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무의 에너지 경제 1편] 태양과 바람을 다스리는 미국 텍사스 상남자들

  • 등록 2024.08.06 13: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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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모니터 앞에서 세계 기후, 환경 뉴스를 지켜본 환경저널리스트 윤영무 기자가 기차와 자전거 등 친환경 대중교통수단만을 이용한 세계 일주 탐험을 준비하고 있다.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는 이른바, 노 플라이(No fly)를 통해 화석 연료 이후 미래 세계경제의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겠다는 그가 출발에 앞서 지금까지 수집해 놓은, 혹은 수집 중인 재생 에너지와 관련한 흥미진진한 경제이야기를 시리즈물로 연재하고자 한다.


 

◇ 태양과 바람의 전력을 만든 마초들의 선견지명

 

지난 3월, 미국 텍사스 주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전력량이 천연가스와 석유 등 화석 연료로 생산하는 전력량을 앞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렸을 적 꿈이 말을 탄 목장주인이었던 나는 텍사스하면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소를 키우는 상남자 스타일이나, 서부 텍사스 산 중질유,,,운운하며 머리에 시커먼 기름을 묻혀 가며 석유와 셰일 가스를 뽑아내는 이미지였으므로 그런 곳에서 재생 에너지가 뜨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생뚱맞았던 것이다.

 

누런 흙먼지를 내뿜으며 달리는 4륜 마차와 마초들처럼 보이는 카우보이들, 입에 시가를 비스듬히 물고, 청바지에 권총을 빼 들고 ‘마이 네임 이즈 노바디’라고 할 것 같은, 큼지막한 텍사스 스테이크를 먹고, 박찬호 선수가 뛰었던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팀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텍사스이잖은가. 

 

어떻게 그런 지역의 전력이 무공해 재생 에너지로 역전됐을까? 텍사스 하면 서부 텍사스 산 중질유-품질이 중간이란 뜻이 아니라 텍사스 중간지역이란 의미-라는 단어가 내 귀에 익다. 당연히 텍사스에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그런 화석연료라고 생각한 고정 관념이 깨졌다. 

 

더구나 보도에 의하면, 텍사스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 비율이 캘리포니아를 앞서 미국에서 1등이었고 전기료가 싸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기업들이 텍사스로 몰리고 있다 했다. 

 

텍사스는 땅을 파면 기름과 셰일 가스와 같은 천연가스가 펑펑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 미국의 500대 기업 가운데 50개가 넘은 석유, 가스 관련 대기업이 텍사스에 본진을 치고 있으며 정보 통신 과련 빅테크 기업도 상당수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도 텍사스의 작은 도시에 250억 달러(33조원)를 투입해 최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지었다. 크기는 축구장 800개 규모다. 허리케인의 트라우마가 있어 이사 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여하튼 텍사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주이다.

 

텍사스 사람들에게 거기 날씨가 어때요? 물어보면, 한 가지 대답이 나온다. “여긴 말이죠. 두 가지 날씨밖에 없어~요” “두 가지 날씨요? 여름과 겨울 말인가요?” “아뇨, 섬머(summer)와 핫 섬머(hot summer), 하하하” 여름과 더 뜨거운 여름이라니. 그런 대답을 들으면 대부분 “그러면 그렇지 태양광이 생길 수밖에 없네”라고 생각한다.

 

◇ 땅! 땅! 두 방이면 끝나는 재생 에너지 발전소 허가

 

그렇다. 텍사스에서 태양광이 화석연료를 앞질러 가는 것은 햇빛이 쨍쨍 내리꽂는 자연환경때문일 것이다. 그런 곳에서 ‘태양광 패널만 설치하면 곧 돈이 되겠네’라고 생각하지 못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햇빛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캘리포니아를 은근슬쩍 제치고 텍사스가 1위가 된 이유가 궁금했다.

 

2019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 주는 태양광, 풍력이 13기가와트로 2기가와트에 그친 텍사스의 6배였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캘리포니아는 21.1기가와트로 2배가 늘었을 뿐인데 텍사스는 23.6기가와트로 13배나 늘어 미국에서 재생 에너지 생산량 1위였다.

