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둘러싸고 정부가 사회적 대화와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정부는 경제적 타당성과 산업별 영향을 분석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농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CPTPP가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수입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의 국내시장 접근이 확대되면 국내 농산물의 가격과 판로, 농가소득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협상에서 민감품목을 얼마나 지킬 것인지, 피해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는 당연히 중요한 쟁점이다.
◇ CPTPP가 불러 올 파장
그러나 CPTPP의 영향을 농민의 손익으로만 계산해서는 지역경제가 겪을 충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농민도 소비자인지라 농가소득은 전통시장과 동네마트, 음식점, 농기자재점, 운송업체 등에서 다시 지출된다. 따라서 농산물 생산과 농가소득이 감소하면 지역 소비가 위축되고, 그 영향은 소상공인의 매출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CPTPP는 농업의 문제인 동시에 지역상권의 문제다.
시장 개방의 영향은 업종별로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국내산을 주로 취급하는 전통시장 상인과 산지유통인, 식재료 공급업체는 국내 농산물의 생산과 거래가 감소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국내산 원료를 고집하는 김치·반찬·장류 등 지역 식품제조업체도 국내산과 수입산의 가격 차이가 커지면 원가 부담을 받을 수 있지만, 수입 원료를 사용하는 업체는 원가 인하의 편익을 얻을 수도 있다. 품목과 원료 조달구조에 따라 영향을 구분해 살펴야 하는 이유다.
기업의 대응능력에도 차이가 있다. 대형 유통기업과 프랜차이즈는 대량 구매와 공급처 다변화, 자체 물류망을 활용할 수 있지만, 소규모 사업자는 구매 물량과 자금, 시장정보와 물류시설이 부족해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CPTPP 영향 평가는 농업 생산과 농가소득뿐 아니라, 그 변화가 지역의 유통·외식·식품제조업의 매출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해야 한다. 개방의 편익과 비용이 산업·지역·기업 규모별로 어떻게 배분되는지 확인해야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보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한식당이 중요한 이유
이러한 관점에서 동네 한식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식당은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구매, 조리를 거쳐 음식으로 판매하는 생활권의 식품산업이다. 한식 음식점업이 외식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밥·국·김치·반찬에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한식당은 국내 농산물의 중요한 다품목 수요처라고 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5년 외식업체 조사에서도 사과·배·계란·풋고추와 홍고추·대파·배추·무·쌀·양파·감자의 국산 사용 비중은 96% 이상으로 나타났다. 멸치·닭고기·당근도 81∼89%였다. 이 수치는 한식당만을 대상으로 한 결과는 아니므로 한식당의 국산 사용률이 특별히 높다는 근거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식업이 주요 국내산 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문제는 국내산 농산물을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생활권 수요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의 2024년 한식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식 음식점 및 주점업의 사업체 수는 전년보다 2.1%, 한식 메뉴 매출액은 3.9% 감소했다. 한식당이 전체 외식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45.6%에서 2024년 41.8%로 낮아졌다.
최근 감소세는 국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6년 7월 전국 한식 음식점 사업자는 40만 3,299명으로 1년 전보다 6,001명, 1.46% 감소했다. 이는 해당 기간 폐업한 음식점의 총수가 아니라 신규 진입과 폐업 등이 반영된 사업자 수의 순감소 수치이지만, 한식당의 경영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최근 지표다.
