인허가 없이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어서, 아무리 정교한 조기경보를 갖춰도 몇 초의 경보 시간이 붕괴를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이번 여름 전 세계를 휩쓸었던 릴레이 강진이 남긴 숙제는 조기경보망 확충과 함께 불법 건축 단속·기존 건물 내진 보강까지 묶은 종합 투자이다. 특히 재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는 국제사회 차원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측도 "이번 일본과 베네수엘라 지진의 피해 차이를 단순히 진원 깊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연구원 측 설명에 따르면 일본 구마모토 지진의 진원 깊이도 약 10km로 비교적 얕았고, 베네수엘라 지진 역시 전진은 약 10km, 본진은 약 24.3km 수준이었다. 두 지역 모두 얕은 지진에 가까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 차이는 진원의 깊이보다는 건축물의 내진 설계와 시공 수준, 재난 대비 능력 등 사회적 요인의 영향이 더 컸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 측은 또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비롯해 과거 대형 지진을 겪은 뒤 기존 건물에 대한 내진 보강과 지진 대응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깊이에서 규모 7급 지진이 발생했지만 피해가 상대적으로 제한된 데에는 이런 축적된 대비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다만 한반도에서 규모 7급의 얕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과학기술로 특정 규모와 위치, 시점을 미리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연구원 측 설명이다. 결국 지진 자체를 피하는 것보다 강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내진 성능을 높이고, 신속한 경보와 대피 체계를 갖추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책이라는 의미다.
올여름 잇따른 강진이 보여준 것은 규모 7이라는 숫자 자체가 곧 대참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강도의 흔들림도 어떤 건물과 도시를 만나느냐에 따라 재난의 크기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지진의 규모를 줄일 수는 없지만, 그 지진이 만들어낼 피해 규모는 인간의 대비로 줄일 수 있다는 교훈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