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수소특화단지로 동해·삼척과 포항을 지정했다. 정부는 이 도시들을 국내 수소산업의 성장거점으로 육성하고 생산·유통·활용 등 수소 산업 전반의 생태계 구축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2050년 수조 달러로 전망되는 미래 유망산업으로 글로벌 수소경제를 선도하도록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수소는 지난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에서 주요 탄소감축 수단으로 인정된 무탄소 에너지원이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 수소에 대한 투자는 매우 큰 폭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수소로 무탄소 시대를 열겠다는 당찬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수소 산업은 거의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요성과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현재 생산 능력으로는 절대 수소 시대로의 전환을 이룰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린다.
4일 국회에서는 '지속 가능한 수소경제 전략 마련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으나 이 자리에서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수소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는 엄중한 사실 앞에 모든 논리가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수소 경제는 그 자체만으로 힘을 얻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분야에서 수소에 의존하려 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도 이곳 저곳에 투입되고 있지만 진정한 성과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목표는 높은데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수소 산업의 문제는 무엇이고 해결책은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 수소라는 헛된 꿈, 지금은 성과를 냉철하게 돌아볼 때
토론자로 나선 이충복 이투뉴스 기자는 한국 산업이 수소 경제로 가기 위해선 정책 수립부터 잘못됐다는 냉철한 해석을 내 놓았다. 이 기자는 "수소는 정권을 불문하고 파격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수소발전의무화제도(HPS)를 도입했으며, 그 계획에 따라 현재 연간 약 3조원 안팎의 전기요금이 투입될 수소발전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참여기업들조차 밑빠진 독에 물붓기 사업임을 잘 알고 있다. 관심은 누가 막대한 보조금을 차지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HPS 프로젝트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한때 공격적으로 액화수소사업 등을 펼쳤던 S사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기존 수소사업을 대부분을 정리했다. D사는 국내서도 시장이 사라져가는 연료전지 사업을 기신기신 유지하고 있다. 당분간 기존 지원정책을 유지한다고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 기자는 "2050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과연 수소는 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에너지신기술을 개발한다고 쓰는 R&D자금은 연간 1조원 이상이다. 그런데 산업부문의 연간 에너지효율개선 융자예산은 3500억원 남짓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기업의 수요가 적다"며 "2차에너지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기업들이 공정개선이나 효율투자에 관심이 없다. 산업은 국내 에너지소비량의 56%를 차지하고 온실가스 배출 비중도 높다. 수소보급이나 산업화가 먼저인지, 에너지효율개선이나 가격정상화가 먼저인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소경제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효율화, 가격정상화, 에너지시장 개방과 선진화가 우선 순위여야 한다"며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재생에너지가 주력전원화되는 에너지체제나 수소사회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그린수소의 미래 잠재력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논의 순서가 잘못됐다. 그린수소의 제1원칙은 잉여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P2X"라고 강조했다.
에너지대기업들은 수소를 기존 화석에너지의 수명연장 도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천연가스를 개질하는 방식의 연료전지나 비효율적 수소차 보급 대신 제철, 화학, 소재 분야의 제한적 수소 활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전 세계 꼴찌 수준으로, 작년말 기준 전력생산량의 8% 남짓이다. 그린수소 생산기술은 여전히 극악의 비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전기분해 때, 압축과 수송 및 저장 과정의 손실도 만만치 않고 안전 문제 역시 안심할 수준으로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 국내 연구시설에서 발생한 수소저장탱크 폭발 사망사고, 발전소 수소공정에서의 배관폭발 사고 등이 잇따르고 있다.
이 기자는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달성도 요원하다.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 사회를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수소사회, 수소 경제를 준비해야겠지만 뭐든 적당히 정도껏 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엄청난 선제 투자를 했고, 지금은 투자 확대가 아니라 냉정한 성과분석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 정부의 수소 산업 투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수준
신에너지 가운데 수소연료전지는 십수년전부터 막대한 보조금과 정부 R&D자금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2000년대 참여정부의 수소차 보급목표는 수백만대 수준이었고, 올해 8월 기준 보급 대수는 3만7000대에 불과하다. 현행 2030년 보급목표는 30만대다. 그럼에도 수소차는 전기차에 밀려 맥을 못추고 있고, 올해 기준 kg당 4000원대를 목표로 했던 수소가격은 지역에 따라 1만원을 상회하고 있다.
◇에너지전환에서 수소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고찰
권필석 녹색에너지 전략 연구소 소장은 이 기자 보다는 톤이 다운 됐지만 수소 산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비슷했다.
권 소장은 "그린수소를 사용하는 것은 비싼 비용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소가 꼭 필요한 분야가 존재하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마치 수소가 에너지전환의 핵심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며 "수소는 재생에너지 확대 이후에 고려해야 할 보완적 수단이다. 독일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보급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보급은 더딘데도 수소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는 마치 지붕을 먼저 올리고 기초를 나중에 쌓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수소는 'no-regret' 분야, 즉 다른 대안이 없는 영역에서만 활용돼야 한다. 현재 한국의 수소 정책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 있으며 불필요하게 넓은 영역에서 수소 활용을 장려하고 있다"고 분석 했다.