한식당은 디지털 판매 전환에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5년 외식업체 경영실태조사에서 한식점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56.7세였고, 배달앱을 이용하지 않는 업체는 79.2%로 나타났다. 이것만으로 배달앱 미활용이 폐업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경영주 고령화와 함께 디지털 역량 부족, 국·찌개와 여러 반찬을 함께 포장해야 하는 메뉴 특성이 배달과 온라인 판매 전환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반면 2024년 한식산업 실태조사에서 한식 제조업체 수는 전년보다 3.5%, 한식 제품 매출액은 17.1% 증가했다. 이 결과만으로 소비가 외식에서 가공식품으로 직접 이동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매장 중심의 한식 외식업과 유통·배송이 가능한 한식 제품시장이 서로 다른 흐름을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식 맛과 조리 기술을 가진 동네 한식당이 배달·포장·상품화와 온라인 판매에 대응하도록 지원하는 등, 전통적인 매장 영업을 성장하는 한식 제품시장과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 지역농산물과 지역경제
가구 형태와 식사 방식, 유통채널이 달라지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동네 한식당은 배달·포장·상품화와 온라인 판매에 대응할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다. 음식 맛과 조리 기술을 잘 갖추고 있어도 포장 개선과 온라인 홍보, 배달상품 개발을 혼자 감당하기는 어렵다. 매장 영업과 한식 제품시장 사이를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정책 지원의 근거는 특정 업종 보호보다 개별 소상공인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공동조달·전처리·물류·상품화·디지털 판매의 구조적 문제에 두어야 한다. 지역농산물의 안정적인 소비, 지역 고용 유지와 주민의 일상적인 식생활이라는 공익적 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원 대상도 업종명만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 지역농산물 구매계약과 원산지 표시, 위생·품질관리, 성과평가에 동의하는 음식점을 공개 모집해야 한다. 한식당을 중심으로 하되, 일정 기준 이상 지역농산물을 사용하고 사업 목적을 충족하는 반찬가게와 다른 음식점에도 참여 기회를 열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이를 한식당 특혜가 아니라 지역농산물의 수요 확대와 소상공인의 공동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역농산물 동네밥상’
이러한 원칙에 따라 ‘지역농산물 동네밥상 상생계약’을 제안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지방자치단체가 참여 음식점을 공개 모집하고, 음식점별로 흩어진 식재료 구매 수요를 품목별로 모으는 방식이다. 여기서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공영도매시장과 산지조직은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한다.
음식점의 과거 판매량과 예약·배달 주문정보를 활용하면 주 단위 또는 월별로 필요한 쌀·배추·양파·대파 등의 수요를 일정 범위에서 예측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산지와 가격범위, 물량, 규격, 공급기간과 가격조정 조건을 미리 협의하면 농가는 생산과 판로를 계획할 수 있고, 음식점은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을 줄일 수 있다. 가격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변할 때 적용할 규칙을 사전에 합의해 예측 가능한 거래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공동구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지에서는 농산물을 대량으로 출하하지만, 동네 음식점은 손질된 식재료를 소량·다품목으로 자주 주문한다. 이 간극을 줄이려면 세척·절단·소분을 담당하는 공동 전처리와 상권 단위 공동배송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설을 건립하기보다는 기존 산지유통센터와 농산물 가공센터, 지역 식품제조업체 등을 우선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공영도매시장도 생활권 식재료 조달 거점으로 역할을 넓힐 수 있다. 개설자와 시장 내 유통주체가 지역 외식업체의 주문을 모으고, 수요가 확인된 물량을 정가·수의거래로 산지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전자주문과 공동물류, 대금정산을 지원하면 소규모 음식점도 필요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다만 공영도매시장이 음식점의 구매를 독점하거나 기존 상인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도록 거래조건과 수수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생산자와 구매자의 거래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 사업이 지속되려면 소비자에게도 분명한 이익이 있어야 한다. 지역농산물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더 비싼 가격이나 불편을 감수하라고 해서는 소비가 오래 이어지기 어렵다. 공동구매와 공동배송으로 음식점의 원가와 부대 비용을 낮추고, 제철 농산물을 활용해 가격과 품질이 좋은 메뉴를 개발해야 한다. 소비자가 원산지와 생산자 정보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상생배달앱에 ‘지역농산물 동네밥상’ 코너를 만들면 소비자는 가까운 한식당의 백반과 국·탕·반찬을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다. 음식점은 낮은 수수료로 배달시장에 진입하고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다.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메뉴와 반복 구매 메뉴를 분석하면 다음 달 필요한 농산물의 종류와 물량도 예측할 수 있다. 이 정보를 음식점의 구매계획과 농가의 생산·출하 계획에 활용하는 것이다.
