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출산 논의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대체로 ‘희생’으로 치부한다. 경제적 부담, 경력의 제약, 부족한 수면, 사라진 자유 시간 등을 거론한다. 특히 남성에게 아버지가 됨은 책임이 늘어나는 사건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미국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심리학과 교수인 다비 색스비(Darby Saxbe)는 어제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아버지가 됨은 아이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라 남성의 뇌와 몸, 정신 건강을 성장시키는 경험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아버지가 아이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과 그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사회성과 자조절 능력이 높고 학교생활에도 더 잘 적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아버지의 육아 참여는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부부관계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색스비 교수의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아버지 역할이 남성의 삶도 변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이른바 ‘대드 브레인(Dad Brain)’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버지의 뇌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공감 능력과 사회
◇오래된 농정 숙제 2022년 4월 양파 가격이 폭락하자 농민들은 수확을 포기한 채 밭을 갈아엎었다. 4년이 지난 올해도 농민들은 양파밭을 갈아엎고 소비 촉진 행사를 벌이고 있다. 생때같은 농산물 밭을 갈아엎고, 가격이 내려가 소비 촉진 운동을 벌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농민은 고통을 겪고, 전가되는 유통비용에 소비자 또한 한숨짓는다. 이러한 모순은 오랫동안 우리 농정이 풀지 못한 숙제였다. 경기도는 전국 최대의 소비지이자 중요한 농축수산물 생산지다. 화성·평택·안성·이천·여주·김포·파주 등지에서는 농수산물이 생산되고, 1400만 도민의 식탁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먹거리가 소비된다.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장 가깝게 공존하는 곳이 경기도다. 그런데도 농민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비싸게 농산물을 구매한다. 경기도의 농정 개혁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새로 당선된 추미애 경기도지사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추미애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기득권과 관행에 맞서는 개혁의 상징이었다. 검찰개혁이 그릇된 권력구조를 바꾸는 데 필요한 과제라면, 이제 경기도에는 밥상과 유통구조를 바꾸는 생활밀착형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농정은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제품이 필요하다. 기존 제품만으로는 시장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고, 고객의 요구도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의 신제품 개발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성장을 위한 중요한 과제다. 새로운 제품은 매출의 돌파구가 될 수 있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제품 개발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고객이 지금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가이다. 기술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최근 신제품 개발 환경은 더 빠르고 복잡해졌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도구는 제품 기획, 설계, 고객 반응 분석, 마케팅 메시지 작성까지 모든 과정에서 영향을 주고 있지만, 개발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신제품 개발의 본질은 기술을 새롭게 더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요구하는 문제를 정확히 읽고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있다. ◇신제품 개발은 기술보다 고객의 불편에서 출발해야 많은 기업이 신제품 개발을 시작할 때 내부 기술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보유한 기술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최근 JTBC와 중앙일보를 둘러싼 경영 위기설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관계는 정확히 확인되어야 하겠지만,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에 언론사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업은 자본으로 운영된다. 제조업체는 공장을, 정보기술 기업은 기술을 자산으로 삼는다. 그러나 언론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건물도, 장비도, 자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독자와 시청자로부터 얻는 신뢰이다. 신뢰를 잃은 언론은 존재 이유 자체를 잃는다.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공재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논의를 촉진하며,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때문에 언론은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요구받는다. 완벽한 중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의견을 균형 있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전통 언론은 경영난의 원인을 유튜브, SNS, 인공지능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찾는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언론 산업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과거 신문과 방송이 독점하던 정보 전달 기능은 이미 다양한 플랫폼으로 분산되었다. 광
국내의 한 유력 경제지는 최근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이념을 넘은 집념(집에 대한 집착?), 아파트, 정치를 삼키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누가 봐도 이번 선거에서 부동산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집값이 오른 지역은 후보의 정치적 철학이나 지역 비전보다 ‘부동산이란 욕망을 통제하려는’ 여당에 대한 반발심이 표심으로 나타났다. 집값뿐 아니라, 재건축, 재개발, 교통망 확충, 신규 택지 조성 여부 등등 부동산은 유권자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단순한 선거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형성해 온 부동산 중심 구조의 결과다. 필자는 우연히 국회도서관 1층 도서 진열대에서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원제는 The Land Trap』이라는 책을 보고 표제를 봤다. 이 책은 부동산이 권력이 된 현상을 "토지의 덫"이라고 설명했다. 토지와 주택 가격 상승이 경제 성장의 수단이 되고, 시민의 자산 증식 경로가 되며, 정치권의 지지 기반이 되는 순간 부동산은 시장을 넘어 권력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집값 하락을 두려워하고, 유권자는 자산 가치 방어를 우선시하며, 정부는 성장과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부동산
초고령화와 각자도생의 시대, ‘돌봄’은 이제 우리 삶의 가장 절박한 화두가 되었다. 아픈 부모를 모시는 자녀의 어깨는 날로 무거워지고,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동동거리는 맞벌이 부부의 발걸음은 위태롭다. 정부와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복지 제도를 확대해 왔지만, 역설적이게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돌봄 제도가 현장의 목소리보다, 행정의 효율성을 따지는 전문가들의 책상 위에서 주로 설계되기 때문이다. ◇ 정치는 유한하지만, 삶은 영속적이다 이제 돌봄에 대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돌봄은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 할 사적인 부담이 아니며,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일방적인 서비스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안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돌보고 연결되는 ‘공동체적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은, 돌봄의 진짜 주인인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것이다. 특히 최근 치러진 지방선거 이후의 정세는 우리에게 ‘시민의 지속적인 역할’이 왜 중요한지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거 결과에 따라 지방정부의 수장이 바뀌거나 연임되고, 지역 정치