열공급에서의 수소와 히트펌프의 효율 격차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는 건물에서 연료 전지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건물의 연료전지 설치는 신재생에너지의 무화 조건에만 충족을 하고 실질적으로 사용을 안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와 같은 노력을 난방의 전기화에 기울였으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겠냐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권 소장은 "2024년 국가 예산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수소관련 예산은 대략 3900억원 정도, 이중 그린 수소에 배정되는 예산은 1290억에 그친다"며 "이는 수소가 탄소중립 수단인지 의심케 하는 수치로 재생에너지 예산은 1조원이 조금 넘는다. 더욱이 2023년 예산 1조 5천60억에서 30% 이상 감소한 수치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많이 뒤쳐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 ▲수소는 철강 등 직접 전기화가 어려운 산업 부문에 집중하고, ▲열 공급 부문에서는 히트펌프 등 직접 전기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며, ▲수소 관련 보조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직접 전기화가 가능한 영역에서의 수소 지원은 재검토 해야 한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한국 수소 경제의 현실
2024년 전 세계 수소 수요 및 공급은 1억 톤에 이를 전망이나 청정수소 생산 및 활용의 어려움은 만국공통의 문제다. 수소 수요는 주로 정유 및 산업 부문에서 발생했으며 중공업, 장거리 운송, 에너지 저장 등 새로운 분야의 저탄소 수요는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하다. 다만, 각국 정부의 의무화 제도 및 인센티브 정책으로 인해 2023년 저탄소 수소 수요는 약 10% 증가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2030년까지 600만 톤 이상의 저탄소 수소 수요 예상(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 요구치의 10% 수준)된다.
2023년 전 세계 수소생산량 9,700만 톤 중 저탄소 기술(수전해 및 화석연료+CCUS)로 생산된 수소는 1% 미만(연간 100만 톤 이하)다. 저탄소 수소는 주로 화석연료+CCUS 경로를 통해 생산되고 있으며, 수전해를 통핸 수소 생산은 여전히 10만 톤 미만의 생산량으로 확인됐다. 수전해 수소 생산의 대부분은 중국, 유럽, 미국에 집중돼 있으며, 이들 세 지역이 글로벌 생산량의 약 75%를 차지한다. 전 세계 전해조 용량은 2024년 말까지 약 5GW규모가 보급될 것으로 예상되며 중국이 그 중 7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미약한 수준이다.
안지영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기후정책본부 수소경제연구단 연구위원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 요구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국내 에너지 시스템에서 수소의 역할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23.12.18)에 따르면, 2030년 청정수소 수요가 발전부문 80만 톤, 수송부문 39만 톤, 산업부문 9만 톤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소 생산에 필요한 메탄자원과 CO2 저장공간, 재생에너지 자원이 모두 부족해 대부분의 청정수소 수요를 해외 도입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안 연구위원은 "에너지전환 시대의 에너지자립도 제고와 자원안보 확보를 위해 국내 청정수소 공급 목표 달성을 위한 청정수소 생산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며 "국내 청정수소 생산 기반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우선 청정수소 자급률 제고 및 자원안보 확보, 수소 분야 국내 기술 및 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수소 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소의 생산-유통-활용 전 주기에 대한 기술수준이 아직 성숙되지 않아 상업성 확보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정수소 수요 및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 재정적 장애물, 인허가 문제 등으로 청정수소 생산 프로젝트 개발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난감축(hard-to-abate) 부문에서 수소를 활용한 온실가스 기술의 개발 및 보급 불확실성이 청정수소 밸류체인 전주기를 구축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술성숙도가 낮아 상업성 확보가 어려울수록 대규모 청정수소 생산을 위한 인프라 투자 및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 증가한다. 청정수소 기반의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청정수소의 생산 및 활용 부문에서 양방향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 한국 수소 경제를 위한 제언
국내 청정수소 기반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 경로의 개발 및 보급을 통해 장기 목표 달성까지의 촘촘한 로드맵 수립 및 정책적 지원제도 마련이 중요하다. 국내 청정수소 생산-유통-활용 기반은 아직 기술적 성숙도가 낮고 경제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며 정책적 지원 역시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국은 저탄소 수소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함으로써 청정수소의 생산 및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마련한 상태다.
주요국에서는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제공하거나, 청정수소 생산 설비와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 유인을 높이기 위해 간접적인 조세 지원과 세액 공제를 시행하고 있다.
청정수소 생산 촉진을 위한 정책은 공공 보조금(public subsidies), 세액 공제(tax incentives), 경쟁입찰 구조(competitive bidding) 등의 형태가 일반적이며 자국의 저탄소/청정수소 인증제와 연계해 추진한다. 우리나라는 청정수소 인증제에 기반한 직접적인 생산 인센티브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청정수소 생산단가는 해외 청정수소 도입가격에 비해 높아 가격경쟁력 확보가 어려워 청정수소 생산을 위해 필요한 청정에너지 조달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안지영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은 국내 환경에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조달하기 위한 전력조달가격은 높아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비싼 국내 청정수소 생산 가격으로 이어진다"며 "청정수소 생산자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금 및 인센티브 설계를 통해 국내 청정수소 생산의 가격 경쟁력 확보 지원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국내 청정수소 생산비용은 수요처 확보 여부, 유통/소비 인프라 여건에 따라 증가할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발전 외 부문에서의 청정수소 활용 촉진 정책 등을 조속히 추진해 국내 청정수소 생산 사업자의 수요 불확실성 경감 및 인프라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중·단기적 관점에서 청정수소의 유통 및 활용 기술·인프라를 활성화를 위한 브릿지 기술 경로에 대한 지원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