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은 한국에게 당연히 중요하지만, 지금은 미국에게 더 중요한 초크포인트(Choke Point), 즉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는 동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더 위대하게’라며 패권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한미동맹이야말로 미국의 힘을 최전선에서 증명해 보여주는 군사동맹임을 강조한다. 한미동맹이 흔들리면 미국의 패권도, 세계 평화도 흔들린다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후반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요청해 극적으로 성사된 한미동맹은 73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정치와 경제, 과학기술 등이 집약적이고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과 미국의 상호 방위조약의 가치와 역할이 양국에게 모두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한미동맹은 미국이 동아시아 리그에서 탈락되지 않도록 만드는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미동맹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경제 및 과학 기술적 가치가 어느 때보다 증대되고 있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풀고 손해를 보고 있다, 언제든 한미동맹에서 발을 빼도 미국은 아쉬울 게 없다’는 발언이 그런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가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에 온통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시점인 지난 8월 16일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북한의 김정은과 내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미국이 오래전에 한국과 연합 군사훈련에 참가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훈련을 상당히 축소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장의 구절구절마다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교차하게 만들고 있다.
김정은도 과연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관계라고 느끼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과 연합 훈련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인지, 한국 측과는 전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훈련을 축소할 권한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아무리 초강대국 대통령이라지만 해도 너무 안하무인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훈련도 크게 축소됐다. 아무리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덜컥 한미 훈련부터 축소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조치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11월 같은 달 중순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후에 극적인 만남을 연출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는 듯하다.
그간 북한과의 대화를 원했던 우리 정부로서는 의도가 무엇이든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나서 평화를 논의한다는 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미국과 북한 간 정상 만남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도 김정은과의 만남을 희망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태도는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일방적인 데 비해 북한은 아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기습적인 한미연합훈련 축소 지시 이틀 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가 57개라는 말을 꺼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핵무기 보유를 구체적인 숫자까지 거론한 것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지금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으면서 ‘북한 비핵화 원칙’의 양보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불러올 엄청난 파장을 알고 하는 것인지, 김정은과 사이를 좋게 하기 위해 양보도 괜찮다는 것인지, 한국 안보를 위태롭게 하면서 과연 얻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그간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적대시하는 정책을 철회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따라서 이런 요구가 어느 정도 수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대화에 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8월 17일 백악관 기자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반응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고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찍은 사진을 두 차례나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올리며 강하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김정은은 이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바심을 한껏 끌어올려 핵무기 보유 인정 지위를 얻어내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미국 의회가 나서서 트럼프 외교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데 우리 정부도 순순히 받아들이면 결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남북대화 노력과는 별개의 사항이다. 아울러 정부는 미국 측에 핵 추진 잠수함의 신속한 진행과 우라늄 농축 시설 허용 등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 느긋, 트럼프 대통령은 안달?
현재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톡톡히 누리고 있고 중국과의 관계도 호전돼 예전의 어려웠던 경제가 아니다. 낙후된 북한 경제를 일시에 발전시키는 데 굳이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은 나라 빚에 숨 막히는 미국 경제가 북한을 도와줄 처지가 될지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줄 거라곤 ‘핵 무기 보유 인정’이라는 것 말고는 줄 게 없다.
문제는 미국이 받아낼 게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받아낼 유일한 것이 ‘비핵화’인데 핵무기 인정을 주면 받을 게 없어지는 셈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안보 불안과 나아가 핵무기 개발 도미노가 일어날 가능성만 커진다.
◇이란 전쟁 화풀이에 한국이 당한 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을 치켜세우면서 이란 전의 도움을 거절한 한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중동 석유와 가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중동전에 개입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에너지 소비국이 자원 보유국을 공격하는 데 거든다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다.