 

우리나라 남한의 7배, 프랑스보다 10%가 큰 면적을 가진 텍사스가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1위라면 세계에서도 톱 순위로 랭크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텍사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통 미국에서 발전소를 짓는 것은 금방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송전망 건설과 연결은 까다롭다. 심사도 받고 허가도 받아야 하며, 환경영향평가도 받아야 하는데 유럽이 보통 10년 정도 걸리고. 미국은 유럽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평균 34개월, 3~4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텍사스에서는 2년이면 된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규제를 받아들이고 줄을 서라면 설 것 같다. 하지만 성격이 화끈하고 성질이 급한 텍사스 사람들은 줄을 길게 서 있으라고 하면 당장 차에 뛰어가서 뭔가 들고 나와 해결할 것 같은 인상이다. 그래서 태양광, 풍력발전의 인허가 소요 시간이 짧은 건지 모르겠다. 웃자고 한 소리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자기 돈을 들여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업가는 당연히 인허가가 빠른 텍사스로 갈 것이다. 인허가 과정이 지루하고 불확실하다면 돈을 빌려 사업을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텍사스 주는 정전 사태가 나면 다른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올 수 없는, 완전히 독립된 송전망으로 되어 있다. 거미줄같이 송전망이 연결되었을 것 같지만 사실상 미국은 서부지역은 서부지역대로 동부지역은 동부지역대로 여러 지역 광역망으로 나뉘어 관리된다.

 

 

◇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시겠다고? 그럼 일단 들어오슈~ 하기 싫으면 말고

 

땅을 파면 석유가 나오는 텍사스는 “우리가 돈이 없어, 뭐가 없어, 뭐가 아쉬워서 남하고 괜히 섞인 담. 그러다가 끌려다니면 우리만 손해 아냐? 우리끼리 잘 살 수 있어,”라고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텍사스는 2021년 여름밖에 없다던 날씨가 갑자기 한파로 바뀌면서 천연가스관이 어는 바람에 전력이 끊겨 버리고 말았다. 기습적으로 한 방 얻어맞은 텍사스는 재난지역으로 까지 선포되기도 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사람들에게 어떤 자부심 같은 게 있다. 흔히 미국인들은 ”난 미국에서 왔어. 미국인이야”라고 하지만 텍사스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난 텍사스에서 왔어.”라고 말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텍사스와 달리 캘리포니아에서 전력망의 인허가 기간이 길어지는 이유가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만약 이 회사가 들어오면 우리의 문제가 뭐지?’부터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만약 시설을 개보수해야 할 것 같으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 슈~ 우리가 시설을 개보수할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당신네 회사가 돈을 더 내서 빨리 개보수 할 수 있게 하든지” 하라고.

 

서류를 검토해 보니 당신네 회사들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에게도 좋은데 그러려면 변전소를 지어야 하니, 당신네 회사가 변전소를 짓고 들어오든지, 아니면 변전소 지을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투자하려고 했던 회사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추가 비용에 이자 부담에 예상 수익이 달라진다. 더구나 인허가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판이다. 하지만 텍사스는 달랐다.

 

“사업을 하시겠다고? 그러면 일단 들어 오슈, 송전망에 들어가는 비용은 우리가 전체적으로 부담할 테니까 당신 회사에 일방적으로 부담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소이다.”

 

다만 남아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는 전기니까 갑자기 햇빛이 쨍쨍하거나 바람이 잘 불어 전기가 엄청나게 생산되면 전기를 차단하겠다고 한다. 회사 수익에 차질이 생길 수가 있음을 공지한다.

 

그러니까 텍사스의 상남자는 캘리포니아처럼 융통성 없이 천천히 검토하는 게 아니라, “하려면 하고 안 할 거면 말라”고 약간 우리나라 스타일(?)처럼 행동한다. 그런 텍사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발전소보다 송전선로부터 건설한 선제적 투자

 

텍사스는 2005년에 주 전체에서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기 좋은 곳이 어디인지 미리 정해 단지를 만들었다. 엄한 데 가서 재생 에너지 사업을 하지 말고 우리가 정해 놓은 곳에 가서 사업을 하라고. 그러한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기 좋은 곳은 텍사스 서쪽이었다. 그런데 텍사스 주민들은 주로 남쪽과 동쪽에 살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발전소부터 세우고 송전망을 다음에 생각하지만, 텍사스는 반대였다. 서쪽 생산단지에서 남쪽 동쪽으로 전력을 보낼 송전망부터 설치한 것이다. 발전소는 송전망 사업이 끝났을 때 와서 투자를 하게 했다.

