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남권 반도체 산단에 하루 65만톤 공급...기존 수요 외에도 약 50만톤 추가 확보 과제
- 주암·장흥·동복댐 활용에 광주 하수처리수 하루 30만톤 재이용 추진
-“광주·전남·전북 누수만 줄여도 하루 최대 30만톤 절감 가능”...농업용수 관수로화도 제안
“농민 물 빼앗는 방식 안돼”...기업 공정수 재활용·농업인 및 댐 주변지역 보상책 병행 주문
정부가 호남에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하루 약 50만톤에 달하는 산업용수가 추가로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기존 댐과 농업용수, 하수처리수 재이용, 상하수도 누수 저감 등 지역 내 다양한 수자원을 함께 연계해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새로운 대규모 댐을 짓는 대신 기존 수자원을 극한으로 활용해 물을 확보하자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기존 댐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농업용수 공급시설을 현대화하는 한편, 하수처리수를 다시 산업용수로 사용하고 현재 상수관망에서 새고 있는 물을 줄여 사실상 ‘새로운 수원’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농업용수와 발전용수를 산업용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농민이나 댐 주변지역 주민에게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되며, 물을 사용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기업 역시 공정수 재이용률을 높여 신규 취수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물포럼 제36차 토론회 ‘3대 메가프로젝트 반도체 산업용수 공급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호남권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에 필요한 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토론회는 국가물관리위원회와 공동주최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K-water), 한국수력원자력, 한국환경공단,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후원했다.
토론회 측은 이날 행사의 목적을 3대 메가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다양한 수자원 확보 방안과 발전용 댐·농업용 저수지의 다목적 이용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하루 65만톤 필요…댐·하수처리수 등 ‘다층적 물 공급망’ 구축
정부가 현재 구상하는 호남권 반도체 신규 산업단지의 필요 용수는 하루 약 65만톤이다. 이를 위해 기존 다목적댐과 발전용댐, 농업용 저수지뿐 아니라 하수 재이용수까지 여러 수원을 동시에 활용하는 이른바 ‘다층적 물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김호은 기후에너지환경부 물이용정책관은 이날 ‘3대 메가프로젝트 반도체 산업용수 확보 방안’ 발제를 통해 “반도체 초강대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층적 물 공급망을 만들어 준비해야 한다”며 반도체 산업용수 확보를 단순한 산업지원책이 아닌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물 정책의 핵심과제로 규정했다.
정부는 특히 댐 등 기존 수자원 시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하수 재이용수와 같은 지속 가능한 수원을 개발하는 동시에 발전용·농업용 수자원의 연계 활용을 강화하는 3단계 전략을 제시했다.
호남권의 경우 우선 주암댐과 장흥댐의 여유량을 활용해 하루 약 15만톤을 확보하고 동복댐 증축 등을 통해 약 30만톤의 공급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동복댐 증축 방안은 현재 기본구상 용역이 진행 중으로, 구체적인 사업방식은 용역 결과를 토대로 확정될 예정이다.
여기에 광주 군공항 인근의 대규모 하수처리장도 새로운 수원으로 활용한다. 광주 하수처리장의 처리 규모가 하루 약 60만톤에 달하는 만큼 이 가운데 약 30만톤을 고도 정화해 반도체 산업에 사용할 수 있는 재이용수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하수처리수를 역삼투압(RO) 방식 등으로 추가 처리해 산업용수 수준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미 청주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등에서 하수 재이용수가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사업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 보성강댐·나주호까지 활용…농업용수는 영산강물로 대체
발전용댐을 산업용수 공급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호남에서는 주암댐 상류에 위치한 보성강댐의 방류 방식을 조정해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2022~2023년 광주·전남 가뭄 당시 보성강댐과 주암댐을 연계 운영했던 경험을 통해 발전용댐의 용수공급 가능성을 확인한 상태다.
농업용수 활용의 핵심은 나주호다. 정부는 나주호에서 농업용으로 공급하던 물 일부를 산업용으로 활용하는 대신 농업지역에는 영산강 하천수를 끌어와 공급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관로와 정수시설을 설치해 영산강물을 농업용수로 대체 공급한 뒤 기존 나주호 물을 산업용수로 돌리는 방식이다.
