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의 가치가 어디까지 떨어질까?

2024.06.16 17:01:09

 

지난달 일본에선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금리를 올리는 큰 정책 변화가 있었는데도 엔-달러 환율이 1990년 이후 처음으로 ‘1달러=160엔’을 뚫어 심각한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을 보였다. 엔화 가치 하락은 잠시 소강상태일 뿐, 2030년쯤이면 1달러 200엔까지도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엔화는 올해 1월 달러당 140엔대 수준에서 2월 140~150엔대를 오가다가 3월 하순부터 150엔대 이상을 찍었다. 

 

일본은행은 지난 4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0.1%였던 기준금리를 올려 0∼0.1%로 유도하기로 하는 등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엔화 가치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준기축통화 대우를 받던 엔화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 일본 GDP의 15배가 풀린 엔화

 
원인은 엔화가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돈이든 뭐든 많으면 가치가 떨어진다. 지난 30년간 일본 엔화는 GDP의 15배, 달러는 2.5배가 풀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어느 화폐의 가치가 낮겠는가? 당연히 엔화다. 그동안 엔화는 전 세계로부터 제2의 경제 대국이란 후광을 받은 화폐라는 이유로 준(準)기축 통화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내에서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세계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자가 없는 엔화를 빌려 달러를 사고 달러를 은행에 맡겨 이자를 챙겼다-이런 행위를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일본 엔화가 옛날 같지 않다고 여겼다. 


외국의 한 은행은 일본의 엔화에 대해 아르헨티나의 페소 수준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엔화의 신뢰도가 자꾸 떨어지자, 일본 국민은 가지고 있던 엔화를 내다 팔고 미국 달러나 다른 나라 돈으로 바꿨다. 그러니 엔화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 일본의 디지털 적자, 해외에 지불하는 사용료만 5조 6천억 엔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 적자 탓이다. 이렇다 할 플랫폼이 없는 일본은 정부나 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기 위해 약 5조6천억 엔 정도의 어마어마한 사용료를 외국의 플랫폼에 내야 한다. 현재 일본이 벌어들이는 관광 매출은 1년에 5조 3천억 엔 정도로 여기에서 해외 노동자 임금 등을 제외한 순이익은 3조 5천억 엔 정도다. 디지털 적자를 관광 수입으로 메우기도 부족한 상태다.  


더군다나 과거에 엄청나게 좋았던 일본 제품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엔저로 인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의 물가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3년에 주식투자 활성화 차원에서 ‘소액 투자 비과세 제도(NISA)’를 도입했다. 20세 이상 일본 거주자를 대상인 이 상품은 1년에 최대 원금 100만 엔(약 911만 원) 한도로 5년 동안 양도 차익 및 배당금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부여했다. 


2013년 기준 일본 전체 가계 자산은 1,590조 엔(약 1경 3,800조 원)에 이르고 이 중 현금성 자산은 54.1%(860조 엔)에 달했다. 하지만 5년 비과세 혜택 기간 등 제약 요건이 많아 주식투자보다 은행에 저축하거나 장롱에다 현찰을 묻어두는 경우가 많은 일본인의 보수적인 투자 문화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 정부는 올해 들어 은행에서 잠자고 있는 가계 자산을 주식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이 제도를 대폭 확대 시행했다. 비과세 연간 투자 상한액을 360만 엔(약 3,280만 원)으로 올리고 누적 납입 한도 역시 600만 엔(약 5,460만 원)에서 1,800만 엔(약 1억 6,4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또 투자 이익에 대해 평생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6월 기준 2,115조 엔(약 1경 9,200조 원)에 달하는 가계 금융자산 중 절반가량인 1,117조 엔(약 1경 130조 원) 규모의 가계 현금성 자산을 겨냥한 셈이다. 관련 통장개설이 엄청나게 늘어나 많게는 9조엔 정도가 모였다. 그런데 그중 60% 가까이가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하니까 엔화 가치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 해외자산 순익 35조 엔이지만 3분의 1만 국내에 들어와 


일본은 해외자산이 엄청나게 많은데 2023년에 35조엔 정도의 순이익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해외 투자는 직접 투자가 많아서 이익이 나도 재투자해야 했으므로 순이익의 3분의 1 정도만 일본 국내로 들어온다. 순이익 전부가 달러로 들어와서 엔화로 바꿔야 엔 가치가 올라가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본 디지털 적자의 경우 2030년이 되면 일본이 해외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전체 금액과 거의 맞먹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최근 일본경제 상황을 비통하게 표현한 어느 일본인 네티즌의 글이 일본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 일본 네티즌 "일본 여성들 해외 매춘 너무 많이 나가" 

 

‘유나선생(ゆな先生)’이라는 필명의 일본 네티즌은 지난달 12일 ‘X’(옛 트위터)에 ‘2024년의 일본’이란 제목의 글에서 일본인을 “오렌지주스조차 못 살 정도가 되어 감귤 혼합 주스를 울면서 마시게 됐다”고 했다. 이어 “여성들은 해외 매춘을 너무 많이 나가 미국 입국 거부가 속출했고, 그러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훨씬 가난했던 한국에 매춘을 나간다”고 했다.


그는 자국 관광 산업에 대해서도 수출 부진과 연결해 부정적인 관점을 드러냈다. 과거의 무역 수출 강국은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고, 지금은 무역 적자가 수조 엔에 달해 수출할 것이 없다고 했다. 관광업으로 동남아시아, 인도,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나라 사람들에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숙여 외화를 벌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또 도시 지역에서는 일본인이 중국인 주인에게 매달 아파트 임대료를 내고, 비싸서 부동산을 살 수 없다고 한탄하는 일본인 곁에서 중국인들은 싸다며 현금으로 아파트를 사고 있다고 했다. 반면 사회인 중상층부는 차례로 미국으로 탈출하고 있으며, 한번 탈출한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지금의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버블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고, 이후에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서 기존 시스템에 안주한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또 1990년대 중반 이후 인구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해 일본경제의 역동성이 상실된 것도 일조했다.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를 보면서 우리 경제가 일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인구구조는 분명 우려되는 부분이고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하지만 인구구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엔화 가치 하락을 보면서 버블이 생기지 않도록 경제를 운영하고,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가는 노력을 하면 ‘일본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윤영무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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