 

휴스턴까지 보내는 송전선로는 2006년부터 시작해 7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2014년까지 매년 7~8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조 원씩 투자했다. 재원은 전력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N분의 1로 나눠 냈다. 왜 내야 하냐? 고 물으면 미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강제했다.

 

18기가 와트 용량을 보내는 총 6천 km의 송전선로를 건설했다. 이는 최근 미국에서 건설된 전체 송전선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당시 텍사스의 태양광, 풍력발전은 메가와트의 소형 발전량에 머물렀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이나 송전선 건설은 명함도 못 내밀 때였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풍부한 화석 연료가 펑펑 나오는 지역인데도 미리부터 재생에너지 투자유망 지역을 조사해 놓고, 발전소 건설에 앞서 송전선로까지 미리 깔아 두었으니 사실 사업자들은 따로 할 일이 없었다.

 

발전 현장에 가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협상을 하고 사업 신청을 하면 바로 허가가 나왔다. 사업 투자자들이 허가를 받으면 곧바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으니 텍사스에 투자자들이 몰려 목표보다 70%를 초과 달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도 몰랐다.

 

텍사스는 송전소망 건설에 70억 달러를 투자해 1년에 재생에너지 수입으로 5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런 수익은 2~3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30년~50년 계속되기 때문에 텍사스의 재생에너지 전기료는 쌀 수밖에 없고, 기업들이나 주민들이 텍사스로 옮기는 것이었다.

 

선행 투자를 하고 뚜벅뚜벅 소처럼 걸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텍사스 상남자들이 보여준 셈이다. 이런 계획을 실천으로 옮긴 자가 누군지 궁금하다.

 

◇ 텍사스 카우보이들이 계산한 재생 에너지 수익성

 

목을 햇빛으로부터 가리려고 붉은 스카프를 했다고 해서 레드 넥(red neck)이라 불리는 텍사스 카우보이들이 왠지 풍력발전 터빈의 거대한 날개가 허공에서 바람을 가르며 씩~ 씩~ 내는 소리를 고깝게 생각할 것 같다.

 

그 소리가 소에게 스트레스를 줘서 젖이 잘 안 나올 수도 있고, 살도 안 찔 것 같아서 반대할 것 같은데 실은 아니었다.

 

소들도 땡볕을 싫어하기 때문에 풍력 터빈 날개의 그늘이 생기면 그곳으로 간다. 그래서 탈진이 줄었다. 또한, 풍력발전 설비를 하려면 큰 차가 들어와야 하니까 길이 잘 만들어졌다.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길을 닦은 것이고 좋은 도로가 생겨 소몰이하는 수고로움을 차로 대신할 수 있었던 것도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에 협조하게 했다. 돈 앞에서 장사가 없는 것은 미국이나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특히 가격 변동 폭이 큰 석유나 가스와 달리 재생 에너지는 가격 예측이 가능해 텍사스 정부입장에서 보면, 재생에너지 발전 회사로부터 안정적인 세금을 거둬 5년~7년 장기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재생에너지는 재료비가 들어가지 않아서 최근 전력 생산비가 화석 연료보다 싸졌다. 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하지만 자연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실제로 올 1월에 바람이 없어 풍력이 쉬는 일도 생겼다. 텍사스는 이런 고민을 석유, 셰일가스, 태양광, 풍력을 잘 맞추고, 관련 기술을 개발해 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땅 밑에 깔고 앉아 있는 게 많기는 하지만 우리가 텍사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재생 에너지가 돈이 된다고 본 선제적 투자다. 발전소보다 송전선 인프라를 먼저 깔고, 재생 에너지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를 하도록 하고 가격 경쟁을 시켰다. 이를 통해 재생 에너지 전기료를 낮춰 미국 50개주 가운데 제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 통찰력은 기억해 둘 만하지 않을까.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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