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기소를 함께 담당해온 검찰청이 78년 만에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재편된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2일 공식 출범했다.
기존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은 중수청으로 넘어가고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심사 등에 집중한다. 수사와 기소를 서로 다른 기관에 맡기는 형사사법 체계의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다만 두 기관 모두 정식 수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출범한 데다 중수청은 정원의 약 66%만 채운 채 업무를 시작했다. 전산시스템도 단계적으로 개통될 예정이어서 새로운 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검찰' 간판 내리고 '공소청'으로...서초동은 차분
이날 서울 서초구 공소청 일대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체제를 맞았다.
별도의 현판식은 열리지 않았지만 옛 대검찰청 정문에는 '공소청'이라는 새 현판이 내걸렸다. 청사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에서도 '검찰'이라는 명칭이 사라졌다.
공소청 출범에 따라 기존 대검찰청은 공소청으로, 서울고등검찰청은 서울광역공소청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서울중앙지방공소청으로 각각 변경됐다.
서울광역공소청 내부에서는 조직 개편에 따른 이사 작업이 이어졌다. 직원들은 수레를 이용해 새로 배정된 부서로 서류와 비품을 옮겼고, 로비에서는 서로의 배치 부서를 확인하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공소청 개청에 따른 시스템 개편 작업으로 중단됐던 내부 메신저도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만 당초 이날 오전 9시부터 가동될 예정이었던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개편 작업이 일부 지연되면서 민원실을 찾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공소청은 오전 10시 옛 대검찰청 청사에서 내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공개 개청식을 열었다.
◇ 공소청·중수청 모두 '수장 공백' 속 출범
공소청과 중수청은 모두 정식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첫발을 뗐다. 공소청은 이정현 공소청장 직무대행이 이끌고 있다. 법률상 직제는 검찰총장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중수청도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가 아직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지 않아 전종민 차장이 청장 직무를 대행한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은 전날 대통령 재가를 거쳤다.
중수청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을지로 르네스퀘어에서 개청식을 열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개청식에는 전종민 차장을 비롯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노경필 법원행정처장,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김영진 행정안전위원장,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김정욱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새로 임용된 지방중수청장과 간부들도 자리했다.
◇ 전종민 "중수청 최우선 원칙은 '절제'“
전종민 중수청장 직무대행은 출범 첫 일성으로 '절제'를 수사의 최우선 원칙으로 제시했다.
전 직무대행은 "한 사람이 선수와 심판을 겸할 수 없듯 한 기관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쥐면 스스로에게 엄격하기 어렵다"며 "수사가 기소를 정당화하고 기소가 다시 수사를 정당화하는 순환 속에서는 누구도 스스로를 멈춰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권력을 입법과 행정과 사법으로 나누었듯 이제 우리는 수사와 기소를 나눈다"며 "그러나 권력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뉜 권력이 저마다 스스로를 절제할 때 그 나눔은 비로소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수청은 '절제'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겠다"며 "지난날의 과오를 거울삼아 같은 잘못을 이름만 바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절제가 소극적인 수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 직무대행은 "절제는 수사를 덜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하겠다는 약속"이라며 "수사 역량을 키우려는 것도 더 많이 베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적게 베고도 병의 뿌리를 도려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중대범죄 앞에서는 단호하되 국민의 자유와 권리 앞에서는 한없이 신중한 수사기관이 되겠다"고 했다.
◇ 정치적 중립·수사 독립 등 5대 원칙 제시
전 직무대행은 중수청 운영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도 제시했다.
범죄 피해자와 사회적 약자를 가장 먼저 고려하고,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굳건히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직무 수행, 최고 수준의 전문 수사 역량 확보, 국민 인권과 적법절차의 철저한 보장도 약속했다.
중수청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천국제공항 사례를 들었다.
전 직무대행은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당시에도 안전성 등을 둘러싼 우려가 컸다고 언급한 뒤 "인천국제공항은 그 지적 하나하나를 풀어야 할 과제로 삼았고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으로 우뚝 섰다. 중수청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조직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제도가 다음 100년을 떠받치도록 그 뿌리를 깊게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더라도 국민을 위한 책임까지 나눠서는 안 된다"며 기관 간 공조를 당부했다.
