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이 아닌 하석(夏夕)

  • 등록 2024.09.24 12: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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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간의 추석 연휴가 끝났다. 정부와 의료계의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응급실 의료공백’ ‘응급실 뺑뺑이’ 등이 사회적 현안이 되었다. 시민들은 크게 불안해했고, 다소의 사건·사고들이 언론에 회자되었지만, 다행이 큰 사고는 없이 연휴는 넘겼다. 시민들이 긴장하면서 대비하고 있지만, 의료분쟁이 장기화되고 추위가 다가오면 더 큰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 가을 저녁이 아닌 여름저녁

 

이번 추석에 시민들이 피부로 가장 체감했던 것은 연휴 내내 계속됐던 폭염과 열대야였다. 예년보다 조금 빠른 추석이기는 했지만, 9월이 되면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모습을 가을바람 속에서 느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한가위는 가을 저녁이 아닌 여름 저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폭염경보와 열대야가 연휴 내내 이어졌고, 기상 관측 이후로 가장 높은 9월 기온과 가장 늦은 열대야 등의 기록을 갱신했다. 추석 폭염으로 시민들은 성묘 등의 야외 활동을 중지하고, 야외수영장까지 찾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어르신들은 평생 가장 더운 추석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을까지 이어지는 폭염을 보면서 기후변화에 둔감한 대한민국 국민들도 이제는 기후변화가 본격화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기후변화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또 다른 절망감을 느낀다. 자가용을 사용하지 않고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탄다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텀블러를 이용한다고 기후변화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자신은 그저 바닷물에 물한방울 더 보태는 것 정도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는 어렵고 풀기 힘든 문제다. 기후변화는 지난 250년 이상 산업화를 주도한 유럽과 미국이 절반 이상의 탄소배출 책임이 있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데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절반 이상의 오염을 배출한 만큼 이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국제사회는 정의보다 힘이 지배하는 곳이다.

 

탄소배출에서 1/4의 책임이 있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기후변화 파리협정을 탈퇴하기도 했다. 이번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에게 세계가 긴장하는 것도 지난 7년 전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기후변화가 전세계적인 의제로 등장한 계기가 된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였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와 국가정상들, 민간단체 대표들이 모여 12일간의 회의를 벌였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입장 차이로 국제협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리우선언’으로 그치고 말았다.

 

당시에 미소의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로 귀결되고 있었고,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였다. 미국의 반대로 강제성 있는 국제협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선언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리우선언에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환경문제를 지구적 차원의 의제로 만들었다는 점과 지구적 차원의 행동계획을 마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환경운동에서 핵심 슬로건인 된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 는 것도 리우선언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왔고, 아젠다21(의제21)로 내용으로 구체화되었다. 의제21의 결과물로 우리 사회에서도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설치되고 관련법이 제정되었으며, 지역차원에서도 지방의제21의 곳곳에서 만들어졌다.

 

기후문제는 전지구적인 핵심과제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국가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 전세계가 기후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전세계가 동의하면서도 탄소배출의 절반 이상의 책임이 있는 미국과 유럽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공회전할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은 전제하고 출발하지만, 5500만 이상이 서로를 죽인 2차대전의 광기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국가간 힘의 논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지구촌에서,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자는 리우선언의 슬로건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한 국가나 지구촌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깝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바꾸는 일은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는 226개의 기초지자체가 있고, 3533개의 읍면동이 있다.

 

3%의 소금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만드는 것처럼, 깨어있는 3%의 지역주민들이 있다면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인구 30만명의 도시라면 9천명이, 3천명의 읍면동이라면 90명이다. 풀뿌리부터 지방정부와 지역사회를 바꾸고, 다시 지역이 모여서 중앙정부와 국가를 바꾸어 나간다면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삶터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 고향과 부모를 찾는다. 태어난 원래 자리를 찾아가려는 일종의 귀소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삶터에서 튼튼하게 뿌리박고 살지 않으면 우리는 옛부터 ‘부평초 같은 인생’ 혹은 ‘뿌리 뽑인 존재’ 이라고 폄훼해왔다.

 

개개인들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삶터를 잘 가꾸지 않으면 건강하고 활력있는 삶을 살기는 어렵다. 대한민국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국가와 자본의 힘으로 끊임없이 시민들의 삶터를 파괴해왔고, 많은 시민들은 삶의 뿌리가 뽑혔다.

 

여름저녁 같은 추석을 보내고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삶터의 재구축이다. 지난 여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는 ‘ESG지역리더 양성과정’을 진행했고, 자신의 지역에서 심화과정을 만들어갈 분들을 찾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터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지역리더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온라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지만, 지역의 실천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지역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협력의 관계망을 구성하려 하니 뜻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추석의 폭염과 열대야를 보내면서 32년전 지구촌 시민들의 구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외쳐야 한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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