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반, 어둠이 아파트 뒷산 수명산의 나무들 잔가지 사이로 스며들 때, 필자는 습관처럼 운동화 끈을 푸는 대신 양말을 벗어 맨발이 된다. 그리고 오르막 산길을 오른다. 구두 속에서 온종일 숨죽이고 있던 10개의 발가락이 시원한 산 공기를 맞으며 기지개를 켠다.
한 달 전 맨발로 첫발을 디딘 산길은 생소하고도 아찔했었다. 작은 돌과 모래의 거친 흙바닥이 발바닥을 찌르르 자극했다.
열대작물인 코코넛(야자나무)의 열매껍질에서 추출한 천연 섬유(코이어, Coir)를 꼬아서 만든 야자 매트를 밟을 때는 푹신한 감촉이 전해온다. 그렇게 어둠 속을 밟으며 오르기 25분. 산 정상에서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산자락 끝에 조용히 둥지를 튼 황톳길에 도착해 30분 정도 항해를 시작한다.
그리고 발을 씻고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오면 맨발 걷기는 끝난다.
돌이켜보면 이른바 ‘황톳길 걷기’의 원조는 충청권 소주 업체인 선양(옛 대선주조)의 조웅래 회장이 조성한 계족산 황톳길일 것이다. 기업인의 사재 출연으로 시작된 이 소박한 시도는 순식간에 전국 지자체로 번져나갔다.
전국 맨발 산책로는 약 2,000곳으로 총길이가 825km다. 2023년 말만 해도 전국에 약 230여 곳에 불과했으나, 전국적인 맨발 걷기 열풍(어싱)에 맞춰 각 지자체가 다투어 산책로나 근린공원에 황톳길을 조성하면서 2년 만에 8~9배 가까이 급증했다.
대전 계족산 황톳길(14.5km)처럼 대규모 임도를 따라 만들어진 긴 순환 코스가 있지만 대부분 아파트 뒷산, 하천변, 근린공원 내에 100m~500m 내외(평균 300~400m)의 소규모 순환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필자가 걷는 황톳길은 순환 둘레가 50미터가 될까 말까다. 게다가 “바닥이 딱딱해서 도저히 못 걷겠다”면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황톳길이 촉촉하고 질척한 상태였다.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처럼 지자체가 앞다투어 황토를 깔고 전 국민이 맨발로 걷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그 과학적 근거는 해외에서 '어싱(Earthing)' 또는 '그라운딩(Grounding)'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해 오고 있었다.
의학적·생리학적으로 밝혀진 어싱의 핵심은 '전자의 이동'이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 미세먼지, 가공식품, 그리고 각종 전자파에 노출되면서 체내에 활성산소가 쌓인다.
활성산소는 양전하(+)를 띠며 세포를 공격하고 만성 염증을 유발한다. 반면 지구 표면, 즉 땅은 무한한 음전하(-)를 띤 자유전자의 공급원이다. 맨발이 촉촉한 땅에 닿는 순간, 음전하를 띤 전자가 체내로 유입되어 양전하의 활성산소를 중화시킨다.
이를 통해 체내 염증 수치가 낮아지고 혈액 순환이 개선된다.
특히 젖은 황톳길은 최고의 '전도체'의 역할을 한다. 수분을 머금은 황토는 건조한 흙보다 전기 전도율이 수십 배 높다. 지붕을 씌우고 물을 뿌려 질척하게 만든 황톳길이야말로 체내 정전기를 배출하고 음전하를 흡수하는 최적의 의학적 환경인 셈이다.
이밖에 발바닥 전체에 분포한 반사구(反射區, Reflex Zone, 우리 몸의 특정 장기나 기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신체 표면의 반사 부위’)를 자극해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평소 쓰지 않던 발목 주변 소근육을 강화하여 자율신경 균형과 수면의 질을 높인다는 연구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황톳길 걷기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황톳길은 walking(걷기)보다 'earthing(접지)'에 집중해야 한다. 촉촉한 황토에 발을 담그고 제자리에서 가볍게 밟아주는 것만으로도 수용성 전자의 이동은 충분히 일어난다. 걷는 행위보다 '땅과 연결되는 시간'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라는 인공 구조물에 갇혀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놓치고 기후 재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맨발로 황토를 밟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건강 증진을 넘어, 문명이 차단해 버린 어머니 지구와의 생체적 교감을 회복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지자체와 시민들이 지혜를 모아 정기적인 세척과 흙 뒤집기 작업 등으로 황톳길을 올바르게 관리해 나갔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