윤 장관은 "각 기관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사건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빈틈없는 공조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며 "어떠한 권력과 지위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며 국민만을 바라보는 수사기관이 돼 달라"고 말했다.
◇ 중수청, 7대 중대범죄 전담...사건 이첩 요청권도
중수청은 기존 검찰이 담당하던 주요 직접수사 기능을 넘겨받아 중대범죄 수사를 전담한다.
수사 대상은 부패·경제·방위사업·마약·국가보호·사이버·법왜곡 등 7대 중대범죄다. 공소청과 경찰, 공수처, 법원 공무원의 범죄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
보이스피싱·금융증권·가상자산·마약·국가재정 분야에는 5개 합동수사 조직을 두고 전문 수사 기능을 이어간다.
중수청은 직접수사권뿐 아니라 다른 수사기관과의 사건 배분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다른 기관과 수사가 중복될 경우 수사 진행 정도와 공정성 등을 고려해 사건 이첩을 요청할 수 있고, 상대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 다만 공수처가 수사하는 사건의 경우 공수처장이 이첩 여부를 결정한다.
◇ 정원 2874명 중 1900명으로 출발...전산도 단계적 개통
중수청의 법적 권한은 출범과 동시에 부여됐지만 인력과 전산·사무환경 등 조직 기반은 아직 구축 중이다.
중수청은 전체 정원 2874명의 66.1%인 약 1900명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앞서 진행된 특례임용 공모에서는 지원자 2376명 가운데 615명이 신청을 철회했다. 정부는 출범 이후 추가 채용 등을 통해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다.
전산시스템도 우선 사건 접수와 배당 등 필수 기능부터 가동한다. 나머지 사건 처리 기능은 12월 초 개통할 예정이며 청사 사무환경 조성 공사도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기존 수사기관에서 사건 기록을 넘겨받은 뒤 누락 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배당하는 과정이 필요한 만큼 일부 사건의 본격적인 수사 착수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공소청, 검사 2292명 등 8182명 체제...직접수사 사라져
공소청은 본청을 비롯해 6개 광역공소청, 18개 지방공소청, 42개 지청 체제로 출범했다. 정원은 검사 2292명과 일반직 5890명 등 모두 8182명이다.
조직 개편에 따라 전국의 인지·합동수사부 42개는 폐지되고 중대범죄기소부 29개로 재편됐다.
기존 공판부 역시 공판·송무부 또는 공판·환수부 등으로 전환하고 검사 인력을 재배치했다. 가장 큰 변화는 검사의 직접수사 기능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기존 검사가 직접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 공소청 검사는 경찰이나 중수청 등 수사기관이 확보해 넘긴 증거를 검토하고 기소 여부를 판단한 뒤 법정에서 혐의를 입증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공소청 검사가 수사기관이 넘긴 증거만으로 기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더라도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없다.
사건 관계인이나 전문가, 사법경찰관 등의 의견을 듣거나 자료를 제출받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지만 추가 증거가 필요하면 해당 수사기관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이에 따라 향후 보완수사 요구가 기존보다 구체화되고 수사기관과 공소청 검사 사이의 사전 협의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영장 단계부터 기록 심사 강화...검사 '사법통제' 역할 부각
직접수사 기능이 사라지면서 수사기관이 신청한 영장과 수사 결과를 검토하는 공소청 검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공소청은 출범에 앞서 구속영장 청구 전 면담과 사실관계 확인 제도의 운영 기준을 마련했다. 수사기록뿐 아니라 피의자와 변호인 등의 설명도 함께 살펴본 뒤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지를 판단한다는 취지다.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를 검토해 기소 여부를 판단하고 보완수사 필요성을 가려내는 과정 역시 공소청의 핵심 기능이 된다.
결국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수청 출범으로 한국 형사사법 체계는 수사와 기소를 한 기관이 함께 담당하던 구조에서 두 기능을 제도적으로 분리하는 체제로 전환됐다.
새로운 체제가 출범한 가운데 초기 인력 부족과 전산시스템 구축, 기존 사건의 이관·재배당, 중수청과 경찰·공수처 사이의 수사 조정, 공소청의 보완수사 요구와 영장 심사 등이 향후 제도 안착을 좌우할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