◇ 농업용수 절반 가까이 손실…‘스마트 관수로화’로 효율 높인다
정혜련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두 번째 발제를 통해 농업용수 공급체계 자체의 현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전체 수자원 이용량 가운데 약 41%가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지만 개수로 위주의 공급체계 때문에 실제 사용되는 물의 비율은 공급량의 약 4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농업 수리시설 상당수가 오래돼 물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농경지 면적이 줄었다고 해서 농업용수 사용량이 같은 비율로 감소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
연구에서는 농경지 면적이 약 15% 감소했음에도 용수 공급량 감소폭은 약 2.5%에 그쳤다.
이에 농식품부는 흙수로와 개수로를 관로 방식으로 바꾸는 ‘스마트 관수로화’를 추진하고 원격 자동관리 수문과 계측·예측 시스템 등을 도입해 농업용수 손실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은 농업용수 관수로화율이 약 35%인 반면, 우리나라는 약 1% 수준에 머물러 있어 개선 여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나주호 물을 산업용으로 활용하더라도 기존 농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사업의 전제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영산강에서 대체 농업용수를 공급할 경우 나주호보다 낮은 수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수시설을 설치하고, 나주호 말단지역까지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 보강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 “새 물 찾기 전에 새는 물부터”…누수 줄이면 하루 30만톤 절감 효과
전문가들은 이날 정부가 제시한 방안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단순히 ‘물을 어디에서 더 가져올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이미 확보한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김두일 대한상하수도학회 회장(단국대 교수)은 하수처리수 재이용과 함께 상수도 누수 저감을 사실상 새로운 수자원 확보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회장이 광주·전남·전북의 상수도 통계를 분석한 결과 광주의 누수율을 서울 수준으로 낮출 경우 하루 약 2만3000톤, 전남과 전북의 누수율을 각각 개선할 경우 지역별 약 14만톤씩을 추가로 절감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광주·전남·전북에서 하루 약 30만톤에 달하는 물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지역별로 수원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절감한 물을 그대로 반도체 산단으로 보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물 손실을 줄이는 것 자체가 그만큼 신규 수원을 확보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취지다.
김 회장은 농업용수에서도 같은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산업이 농업용수를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라, 반도체 투자를 계기로 노후 농업용수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이 과정에서 절약된 물을 농업과 산업이 나눠 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댐과 하천, 상수도, 하수재이용수, 농업용수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수량과 수질을 실시간 관리하는 ‘스마트 워터 그리드’ 구축도 제안했다.
평상시에는 경제성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수원을 우선 이용하고 가뭄 시에는 하수 재이용수 비중을 높이는 반면 농번기에는 농업용수 공급 우선순위를 높이는 식으로 상황에 따라 ‘워터 믹스’를 조정하자는 구상이다.
◇ 농업용수 전환에 농민 동의·보상 전제…“식량안보도 고려해야”
그러나 농업용수를 산업용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단순한 설비 개선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상우 한국농어촌공사 수자원정책지원단장은 “농업용수는 단순한 자원을 넘어 식량안보와 농업인의 생계에 직결된 자원”이라며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은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을 전제로 농민들의 사전 동의와 충분한 소통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가 전략산업 등을 위해 농업용수 공급을 제한할 경우 발생하는 농가 손실에 대한 보상 기준을 사전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만이 2021년 극심한 가뭄 당시 반도체 산업에 물을 우선 공급하면서 농업용수를 제한하는 대신 휴경 보상금을 지급했던 사례도 언급됐다.
