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전수조사를 두고 농업 현장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조사 이후 처분 방식과 농지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제기됐다.
정부는 투기와 불법 전용은 엄단하되, 관행의 임대차와 농사를 짓던 농지를 일정 기간 동안 농사 짓지 않고 묵혀 두는 휴경(休耕)은 특별법으로 구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농업계는 대규모 처분으로 인한 농지가격 하락과 고령농의 노후자산 훼손, 실경작자의 직불금 사각지대 등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후속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일 국회 지방소멸·기후위기농업혁신포럼은 ‘농지전수조사, 진단과 과제’를 주제로 조찬 세미나를 열고 농지 전수조사 추진 상황과 향후 제도 개선 등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앞서 당정은 농지 투기엔 엄정 대응하되 현장의 관행적 위반은 계도와 제도 개선으로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 이후에도 조사 방식과 사후 조치를 두고 현장의 우려가 계속되면서 추가적인 제도 보완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 “정부 목적과 현장 체감 상당한 간극...기존 방식으론 국면 전환 어려워”
이날 포럼 대표의원인 신정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정부의 목적과 농업 현장의 인식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진단했다. 신 의원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농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기류가 많아 현장의 목소리와 정부의 목적이 겉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기보다 현장과의 괴리를 좁힐 구체적인 쟁점별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행 농지법의 소유·임대차 구조가 농촌 현실에 맞는지, 앞으로 지향할 농정 방향과 부합하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현재 농지법은 상속이나 이농 등에 따른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폭넓게 인정하는 반면, 가족이나 이웃 간 실질적인 농지 임대차 거래는 엄격히 제한해 법과 현실 사이에 큰 괴라가 존재한다. 이에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무조건 막기보다 은퇴 후 귀향이나 농촌 정착 등 실제 이용 목적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 의원은 "정부의 기존 방침 반복만으로는 이미 퍼진 농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이번 논란을 농업과 농지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로 만들 것"을 강조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이면서 포럼의 전 대표인 서삼석 의원(더불어민주당) 역시 "정부가 농촌 현장의 특수성과 농업인이 처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짚었다.
서 의원은 "농지 전수조사 역시 정책의 당위성만을 앞세우기보다 현장에서 정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며 "정책 추진 과정에서 속도와 방향을 함께 살펴볼 것"을 주문했다.
◇ 투기·중대 불법은 원칙대로...관행적 임대차는 특별법으로 정상화
김기환 농림축산식품부 농지과장은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가 단순히 위반 농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농지제도 개편과 생산성 향상, 농업 세대 전환을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5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 행정정보와 항공사진 등을 활용한 기본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8월 3일부터 연말까지는 현장 확인을 중심으로 심층조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농지 전수조사 결과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농촌 현실에 맞춰 임대차 제도를 개선하고, 서류 문제로 직불금을 받지 못하던 실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방침이다.
또한 우량 농지는 농지은행을 통해 규모화하고 방치된 농지는 대체소득원으로 활용하고, 고령농의 매각 희망 농지는 농지은행이 사들여 청년농에게 공급함으로서 농촌의 세대교체를 이뜰어내는 전환점을 삼을 계획이다.
김 과장은 "전수조사 결과 위반 사항이 발견된다고 해도 곧바로 처분명령이나 이행강제금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라며 "중대한 위법이 아니라면 현행법상 자진 처분 기간이 주어지고 다시 성실하게 경작하는 경우 처분 의무가 유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실제 농사를 지을 의사가 없는데도 시세차익이나 개발·보상 이익을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명백한 투기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조치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허위로 농지를 취득한 뒤 불법 임대하거나 농업법인이 취득 농지를 임대·분할 매각하는 경우, 경매나 주말·체험영농 등의 명목으로 농지를 취득한 뒤 현지 농업인에게 불법 임대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농민끼리 농작업 편의를 위해 농지를 바꿔 경작하거나 자녀에게 증여한 뒤 부모가 계속 농사를 짓는 경우, 고령이나 질병으로 이웃에게 농지를 맡긴 경우 등 관행적 임대차는 정상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또한 농지은행 임대위탁과 제3자 임대를 통해 실경작자의 영농을 보장하고, 상속·이농 등에 따른 휴경 농지의 관리권 위탁 방안을 검토한다.
이와 함께 특별법을 제정해 1988년 이후 중단된 불법 전용 농지의 사후 전용을 38년 만에 한시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특별법에는 임대차의 관리권 위탁 절차 등이 담기며, 농지법도 별도 개정해 농촌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를 상시 개선할 계획이다.