선거가 끝나면 어김없이 당선자들의 과거 발언과 행동이 다시 소환된다. 과거 인터뷰, SNS 게시물, 강연 영상, 유튜브 클립 등이 실시간으로 유통되면서 당선자들의 현재 모습과 과거 모습을 비교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과오를 정치적·도덕적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동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도 여러 유명 인사들과 교류했던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 파일은 정치·경제·학계의 권위자들까지 도덕적 검증의 대상에 올려놓았다. 진보 지식인의 우상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한편 러시아 여성과의 혼외정사 등 빌 게이츠(Bill Gates)의 사생활 문제는 오랫동안 쌓아온 그의 자선자적 이미지에 상처를 남겼다. 역사적 인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헨리 D, 소로(Henry David Thoreau)에 관한 이상화된 이미지와 실제 삶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기사가 그의 사후 153년 만인 2015년에 주간지 「뉴요커」에 실렸다. 그는 숲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의 집에 수시로 들러 어머니가 구운 쿠키를
세계프랜차이즈의 날을 맞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는 동남아시아 프랜차이즈 법제와 해외 진출 전략, 그리고 인도 시장 진출 경험을 공유하는 특별강연이 이어졌다. 한국 외식 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인도 진출 사례를 소개한 임재원 대표(고피자)는 "왜 지금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지난 30여 년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온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산업은 치킨, 커피, 분식, 한식 등 다양한 브랜드가 등장하며 자영업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외식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금 성장 한계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인구구조 변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소비의 주축인 청년층과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서 내수시장의 성장 기반 자체가 약화하고 있다. 시장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데 브랜드와 점포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둘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 포화 상태다. 우리나라는 인구 77명당 식당이 1개꼴이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만 수천 개에 이르고 동일 업종 간 경쟁도 극심하다.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해도 기존 브랜드의 고객을 빼앗는 제로섬 경쟁이 반복될 뿐 시장 전
이번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씁쓸한 기억을 남겼다. 정책과 비전의 경쟁보다 선거 관리의 허술함이 더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투표소에서 긴 줄이 생기고, 일부 유권자들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투표가 사실상 종료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출구조사 발표 시점을 조정하는 것이 상식에 가까운 판단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생겼다면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연기했어야 한다. 아직 투표하지 못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고 특정 후보의 우세가 뚜렷하게 나타났을 경우 "이미 승부가 끝났구나"라고 생각하며 투표 의지를 잃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실제 투표 포기 사례가 확인됐는지와는 별개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심 자체를 낳았다는 점에서 선관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각 투표소에서 용지가 부족하다는 보고가 잇달았음에도 투표가 중단될 때까지 선관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투표일 다음 날까지도 투표소 몇 곳에서 투표용지 부족과 투표 중단이 발생했는지, 투표용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조차 제대로
얼마 전 경기도 연천과 파주의 경계 지역을 지나는 평화누리길을 걷다가 개성으로 향하는 송전탑을 바라 보았다. 지금은 전기가 끊어져 북녘을 향해 길게 이어지는 철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K-팝과 K-드라마, K-푸드 못지않은 대한민국의 엄청난 콘텐츠가 DMZ 평화의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DMZ와 경계를 이루는 민간인통제선 안팎으로 이어지는 약 510km(경기도 191km 평화누리길 포함)인 DMZ 평화의 길은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잘 보존된 자연생태계를 간직한, 한마디로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길이다.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한국에서 왔을 때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물으면 의외로 많은 사람이 DMZ를 꼽는다. 외국인들 눈에는-특히 6.25 참전 국가의 국민에게-DMZ는 단순한 군사적 경계가 아니다. 냉전의 마지막 현장이자 분단의 상징이며 동시에 평화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아마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을 떠올릴 때 가장 궁금해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DMZ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6.3지방선거가 끝났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구청이 내 삶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 잘 모르겠다. 선거철이면 각종 공약과 구호가 넘쳐나지만, 막상 선거가 끝나고 나면 구청장이 누구인지, 구의원이 누구인지, 그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한 후보는 전직 구청장 시절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주민의 대다수가 자신의 구정에 만족하는 조사가 나왔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들으며 고개가 갸우뚱해졌었다.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만족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구청이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에 만족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특별히 불만이 없다는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구청에 대해 만족이나 불만족을 말할 만한 경험이 많지 않다. 도로가 정비되고 공원이 관리되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구청의 성과인지 서울시의 사업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복지정책, 주차, 재개발, 골목상권 지원 같은 일들이 지방정부의 영역이라는 사실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지방자치가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고 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려진 시야, 황금 우상의 출현 최근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는 공공 조각을 통한 국가주의 비판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4월 30일(현지 시각) 런던 세인트 제임스 워털루 장소에 신작 동상 ‘깃발에 눈이 먼 남자(A Man Blinded by His Flag)’를 기습 설치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거리에 세워진 이 동상은, 당당하게 걷는 양복 차림 남성의 얼굴이 자신이 든 깃발에 완전히 가려진 채 좌대 밖 낭떠러지로 발을 내딛는 파멸의 순간을 포착했다. 이는 우리가 속한 체제나 이념,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깃발로 눈을 가린 채 앞을 보지 못하는 현대 정치인과 대중을 향한 통렬한 은유다. 극단으로 치우친 믿음은 인간의 시야를 제한하고 낭떠러지로 몰아세운다. 특히 그 대상이 '국가'일 때 파멸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기묘하게도 이 동상이 세워진 같은 시간에, 미국 마이애미의 트럼프 소유 도랄 골프클럽에서는 가상자산업체 '패트리엇 토큰' 자본가들이 헌정한 4.5m 크기(약 7억 3천만 원)의 트럼프 황금 동상 ‘돈 콜로서스’가 우상처럼 공개되었다. 이는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의 오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