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역대급 수익을 거두는 도매시장법인들

  • 등록 2024.09.24 11: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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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값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 ‘금사과’가 비단 기후위기 때문일까? 저성장, 고금리, 고물가로 국민은 신음하고 있다. 반면 매해 농산물 가격이 급등락할 때마다 농수산물 공영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들은 배를 불린다. 전근대적인 유통구조 덕택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아우성치더라도 거대 기업은 살을 찌운다. 언제까지 이를 두고볼 셈인가. 국민은 농산물 경매제도 개선 및 거래제도의 다양화를 요구하고 있다.


 

◇신음하는 국민

 

하루가 멀다고 폐업하는 중소상인들의 곡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저성장, 고금리와 고물가를 못 버티고 쓰러지는 상황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의 ‘최근 10년간 개인사업자 현황’ 자료가 그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2023년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은 79.4%로, 115만여 개인사업자가 창업을 하는 동안 91만여 사업체가 문을 닫았다. 즉, 10곳 중 8곳이 폐업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전문소매점 등의 판매액을 조사, 소비 심리와 내수 경제 상황을 실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소매판매액지수도 좋지 않다. 2022년 2분기(-0.2%)부터 9분기 연속 줄어들어 2024년 2분기(4~6월) 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9%나 감소했다.

 

물가 상승은 민간 소비 회복을 지연시킨다. 세계 주요 도시의 물가 정보를 제공하는 ‘넘베오(Numbeo)’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사과와 바나나 가격이 전 세계 약 331개 도시 중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감자, 오렌지, 토마토 등 다른 주요 농산물 가격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지난 9월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의하면, 8월 기준 소비자물가 및 생활물가는 2020년 말 대비 각각 14.2%, 16.9% 상승했다. 생활물가의 누적 상승률(2021년 이후)이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더 높게 나타나 고령층과 저소득가구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 가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농가의 채산성과 이윤을 나타내는 농가교역조건지수는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89.6, 90.2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100 이하라는 것은 농가의 경영 상태가 기준 연도에 비해 악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정부의 농산물 가격안정 대책이 농가의 실질적인 소득 개선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배 불리는 도매시장법인들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 무풍지대인 곳이 있다. 농산물 가격 급등락으로 인한 생산자의 고통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가격 급등 때문에 고통받는 소비자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유유히 돈을 거머쥐는 업체들이 있다. 우리나라 농산물의 50% 이상을 취급하는 공영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경매회사)들이다. 이들 경매회사는 시설투자는 1도 하지 않고, 경매를 주관한다는 이유만으로 해마다 역대급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공영도매시장 거래 물량이 줄어들어도 경매 낙찰가가 높으면 경매 수수료가 늘어나는 구조 때문에 해마다 수백억 원의 소득을 챙기며 굳건하게 자기 밥그릇 지키고 있다.

 

국세청의 ‘농산물 도매업 업종 법인의 법인세 신고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상위 20개 농산물 도매업체의 사업소득이 2배 이상 증가했다. 2022~2023년 농산물 가격이 요동치고 가격 불안이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업체의 사업소득은 2022년 1,690억 원에서 2023년 2,621억 원으로, 55%나 증가했다. 이는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중간 유통업체에 수익이 집중되고, 실제 생산자인 농가와 소비자에게는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업이익 기준 상위 10위 도매법인은 순서대로 서울청과㈜, ㈜중앙청과, 동화청과㈜, 한국청과㈜, 안동청과(합자), 대아청과㈜, 구리청과㈜, 서부청과㈜, 대양청과㈜, 대구중앙청과㈜로 나타났고, 가락시장 5개 도매법인들은 1위부터 6위까지 최상위를 차지했다.

 

전국 사과 유통량의 50%를 담당하는 안동시농수산물도매시장에 소재한 안동청과는 2019년 21위였으나, 작년 추석 사과경매가격 폭등으로 5위로 올라왔다.