배달에 적합한 메뉴와 포장도 함께 개발해야 한다. 국물이 새지 않고 반찬의 맛과 안전성이 유지되도록 포장을 개선하되 포장비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업의 성과는 입점 음식점 수나 할인 주문 건수가 아니라, 할인이 끝난 뒤에도 소비자가 다시 주문하는지, 음식점의 실제 수익과 지역농산물 구매량이 늘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지역농산물의 새로운 수요를 만들려면 음식점 메뉴를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키우는 정책도 필요하다. 먼저 판로 확대가 필요한 농산물을 선정하고, 이를 활용한 ‘지역농산물 K-푸드 레시피 경연대회’를 열 수 있다. 한식당과 청년 셰프, 식품 소상공인이 국·탕·반찬·소스·밀키트 등의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다만 경연대회는 시상과 홍보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시장성 있는 메뉴와 상품을 발굴하는 출발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발굴된 메뉴는 상생배달앱과 지역시장에서 먼저 시판해 봄으로써 맛과 가격에 대한 소비자 반응, 반복 구매 여부와 음식점의 실제 수익을 확인한다. 가능성이 입증된 메뉴는 지역 식품제조기업이나 공용가공센터에 맡겨 간편식·밀키트·반찬 등의 제품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음식점이 조리법과 브랜드를 제공하고 제조기업이 위생 관리와 대량생산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한유원)은 상품의 시장성을 진단하고 포장 개선과 제조기업 연결, 온라인 판매와 기업 간 거래를 지원한다. 공영홈쇼핑은 ‘지역먹거리관’과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전국 소비자에게 시험 판매하고 판매 결과를 다음 단계 지원에 활용한다.
국내시장에서 반복 구매와 안전성, 안정적인 생산능력이 확인된 상품은 수출기관과 해외 바이어의 검증을 거쳐 해외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다. 지역에서 개발한 한식 메뉴를 지역 판매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전국 판매와 수출까지 단계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기관별 역할은 기존 기능에 맞게 나누는 것이 효율적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지방자치단체는 음식점 발굴과 공동구매 조직화를, 농림축산식품부와 aT는 산지조직과 계약공급을 지원한다. 공영도매시장은 소량·다품목 공급과 물류·정산을 연결하고, 상생배달앱은 지역 수요를 검증한다.
한유원과 공영홈쇼핑은 상품화와 전국 판로를, 수출기관과 해외 바이어는 국가별 기준과 시장성 검증을 맡는다.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사업을 하나의 성장경로로 연결하는 편이 낫다.
사업은 생산 기반과 외식 수요, 물류 여건이 다른 몇 개 지역에서 먼저 실증한 뒤 확대할 필요가 있다. 참여 음식점 수와 배달앱 입점 수, 방송 횟수보다 농가의 계약 물량과 반복 거래, 음식점의 식재료 원가와 주문당 이익, 소비자의 반복 구매가 실제로 늘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지원이 끝난 뒤에도 거래가 지속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성과 지표다.
◇농업과 소상공인, 소비자를 위해
CPTPP를 둘러싼 사회적 대화가 어떤 품목을 보호하고 피해를 얼마나 보상할 것인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장 개방 이후 누가 우리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구매할 것인지까지 논의해야 한다.
생산 기반과 거래관계가 무너진 뒤 지급하는 보상은 지역경제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생산자가 물량과 판로를 미리 계획하고, 지역 음식점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사전적 보완 대책이다.
시장 개방은 국경에서 시작되지만, 그 영향은 동네 식탁에서 나타난다. 지역의 한식당이 사라지면 농민은 일상적인 구매자를 잃고 주민은 가까운 곳에서 영양 균형 잡힌 식사를 흡족하게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잃는다.
CPTPP에 대한 국내 보완 대책은 농가 피해를 엄밀히 산출하는 데서 출발하되 지역농산물의 수요를 설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지역농산물 공급과 동네밥상, 상품화와 수출을 하나의 성장경로로 연결하는 것이 농업과 소상공인, 소비자를 함께 지키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