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공석 사태와 재제청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헌법 전문가들과 긴급 좌담회를 열고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관계를 집중적으로 짚었다.
좌담회에 참석한 다수의 헌법학자와 법조인들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과 대등하거나 이를 제약하는 독립적인 권한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 과정에서 사법부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보조적·협력적 권한'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대법원장에게 다시 후보자를 제청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들과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법관 임명 관련 헌법전문가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좌담회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대법관 임명 절차를 둘러싼 헌법적 쟁점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에 대해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가운데 어느 권한이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는지,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조 대법원장이 지난달 22일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본격화했다. 대법관 공석은 이날 기준 213일째 이어지고 있다.
◇ 김민석 “제청권이 임명권보다 더 큰 권한인가”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좌담회 모두발언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 성격과 함께 장기간 이어지는 대법관 공석 문제를 제기했다.
김 대표는 "사법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기여해야 하는데 지금 국민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사법부 그 정점의 대법원 그 자체가 합헌적이고 민주적인가 하는 초유의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놓고 "제청이 권한으로 봐서는 과연 임명권보다 상위 또는 더 큰 권한인가"라며 "책무로 봐서는 과연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이렇게 침해되도록 행사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오늘 질문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좌담회가 긴급하게 마련된 점을 언급하면서 이번 논의를 통해 대법관 임명 절차와 재제청 문제에 대한 헌법적 방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강조했다.
◇ 서영교 “공석 213일째...대법관 제청은 권한이자 의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대법관 공석 장기화에 초점을 맞췄다.
서 위원장은 대법관 후보자가 추천된 지 250일이 지났고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으로 공석이 발생한 지 213일째라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 제27조가 모든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제청은 의무"라고 주장했다. 대법관 공석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서 위원장은 "대법관 제청은 중간 과정에서 필요한 권리이자 의무"라며 대법원장이 제청 절차를 장기간 진행하지 않은 것은 권한 행사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재제청 요구 문서의 형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서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 요구와 관련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의 부서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초 청와대가 보낸 문서에 필요한 부서가 없었던 것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는 전자문서로 전달됐고 해당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인사혁신처장의 부서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 제청까지는 인선 절차...대통령 임명권 보조하는 권한
헌법 전문가들은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갖는 법적 성격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법관 임명 절차를 후보자 추천부터 제청, 지명,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으로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 대법원장의 제청 단계는 최종적인 임명 행위라기보다 후보자를 선정해 대통령에게 제시하는 '인선 절차'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대해 "대법관 후보자 인선에 관한 절차를 진행하는 권한"이라며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 행사를 위한 '보조적 협력 권한'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반드시 해당 후보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통령이 임명할 의사가 없다면 제청을 반려하고 새로운 후보자를 제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다.
김 교수는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서로 대등하게 충돌하는 권한이라는 해석에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제청은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최종 행위에 앞서 진행되는 절차인 만큼 두 권한을 동일한 수준의 결정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제청권과 임명권 동등하다고 볼 여지 없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대법원장의 제청권보다 대통령의 최종 임명권에 무게를 둔 헌법 해석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법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과 동등한 권한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갖는 의미는 대통령이 대법관 임명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사법부의 의견을 첫 단계부터 반영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등한 권한으로 해석하기 어렵고,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후보자를 요구하는 것 역시 임명권의 범위 안에서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임 교수는 청와대가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에 대해 재제청을 요구한 것도 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 행사 범위에서 이뤄질 수 있는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 제청권도 권력분립 차원에서 존중해야
다만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권력분립이라는 헌법적 취지에 따라 존중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인 장범식 변호사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현행 헌법 규정만으로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무조건 임명해야 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의 임명 절차에 단순히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권한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과 권력분립이라는 관점에서 존중돼야 할 권한이라는 취지의 견해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좌담회에서는 대통령의 임명권이 최종적인 권한이라는 데 무게를 둔 의견이 주로 제시됐지만,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갖는 헌법적 의미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 셈이다.
◇ 재제청 거부 놓고 “직무유기”·“헌법적 의무 위반” 주장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을 놓고는 보다 강한 비판도 제기됐다.
김선택 교수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제청은 단순히 행사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 헌법상 의무의 성격도 함께 갖는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다면 이는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대통령이 자신의 임명권에 근거해 기존 후보자에 대한 제청을 반려하거나 재제청을 요구했다면 대법원장은 다시 후보자를 제청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 교수는 대법원장이 상당한 기간 안에 재제청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헌법적 의무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나아가 탄핵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좌담회에서는 이처럼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최종 임명 여부를 판단할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기존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법원장이 새로운 후보자를 제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 조희대, 재제청 요구 거부...6일 국감서 공방 전망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22일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조 대법원장 측은 재제청 요구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으며,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국정감사를 통해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대법관 임명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오는 6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조 대법원장을 대법원 국정감사 일반증인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와 대법관 공석 장기화 문제, 제청권에 대한 대법원의 헌법적 해석 등을 집중적으로 따져 묻는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법원장을 국정감사 일반증인으로 불러 신문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결국 이번 논란은 대법원장의 후보자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헌법상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 의무가 있는지, 장기간의 대법관 공석이 헌법상 책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등을 둘러싼 법리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