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결 격화와 일본 경제는 밀접한 함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지정학 전문가들은 그 함수 관계를 눈치채고 있지만 거시 경제학을 전공한 이코노미스트들은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숫자로 얘기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세계 무역량은 장기적으로 성장할지 모르지만, 단기적으로는 고정돼 있다. 우리나라가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량의 일부를 중동에서 미국으로 돌리면 중동 산유국들의 수입은 줄고 미국의 수입은 증가한다. 하지만 세계의 석유와 천연가스 무역량은 변하지 않는다.
수입 감소분을 가격 인상으로 보전하고 싶겠지만 현재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최대 수입국인 미국이 최대 수출국이 됐고, 낮은 가격으로라도 팔고자 하는 산유국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세계 무역 품목 중 거의 유일하게 무역량의 순증가가 예상되는 제품인 반도체를 예를 들어보자. 미국이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HBM 메모리와 AI 반도체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과의 손실분을 만회하고 이제 막 도약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큰 시각으로 보면 반도체와 같이 크게 성장하는 품목을 제외하고는 세계 무역 시장의 총량과 총액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중국이 대만 위협을 증가시키고,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충돌을 계속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두둔하고 핵 위협을 서슴치 않는 북한 편을 든다면 세계 무역 시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겨루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 그 길을 들어서고 난 뒤에 미국으로부터 계속 경고를 받았으나 무시했다.
중국이 국제질서의 변경을 추구하며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한 시기는 시진핑 집권과 일치한다. 홍콩 억압과 위구르 인권 문제, 알리바바 등 중국 민간기업 규제 강화, 미국과의 관세 전
쟁,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일본과 필리핀과의 영해권 충돌, 대만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강압 행위 증가, 노골적인 러시아 편들기 등 일련의 대결 국면이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은 사태 전개는 세계 무역 거래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무역의 3대 큰손인 미국과 유럽, 일본이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과 유럽, 일본 중심으로 동맹국 무역권이 형성되고 있다.
수혜국 중의 선두는 일본 제조업
세계 무역 시장에서 중국이 세계 공장을 노릇을 해오면서 가져간 몫만큼 다른 나라들이 수혜를 입게 된 것이다. 중국이 누려왔던 세계 제조업 공장을 대체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이다. 이들 나라의 수출이 증가하는 현상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도 이 흐름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제조업의 수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날 뿐 기존 중국 몫을 가져간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이들 수혜국 중의 선두는 일본 제조업이다. 일본은 제조업의 전 분야를 아우르고 있는 제조업 강국이어서 가장 큰 수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일본의 경제의 내부 문제점을 지적하며 아직도 일본 경제의 전망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견의 소치라고 본다.
물론 국가 자체의 경쟁력과 구조적 모순 등 내부 요인이 중요하나 외부의 호조건을 만나면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더욱이 일본의 기술력과 노동윤리 등 펀드멘털 면에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어떤 국가나 경제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없는 나라는 없다. 다만 경제 구조와 발전 단계에 따라 성격이 다를 뿐이다. 한국 경제는 출산 저하가 가장 큰 문제이고 일본 경제는 기업의 혁신과 자신감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고, 미국과 유럽은 약골로 변한 제조업 경쟁력이 약점으로 꼽혀왔다.
일본은 지난 ‘30년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해서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통과해 마침내 지난 3월 19일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함으로써 정상궤도에 진입했음을 선언했다.
경제 회복은 종국적으로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지난 30년간 바닥을 경험한 일본 경제와 일본인들에게 이제 최악의 상태에서 탈출해 좋아질 일만 남았다. 설사 기존의 문제점이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미-중 대결이 안겨준 해외 여건 호조로 인해 그 문제점들이 묻히고 강점이 두꺼운 껍질을 깨트리고 나올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