석유 제1부국인 미국이야 중동에서 구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공격할 수 있겠지만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중동 산유국의 하나인 나라를 공격하는 데 참전한다는 게 얼마나 리스크가 큰가. 이란은 한때 우리나라가 많은 양의 석유를 수입했던 나라였다. 이란과는 언제든지 상황이 좋아지면 석유를 수입할 수 있는 나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힘으로 정의를 억누를 수 있었지만 21세기는 힘만으로는 정의를 가릴 수 없다. 인류의 양심과 지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제2차 대전 후 유엔을 만들고 정의와 평화를 착실히 쌓아왔다. 그 정의와 평화는 국제법으로 구현돼 각국이 존중해 왔다. 지금 초강대국 세 나라가 모두 국제법을 무시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정의는 목적이 아무리 훌륭해도 과정이 정의로워야 한다. 무력 사용은 오직 방어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정의와 평화의 원칙에 맞다. 이 모두의 원칙에 어긋난 이란 전쟁에 관여하는 것은 역사에 오짐을 남기는 것이고 한국과 같은 식민지 경험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트럼프, 대북 파격 행보 이어갈 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0일 취임했다. 취임 시 우려도 많았지만 그래도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는 일마다 일은 더 꼬였고 미국에게도 세계에게도 도움은커녕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김정은과의 대화 제의는 이란 전쟁의 실책을 덮기 위한 것이라고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 김정은과의 대화는 중간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미리 계획이 잡혀 있었을 것 같다. 다만 이란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을 빗나가 끝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은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동맹 때리기’, ‘적대국에 우호적으로 대하기’라는 수법이다. 동맹 때리기만 해도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할 텐데, 적대국을 우호적으로 대하면 더블 파격이다. 언론들이 트럼프의 입만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동맹 때리기에 무슨 깊은 뜻이 함축돼 있고 ‘애정’ 섞인 비판인 줄 알았다.
어떤 이들은 ‘국제 질서의 대전환’이니 ‘레짐 체인지’라는 그럴듯한 수사를 덧씌웠다. 필자가 보기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 , 레짐 체인지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주한미군 숫자와 실제 방위비 분담금을 틀리게 말하는 것은 역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술수라고 본다. 그는 모든 사실을 과장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기사 거리를 제공하고 화제를 몰고 다니며 사람들의 관심 속에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한 사람으로 보인다.
1기 정부 시절에는 주변에 전문가 그룹들이 있어서 견제가 이뤄졌는데, 2기에서는 전부 충성파에 둘러싸여 자신의 세계관과 경험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여과 없이 SNS에 올리는 것 같다. 미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고 한미동맹을 경시하는 정책을 강행한다면 미국의 패권은 중국과의 대결을 거론할 것도 없이 내리막을 걷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
◇한미동맹은 아시아의 무분별한 힘의 분출을 제어하는 ‘고삐’ 기능 있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도는 근대 이래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와 억압을 받았다가 이제 경제와 과학기술 면에서 서구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수백 년만에 움츠렸던 힘이 분출하며 갈등과 대결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과 필리핀과 일촉즉발의 무력 충돌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고, 북한은 핵무기 위협을 공공연히 투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난 8월 13일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지역인 쿠릴열도를 전격 방문하며 일본과 외교적 마찰을 빚은 바 있다. 푸틴의 이번 행보의 속내는 북극항로의 경제적 이익 수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우리나라 컨테이너선인 ‘팬스타 아크로’호가 지난 8월 22일 밤 부산항에서 유럽을 향해 출항했다. 실제 화물을 싣고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첫 선박이다.
이런 분쟁 예상 지역의 한가운데에 한미동맹은 이들 나라들의 무분별한 힘의 분출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의 존재 자체와 중단 없는 연합훈련은 사전에 이들 나라들의 경거망동한 군사적 행동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통해서 이 지역에서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자국 군대의 재정비와 비대칭 전쟁의 확대로 인한 무기 체계 전환에서도 한국 방산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 군사력은 이대로 놔두면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방산업은 그간 고비용 구조에 안주한 결과 많은 예산을 잡아 먹으면서도 비효율적인 무기 체계와 늦은 재정비로 미국 방위 시스템 전반이 고장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소망하는 남북통일은 동서독 통일이 그랬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력이나 남한과 북한의 바람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통일과 평화는 인간의 힘과 노력을 초월해 전쟁의 무상함을 깊이 깨닫고 평화를 갈구하는 전 인류의 염원이 국제 정세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는 오직 하늘에 겸손하고 평화와 선한 행위를 인류에게 힘 닿는 데까지 베풀어 세상에 기여하기만을 바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