농업용수를 산업용으로 활용할 때 농민에게 발생할 손실과 대체시설 운영비, 농업기반시설 재투자 비용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 “기업도 물 확보 책임”…공정수 재이용으로 신규 취수 줄여야
김성준 건국대 교수는 산업계 역시 물 확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댐과 농업용수, 생활용수를 동원하기 전에 반도체 기업 내부의 공정수 재이용률부터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반도체 기업들의 공정수 재이용률을 해외 선진수준으로 높이면 상당한 신규 취수량을 줄일 수 있고, 여수·광양권 석유화학산업 등 다른 대규모 산업시설에서도 공정수 재이용을 확대하면 추가적인 수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수처리수 역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호남 반도체 용수 공급의 ‘기본 수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특히 정부가 제시한 댐 공급량이 평균적인 조건에 맞춰져 있는 만큼 50년 빈도와 같은 극한가뭄 상황까지 고려한 ‘확정 공급량’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로 과거보다 극한가뭄이 잦아질 경우 장부상 공급 가능한 물과 실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물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승진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충북대 교수)은 농업용수 관수로화와 계측·과학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나주호 농업용수를 산업용으로 전환하고 영산강물을 농업용으로 공급할 경우 수질 차이에 따른 농업인의 우려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수처리 비용과 유지관리 책임까지 사전에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 안보도 중요하지만 식량주권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 “전력처럼 물에도 예비용량 필요”…극한가뭄 공급 안정성 쟁점
배영대 K-water 수자원기획처장은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가 광역시 하나에 버금가는 규모의 물을 새로 필요로 하는 만큼 지역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공급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기존 다목적댐은 통상 20~30년 빈도 가뭄에서도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반면, 농업용 저수지는 약 10년 빈도 가뭄을 기준으로 하는 만큼 서로 다른 안정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래 기후변화까지 감안하면 물 공급의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력계통의 공급예비력처럼 수자원에도 일정한 ‘예비용량’을 확보하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발전용댐의 다목적 활용 자체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2022~2023년 광주·전남 가뭄 당시 보성강댐과 주암댐 연계운영을 통해 비상 용수를 확보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시적인 가뭄대책을 넘어 상시 산업용수를 공급하려면 물 배분과 댐 운영에 대한 제도적 틀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승영 한국수력원자력 수력운영실장 역시 발전용댐 활용을 “신규 댐 건설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기존 시설의 운영방식을 전환하는 것만으로 상당량의 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실용적인 대안”으로 평가했다.
다만 발전용으로 허가된 댐을 장기간 산업용수 공급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일시적인 운영협조에 맡기지 말고 하천법 등을 개정해 안정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댐의 물을 다른 지역 산업단지에서 사용할 경우 수원지역 주민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천수 사용료 등의 일부가 수원지역과 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유철상 한국수자원학회 회장(고려대 교수)은 정부가 제시한 공급계획의 ‘안정성’을 보다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 회장은 호남권 반도체 산업단지에 필요한 하루 65만톤은 광주광역시 전체가 사용하는 물과 맞먹거나 이를 넘어설 정도의 막대한 규모라며 기존 수자원 시스템에서 단순 절약만으로 전량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암·장흥댐 등의 기존 물량을 최대한 활용해 산업용수를 공급할 경우 장부상 수량은 확보할 수 있더라도 가뭄에 대응할 여유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2~2023년 가뭄 당시 호남의 기존 댐들이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계획된 공급량을 빼내고 난 뒤의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별도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댐·농업용수·하수재이용 ‘총동원’…관건은 가뭄 대응·상생
결국 이날 토론에서는 호남 반도체 산업용수 문제를 해결할 단일한 ‘묘수’는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기존 댐의 여유 수량과 발전용댐을 활용하고, 나주호 농업용수를 산업용으로 전환하는 대신 영산강물을 정화해 농업용으로 공급하며, 광주 하수처리수 재이용과 상수도 누수 저감, 농업용 관수로화, 기업 내부의 공정수 재활용 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물 확보 정책이 기존 이용자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발전용댐 주변지역에는 물 이용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을 돌려주고 농민들에게는 대체용수와 손실보상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기업들도 정부가 물을 공급해주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공정수 재이용률을 높여 신규 용수 수요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정부 역시 공급 과정에서 농업인이나 댐 주변지역 주민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호은 정책관은 “발전용 댐 주변지역 주민이나 농업용수를 사용하던 농업인들이 물을 빼앗긴다고 느끼지 않도록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대체 인프라도 함께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호남 반도체 안착의 열쇠…‘용수 확보’ 넘어 ‘가뭄 대응·비용 분담’이 핵심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의 성패가 단순히 공장 부지를 마련하는 문제를 넘어 전력과 용수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의 하루 65만톤의 용수 공급계획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나 많은 물을 확보할 것인가’와 동시에 ‘극한가뭄에도 그 물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가’, ‘기존 물 이용자와 비용·편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 세 가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