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급인 화성포-19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 군사적 불안 요소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핵탄두 탑재 탄도 미사일 보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시험 발사를 거듭할수록 가공할 무기로서 위력이 커지고 있어서 비상한 주목 대상이다.
다만 북한의 ICBM 발사는 1998년 8월 이후 10차례가 넘기 때문에 새로운 위협이나 임박한 위협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서 북한의 탄도 미사일 역량과 북한 대외 정책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냉철하게 향후 대응 방안을 재검토하는 것이 생산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분석은 성능이다.
북한 발표에 따르면, 이번 미사일은 고각 발사, 즉 거의 수직으로 발사했고, 오전 7시 31분, 평양 주변에서 발사됐다. 정점 고도는 7,687km였고, 비행 시간은 86분이었다. 수평 이동 거리는 1,000km였다. 고도와 비행 시간은 지난해 7월 화성-18형 발사 당시 6,648km와 비행시간 74분에 비해 늘었고, 지상 이동 거리는 동일했다.
정점고도가 지난해에 비해 1,041km 더 올라갔기 때문에 로켓 추력이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행 시간을 보면 속도는 지난해 마하8.8에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획기적인 기술 향상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참고로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ICBM 속도는 마하 23 전후고, ICBM 요격 미사일은 마하 25로 세 배 정도 격차가 존재한다. 그 외에 나머지 기술적 요소는 지난해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ICBM 시험 발사로 15,000km 이상 사거리를 보여줬고, 이동식 발사대 운영 능력, 고체연료 추진체 기술 등에서 상당한 기술 향상을 증명했다. 그러나 대기권 재진입, 목표지점 상공 폭발 제어, 다탄두 탑재, 정상 각도 비행, 속도 등은 실전배치에 필요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시험 발사에서도 북한이 보여준 성능 개량 요소가 무엇인지 불투명하다.
북한 매체 보도 특징도 점검 대상이다. 북한은 오전 7시 31분에 발사를 감행하고 다섯 시간 만에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김정은 위원장 발언 내용을 강조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발사와 관련한 기술적 정보를 보도했다. 과거 ICBM급 발사 사례에서 하루 뒤에 발사 자체에 주목해서 보도한 것과 다르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발사를 대내외적으로 메시지를 밝히는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 발언에서 핵심 주제는 핵무력 강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들어 의도적으로 지역정세를 격화시키고 공화국의 안전을 위협해온 적수들에게 우리의 대응의지를 알리는 데 철저히 부합되는 적절한 군사활동”이라면서 “우리 국가의 전략공격무력을 부단히 고도화해나가는 노정에서 필수적 공정”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핵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확언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력 강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 이번 시험 발사의 의도라면 김 위원장이 왜, 지금 시점에서 감행했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최근 들어 적수들이 의도적으로 지역정세를 격화시킨다고 주장했는데, 아마도 평양 상공 무인기 사건이나 한미 연합군사훈련, 또는 한미일 3국의 협력 증진, 아니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미국 등 나토 회원국,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대북 비난 공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 일본, 나토, 우크라이나 등이 김 위원장 메시지의 청중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문맥을 보면 중국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중국은 최근 수년간 김정은 위원장이 추진하는 이른바 ‘신냉전 외교’ 즉 북한과 러시아, 중국 등이 과거 냉전 시기처럼 미국에 반대하는 국제 연대를 구축하는 구상을 놓고 마찰 양상을 보여왔다. 북한은 반미 연대에 중국이 참여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지만 중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냉전 종식 이후 지구촌 대부분 시장이 사실상 통합된 상황에서 신냉전 구상은 이익보다는 손실이 크다는 판단을 중시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 파병 문제로 동북아 정세에서 불안정성이 커지자 중국이 북한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 메시지는 중국의 불만 제기에 대해 문제를 일으킨 도발 세력은 한국이나 미국이고, 자신의 정책은 정당하다는 항변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서 중국에 대해 불쾌감을 표출하는 의미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발사가 미국 대선과 연관지어 분석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미국 대선에서 외교 문제가 중대 변수가 된 적이 거의 없고, 외교 문제 중에서도 북한 문제가 미국 대선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북한의 도발이 미국의 대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최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수장을 폭사시키고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음에도 미국 내 파급효과는 미미했다. 이는 북한의 이번 ICBM 발사가 미국 대선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이 미국 여론 주도층의 관심을 유발하려면 오히려 김여정 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인물 품평을 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북한 ICBM이 마하 20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면 미국 정치권은 국방예산 증액과 관련한 명분 차원의 논란 외에 북한 미사일에 진지하게 반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북한 내부를 향한 김정은 위원장 메시지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초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체제로 규정하고 통일과 동족 관련 개념과 용어를 공식 문헌에서 지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 위원장의 작업은 선대 수령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대 유훈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북한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 변화다.
만약 정책 돌변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독자적 카리스마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북한에서 정치 격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파병 문제는 국내 정치 차원에서 사회 안정을 교란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주민 불안 요소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면서 독자 카리스마 구축 차원에서 강경한 이미지를 강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리하면 이번 ICBM 발사는 군사적 위협 차원에서 새로운 위협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이번 발사에서 보면 북한의 탄도 미사일 기술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력 강화 정책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 가능성은 한 단계 더 감소한 것으로 우려된다.
무엇보다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마찰과 갈등 양상이 심화할 경우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극적으로 악화시키는 모험주의적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은 중국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북한의 향후 행보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추가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고차원의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고차원 외교를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카리스마 구축 작업과 북한 내부 안정성, 북러 군사 협력 양상, 그리고 북중 관계 회복 여부에 대한 정확한 정보 수집과 정세 진단이 필요하고, 향후 대응 방향으로는 한중 관계 회복과 한러 관계 관리, 남북 소통 채널 복원 등이 긴급 과제로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