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 대선 전후로 7차 핵실험을 할까요?

  • 등록 2024.09.28 18: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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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사이에 북한의 제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또다시 제기되면서 언론의 주목 대상으로 떠올랐다.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3일 “북한이 기술적 문제 해결을 위해 몇 차례 핵실험이 필요하다”며 “미국 대선 기간에 핵 위협을 부각해 관심을 끌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26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이 미국 대선 이전에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있지만, 대선 이전보다는 이후 가능성을 높게 본다고 밝혔다.

 

국정원 보고나 국가안보실장의 7차 핵실험 전망에 대해 국내외 언론이 민감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은 지난 2022년 2월 이후 꾸준하게 제기된 문제라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년 반 동안 지속적으로 핵실험 예상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틀린 전망이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핵실험 전망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 당국의 7차 핵실험 전망은 과거 북한이 미국 대선 기간에 대형 도발을 자주 저질렀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인식이 착시의 결과라는 점이다. 북한의 과거 핵실험 사례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제1차 핵실험은 2006년 10월 9일 벌어졌다. 이 해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없었다. 대신 중간선거가 11월 초에 있었다.

 

그렇다면 1차 핵실험은 미국 중간선거를 겨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북한의 도발은 그해 7월 16일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 1695호를 채택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안보리가 결의를 채택한 이유는 그해 7월 5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탄도 미사일 7기를 잇따라 동해 방향으로 발사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연쇄 발사한 것은 2005년 9월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북한과의 불법금융거래 혐의를 제기하면서 관찰대상은행 목록에 올리면서 그 은행에 예치된 북한 정부 자금 약 2,500만 달러가 묶여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1차 핵실험은 BDA 금융제재를 둘러싼 공방전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제2차 핵실험은 2009년 5월 25일에 벌어졌다. 북한 도발은 그해 4월 13일 유엔 안보리가 의장 명의로 대북 규탄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안보리 의장 성명은 4월 5일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감행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시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1월 20일 출범한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미국 대선과는 무관하다.

 

새로운 미국 정부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해석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보면 북한은 2008년 2월 출범한 한국의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에 맞서서 나름대로의 초강경 대응을 전개하던 중이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이전에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표명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반대 입장을 보였고, 결국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므로 4월 위성 발사와 5월 핵실험은 미국 행정부에 대한 압박보다는 남한과의 기세 싸움 의미가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4월 위성 발사 이후 북한에 대해 강경 정책으로 전환해서 북한은 이득을 거둔 것이 전혀 없다.

 

제3차 핵실험은 2013년 2월 12일이다. 이때도 미국 대선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다만 3개월 전인 2012년 12월 12일 북한의 위성 발사가 있었고, 이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상황이 있었다. 12월 12일은 그해 11월 초 미국 대선과 가까운 시점이지만 대통령 선거 시점에서 한 달이 더 지난 뒤였다.

 

북한이 12월에 위성 발사를 강행한 것은 그해 4월 동일한 모델 위성 발사가 실패한 것과 관련해 2012년이 지나기 전에 발사를 추진했고,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날짜를 의식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제4차 핵실험은 2016년 1월 6일이다. 미국 대선은 이해 11월이기 때문에 미국 대선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김정은 국무위원장 생일인 1월 8일을 이틀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당시 맥락을 보면 북한 핵실험은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불만 표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왜냐하면 북한은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베이징을 방문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남북 통일 문제와 관련해 한국 입장을 지지하는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북한이 격렬한 배신감을 느끼면서 중국에 불만을 표출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해 12월 15일 북한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에서 진행하기로 한 공연을 당일 전격 취소하고 귀국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북중 갈등이 이례적으로 노출됐다. 결국 1월 6일 핵실험을 미국의 대선과 연계해서 해석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제5차 핵실험은 2016년 9월 9일이다. 이 해 11월에 미국 대선이 있었고,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시기적으로 미국 대선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대선보다는 앞서 지적한 4차 핵실험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북한의 강경 도발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 당시 맥락에 훨씬 더 부합한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사드 요격 미사일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맞섰다. 북한은 2월 인공위성 발사로 대응했고, 남한은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이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추가, 북한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미사일 엔진 개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공방전이 9월까지 이어졌다. 그러므로 북한의 9월 핵실험은 미국 대선보다는 남북 간 기세 싸움, 중국에 대한 불쾌감 표출로 볼 수 있다.

 

제6차 핵실험은 2017년 9월 3일이다. 1년 전 핵실험과 비슷하게 북한의 정부 수립 기념일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거의 매주 핵무기나 장거리 탄도 미사일 관련 기술 개발을 과시하면서 협박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이 해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초강경 압박을 가하면서 미국과도 기세싸움을 벌였다. 그러므로 제6차 핵실험도 2016년 1월 중국에 대한 불쾌감 표출, 남북 기세 싸움에 이어 미국과도 기세 싸움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6차례에 걸친 북한 핵실험 사례를 보면 미국 대선과는 무관하거나 직접적 연관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신, 한국이나 미국과의 기싸움, 또는 중국에 대한 격렬한 불만 표출, 그리고 북한의 국내 정치 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2017년 9월 이후 핵실험을 하지 않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2019년 2월 또는 2022년 5월까지는 한국이나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과 중국의 소통이 원만하게 이뤄진 상황을 반영했을 수도 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과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중국과의 관계도 최근 북러 관계 급진전 영향으로 갈등 요소가 커지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는 조건에 가장 근접한 상황이다. 정부가 중국 요인을 근거로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한다면 필자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대선을 전후해서 존재감 과시를 위해 7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설명에는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이 비슷해도 원인 규명과 배경 파악에서 오류가 있다면 대응 전략 마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대외 정책에서 진영 논리에 따라 보고싶은대로 진단하는 방식보다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진단을 내리는 역량을 최상급으로 확보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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