 

안동청과와 가락시장 경매회사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안동시농수산물도매시장 중도매인은 안동청과에서 경매로 낙찰받은 사과를 가락시장으로 올려보낸다. 그런데 가락시장에는 이들 중도매인이 출하자로 등록되어 있다. 농민 외에 중도매인, 산지유통인 등 공영도매시장으로 농산물을 보내는 모든 사람을 총칭해 출하자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출하자는 농민일 것이라는 상식과는 차이가 있다.

 

◇사과값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유

 

가락시장으로 들어온 사과는 반드시 경매를 거쳐야 한다. 사과를 경매품목으로 지정하고 법적으로 경매를 강제해 놓았기 때문이다. 안동도매시장에서 경매를 거친 사과는 가락시장에서 또다시 경매를 거쳐 새로 가격이 결정된 후 전통시장, 중소마트에 진열되어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담긴다.

 

유통단계가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다. 이런 유통단계를 거쳐야 하니 가격은 뛰고 신선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과값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유다. 물론 기후 상황에 따라 작황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만 기후위기를 겪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를 먹어야 하나. 한국은 공영도매시장에서의 경매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비상식적이고 기이한 한국의 유통구조가 가격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의 심한 가격 변동을 방지하고 유통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공영도매시장에 정가・수의 매매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정가 매매는 출하자가 미리 판매예정가격을 정한 상장물품에 대하여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에게 해당 가격과 판매 물량을 제시하여 거래하는 방법이다.

 

수의 매매는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과 1대1로 협의하여 가격과 수량, 기타 거래조건을 정하는 거래하는 방법이다. 결국 도매시장법인이 중개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도매시장법인은 수수료를 챙긴다. 이러한 정가・수의 매매는 불필요한 수수료를 발생시켜 이것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고 유통비용을 낮추려면 출하자와 중도매인이 직접 거래하는 새로운 정가・수의 매매로 탈바꿈해야 한다.

 

◇느닷없는 정부

 

공영도매시장 가격 급등락 및 여기서 파급된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9년과 2020년에도 농산물 유통 문제가 전국적으로 이슈화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21년 상반기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산물 도매시장 제도개선을 위해 국민의 의견을 물은 바 있다.

 

농업인은 농산물 가격의 변동성 완화, 경매의 거래 공정성 및 투명성 확보 등 경매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40%, 거래제도의 다양화를 요구한 의견이 30%였다. 도매시장 거래제도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58%였고, 학계・연구 분야 등 전문가의 경우 도매시장 경매제,정가・수의 매매, 시장도매인 등 거래제도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84%에 달했다.

 

국민은 경매제도 개선 및 거래제도 다양화를 요구했음에도 농림축산식품부는 느닷없이 엉뚱한 일을 벌였다.

 

오프라인 공영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은 외면한 채 예산을 쏟아부어 온라인 도매시장을 개설하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농수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에서 수입 농수산물도 거래하고 있다. 외국산 차별이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는 핑계와 함께 가락시장 등 오프라인 공영도매시장에서도 외국산을 취급하고 있다는 이유로 빗장을 풀고 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 약 5조 4,353억 원,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1조 6,732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의 장바구니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농가의 채산성은 악화하고 있다. 정부가 꼭 해야 할 게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정부는 농업・농촌을 유지하고 농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수입 농산물 유통 채널을 활짝 열어젖히고 농민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 농산물 가격을 잡겠다고 특정 품목을 수입해 물량을 풀면, 농민은 제값을 받지 못해 농사를 접을 수밖에 없다. 농민 수와 경작 면적이 줄면 해당 품목은 가격이 뛴다. 뻔히 예상되는 악순환이다. 이런 가운데 도매법인들은 수수료로 배를 채운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거치며 발생하는 비용은 온전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기가 막힌 실정이다. 인공지능(AI) 기술 수준이 전 세계 상위 10개국 중 분야별로 평균 5위를 차지할 만큼 AI 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 전근대적인 유통구조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과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어낼 수 있을까.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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