◇ 전수조사 핵심은 투기 적발 아닌 농지 데이터 구축
농지 전수조사의 의미를 불법·투기 적발에만 맞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조병옥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지TF 단장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우리 농지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이를 미래 세대에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농지 전체 통계는 있지만, 개별 농지의 실제 이용 상태나 불법 전용 여부를 파악할 종합 데이터는 부족하다"며 "과거 조사에서도 행정정보상 소유자와 실제 권리관계가 일치하지 않거나 공부상 지목과 실제 이용 상황이 다른 사례, 사망자 명의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 등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실제 이용 현황의 불일치를 바로잡고 이를 토대로 미래 농지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 단장은 "농지는 식량안보와 농촌 유지 등 공공적 기능을 수행함으로 단순히 사유재산적 가치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다만 정부가 조사 초기부터 단속과 투기 적발을 지나치게 부각하면서 농민들 사이에 농지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긴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조사를 농지의 자산적 가치와 공공재적 성격을 함께 고려하면서 미래 농업·농촌을 설계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농업소득 낮은데 조사만 한다고 해결 안 돼...현장 불안부터 해소해야
농민들의 반발은 단순한 재산권 문제가 아니라, 낮은 농업소득과 인력 부족 등의 어려움 속에 농지 규제까지 강화된다는 생존권적 불안감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집행위원장은 “농업은 소득은 낮고 농사 지을 사람도 부족한 상황에서 전수조사만 실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소득을 높일 근본 대책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수조사만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농가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반드시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2021년 경기 여주와 화성에서 농지 전수조사에 참여한 경험을 언급하며 "한 지역을 조사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렸고, 비농업인 소유가 많은 지역에서는 실제 경작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며 "일부 지역에서 시범조사를 거쳐 문제점을 보완한 후 전국으로 단계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현장 조사 시 지자체와 조사원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제각각인 점도 혼란을 키우는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 처분 조치가 내려지진 않았으나 현장 조사원이 비닐하우스나 콘크리트 포장 등을 확인하며 “불법”이라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농민은 향후 처분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지적이다.
강 위원장은 "정부가 명확하고 통일된 현장 지침을 마련하고, 농민단체는 상담·민원센터를 운영해 현장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며 "고령농에게 농지는 평생 노동으로 축적한 자산이자 노후생활을 뒷받침할 경제적 기반인 만큼 향후 처분 농지가 대거 시장에 나올 경우의 영향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지은행의 매입 확대는 예산 한계로 농가 간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어 만능 해법이 아니"라며 "전수조사의 성과를 위반 적발 건수가 아니라, 투기 차단과 농지의 실제 농업 생산 활용도로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심층조사 1%만 처분돼도 연간 거래량 40%...2027년 이후가 문제
이날 포럼에선 농지 전수조사 이후 시장 충격 가능성을 수치화한 분석자료도 제시됐다.
채광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제시한 발표에 따르면, 현재 농지 가격이 약세를 보이나 최근의 약세는 전수조사 이전부터 약 3년간 이어진 토지시장 전반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 채 연구위원은 "현 단계에서 전수조사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진짜 변수는 2027년 이후 시작될 사후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층조사 대상 물량의 1%만 처분의무 대상이 되더라도 연간 농지 거래량의 약 40%에 해당하는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올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농지가격 하락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인구감소지역에서는 농업인이 감소하면서 농지를 사들일 수요도 함께 줄고 있다"며 "인구감소 지역 농지의 개인 매수자 가운데 같은 읍·면 거주자 비중은 2018년 37%에서 2026년 54%로 높아졌으며, 외부 수요가 빠진 자리를 지역 주민이 채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업인 감소로 지역 내에서 농지 매물을 소화하기 어려우므로, 인구감소지역 전체가 아닌 농지 수요가 부족한 읍·면을 선별해 취득 규제를 차등 완화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농지위원회 심의 간소화와 농업경영계획서 심사 기준을 조정 등이 제시됐다.
또한 국가 예산 한계를 고려해 농지은행은 매입보가 임대수탁 요건을 완화해 농지 이용을 정상화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임차농지가 약 47%에 이르는 현실을 반영해 농정 기준을 '소유 규제'에서 '실경작 조건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소유 규제만 강화하면 임대차가 오히려 음성화되고 임차농 보호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전수조사 이후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후속 조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처분보다 자율 시정과 농지은행을 통한 정상화를 우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실제 농사짓는데 직불금 못 받는 농민...전수조사로 권리 찾아줘야”
전수조사를 실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태문 농식품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종중 소유 농지나 소유주가 해외에 거주하는 농지 등을 실제 경작하면서도 임대차 관계를 공식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워 직불금과 경영체 등록에서 제외되는 실경작자 사례를 설명했다.
그는 "전수조사를 통해 실제 경작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이들이 정당하게 직불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농업인들이 가장 간절하게 요구하는 것은 실제 농사를 짓는 농지에 대해 직불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전수조사의 목표를 DB 구축에만 두지 말고 실경작자의 경작권과 직불금 수급권을 보장하는 데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이번 조사가 농민을 처벌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제도 밖에 있던 실경작자를 발굴해 권리를 지켜주는 정책이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하게 되면 현장의 불안은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기존 시스템 놔두고 왜 전수조사부터...농지는 고령농의 사실상 노후자산
포럼 연구책임의원인 임미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기존 농지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책임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농지를 보유한 관외 거주자 가운데 서울 거주자는 약 49만3천명, 경기 거주자는 약 45만명에 달한다. 임 의원은 "이들 가운데는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경우뿐 아니라 과거 직접 농사를 짓다 고령이나 건강 문제로 경작을 중단했거나 부모로부터 농지를 상속받은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지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농지에 대한 소유 욕망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한번 떨어진 농지가격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진다면 향후 고령농의 은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농지 전수조사의 필요성을 넘어 조사 이후의 처분과 정상화 방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이라는 데 무게가 실렸다.
아울러 이번 농지전수 조사가 일회성 단속에 그치지 않고 고령농의 은퇴와 청년농의 농지 확보, 실경작자 보호 및 농지시장 안정까지 연결하는 '종합적인 농지정책 개편의 결정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