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의 경쟁 구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데이터센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여겨졌던 GPU 확보 경쟁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냉각 기술인 ‘열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 AI 서버의 전력 소비와 발열이 폭증하면서 냉각은 더 이상 보조 설비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확장성과 연산 능력을 결정하는 전략 기술로 자리 잡았다.
삼일PwC가 19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AI 시대의 데이터센터 경쟁력이 GPU 보유량만으로 평가되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전력·공간·열 관리의 효율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성능 AI 서버가 늘어날수록 전력 밀도와 발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이를 제어하는 능력이 곧 데이터센터의 연산 능력과 직결되는 구조가 됐다.
냉각 기술은 같은 전력과 공간에서 더 많은 AI 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레버리지 기술’로 평가된다. 특히 기존 공랭식은 공기의 낮은 열전달 효율 때문에 고성능 AI 서버의 발열을 감당하지 못하며 물리적 한계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칩에 냉각판을 직접 밀착시키는 액랭식(D2C)과 서버 전체를 특수 냉각유에 담가 열을 제거하는 액침냉각이 차세대 기술로 급부상하고 있다. 액침냉각은 연평균 24%가 넘는 성장률이 예상되며, 초고밀도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인프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냉각산업의 가치 중심축도 변화하고 있다. 냉각장비 판매 중심의 시장 구조가 전력·냉각·제어를 통합 운영하는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AI 기반 자율 냉각 기술이 확산되며 냉각은 데이터 기반 운영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폐열 활용, 모듈러·엣지 데이터센터 등 새로운 성장 영역도 열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버티브(Vertiv),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 존슨 콘트롤즈(Johnson Controls) 등이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고 엔비디아와 공식 레퍼런스 파트너십을 맺으며 업계 표준을 선점하고 있다.
수처리 기업 에코랩(Ecolab)의 쿨아이티(CoolIT) 인수, 전력 관리 기업 이튼(Eaton)의 보이드 서멀(Boyd Thermal) 인수 등 인접 산업의 대기업들도 속속 냉각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더욱 심해지는 흐름이다.
국내 기업들도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SK엔무브는 윤활유·기유 기술을 활용해 액침냉각용 절연유를 개발해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 상용 공급하고 글로벌 기업 GRC에 지분을 투자했다.
GST는 자체 개발한 액침냉각 기술로 상용 납품에 성공했으며, 삼성전자는 유럽 최대 공조업체 플렉트(Fläkt)를 인수해 역량을 강화했다. LG전자는 무급유 터보 칠러 등 HVAC 기술을 확대하며 관련 시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가 아직 실증 및 초기 상용화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글로벌 선도 기업 대비 시스템·플랫폼 역량과 엔비디아 공급망 등 표준 생태계 편입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은 글로벌 선도 기업과 정면 승부하기보다 특정 기술 영역의 전문성을 확보한 뒤 글로벌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니치 투 얼라이언스(Niche-to-Alliance)’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 차원의 액침냉각 인허가 체계 정비, 국가 인증센터 설립, R&D 투자, 글로벌 외교 지원 등도 필수라는 분석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은 GPU를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열을 제어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냉각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된 지금, 한국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 향후 AI 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할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