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환경 관련 단체들이 한국을 '기후 악당'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전세계가 탄소 중립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지만 한국은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국가로 낙인찍혔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깎아 내린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지난 주 아제르바이잔에서 막을 내린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9)에는 각국 대표와 환경 단체들이 모여 탄소 중립으로 가는 길에 대한 심도 깊은 토의가 이뤄졌다.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와 회의도 열렸다.
한국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많은 공적금융을 신규 화석연료 사업에 제공 중인 나라(2020~2022년도 기준)다. 특히 2020년 말 탄소중립 선언 이후에도 해외 화석연료 투자액을 오히려 늘리는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달 국정감사 과정에서 수출입은행의 신규 해외 화석연료 사업 투자액은 20조 3537억원(2021~2024년)으로, 14조 3218억원(2017~2020년)보다 40%가량 폭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 '오늘의 화석상' 1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오늘의 화석상’은 세계 150개국 2000개 넘는 기후환경 운동단체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International)’가 COP 기간 중 하루에 한번 꼴로 기후협상을 늦춘 국가를 선정해 수여하는 불명예 상으로, 1999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은 지난해 3위로 처음 수상국 명단에 오른 바 있다. 통상적으로 3위 이내에 든 국가들을 '기후 악당'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쩌다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일까.
◇OECD 흐름 역행하고 있는 '기후 악당' 대한민국
지난 11월 1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 정례회의는 한국의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와 같은 각국 수출신용기구의 해외 투자를 제한하는 협상이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지난 6월 블룸버그의 보도에 의하면, 앞서 지난 6월 개최된 수출신용 정례회의에서 협약 참가국 대부분이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튀르키예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불구하고 협상이 결렬된 사실이 드러났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석유 기업 스톱 토탈(Stop Total), 350.org, 르브루퀴 코트(Le Bruit Qui Court) 등은 ”OECD 국가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득점을 올리려고 노력 중인 가운데, 한국이 적극적으로 이를 막아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톱 토탈 플라비 마할린(Flavie Mahalin) 활동가는 “프랑스 석유 기업 토탈 에너지스(Total Energies)가 주도하는 모잠비크 액화가스(LNG) 사업에 한국 수출입은행이 막대한 재정 지원을 약속한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기 위해 액션에 동참했다”면서 “해당 사업은 전 생애 배출량이 유럽연합(EU) 전체 국가의 연간 총 온실가스 배출량을 뛰어넘는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 가능성이 있고, 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이 사업에서 즉각 철수하고, 더 이상 화석연료 사업에 공적 금융을 제공하지 않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국제 환경단체 350.org의 소야라 페티치(Soyara Fettich) 활동가는 "화석연료 사업은 수백만 명의 미래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라며 “우리는 한국이 매년 1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공적 자금을 화석연료 사업에 지원하며 2015년 파리에서 합의된 ‘지구 온도 1.5°C 상승 제한을 위한 노력’이라는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모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수십억 달러를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에 활용하고, 오염 주체들은 자신이 초래한 피해를 복구하는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금융 전환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 배슬기 에너지기후팀 활동가는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대비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규모는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1.7배로 늘어난 것처럼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가장 평범한 흐름이 되었다. 특히 공적금융 중단은 기후재난의 위기감이 유례없이 고조되는 오늘, 탄소배출과 조절에 책임이 있는 정부가 당연히 내려야 할 결정이다. 한국은 탄소국경제의 일원으로서 국제 사회와 협력하여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또한 OECD 회원국으로서 그 이름에 걸맞게 화석연료 투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과감히 중단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에 앞장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기후 악당, 악영향 미칠까 걱정
경제협력개발기구 정례회의는 다시 열린다. 여기서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와 같은 각국 수출신용기구의 해외 투자를 제한하는 협상이 다시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달 6일까지 화석연료에 대한 해외 투자를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한국이 끝까지 투자 철회를 거부한다면 한국은 한국의 길을 가게 된다. 문제는 한국이 기후 악당의 면모를 쇄신하려 하지 않을 경우 이를 따르는 다른 국가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오동재 기후 솔루션 가스팀장은 "한국이 끝까지 버틴다면 다른 국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른 나라들도 "한국이 하니까 우리도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렇게 되면 전세계가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한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고 주목받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이탈리아 석유 기업과 프랑스 석유 기업과 공동으로 가스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파퓨아뉴기니에서도 사실상 화석연료인 LNG 사업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도 역시 프랑스 석유 기업 토탈이 함께하고 있다.
기후 단체들은 한국 수출입은행이 이 사업에도 투자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개발 국가들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호주와 미국에서도 LNG 자원 사업에 뒷돈을 댔다. 그렇다고 무작정 나서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홍보 포인트가 있다.
일단은 에너지 안보. 국제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에너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에너지 수급이 국제 정세와 상관 없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어떤 에너지건 개발에 동참해 지분을 확보해 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해당 국가의 에너지 개발 사업 지원이다.
LNG는 가짜 녹색 에너지로 포장된 화석 에너지다. 해당 국가들이 LNG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가스 수요는 이미 국내 생산 만으로도 자원이 차고 넘친다. 벌써부터 사용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SK E&S 같은 기업은 호주 바로사 가스전 사업을 이끌었는데, 가스는 얻었지만 쓸 곳을 찾지 못해 계속해서 계획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오동재 팀장은 "한국의 가스 사업은 경로 의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나라다. 화석 연료 수요가 높았다. 하지만 탄소 중립 계획 등의 영향으로 화석 연룡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고 있다. LNG등 가스 사업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선 판로가 줄어들고 있다. 경제 성장률 등의 영향도 있고 처음부터 마땅한 수요처를 찾지 못했던 것도 있다. 때문에 시야를 계속 국외에서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수요처를 찾으며 공급처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공적 금융을 지원 받아 해외 플랜트를 건설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짜 악당 바이오매스와 메탄
COP29에서 발표된 바이오매스 리스크 보고서는 한국을 세계 3대 목재펠릿 수요국으로 분석했다. 발전소의 탄소배출량 산정 누락과 이에 기댄 ‘가짜 재생에너지’ 보조금이 산업 비대화 초래하고 있다.
산업부는 바이오매스를 올해 중 정책 개편 예고했다. 커지는 바이오매스 REC 가중치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바이오매스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바이오매스는 대단히 질이 나쁜 에너지다. 바이오매스는 석탄 발전에서 석탄을 100% 태우지 않고 목재를 투입해 혼소(혼합해 연소)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는 것을 뜻한다.
화석 연료를 쓰면서 최대 산소 공급원인 나무까지 잘라내는 최악의 에너지 사업이다.
문제는 탄소배출과 산림파괴로 비판받는 바이오매스 발전 확대가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월 18일(현지시각) 세계 59개국 283개 단체가 참여하는 바이오매스행동네트워크(BAN)는 '생물권을 불태우다: 바이오매스 에너지의 글로벌 위협 평가 2024' 백서를 발표했다.
COP29 부대행사 ‘산림 행동 실현과 가짜 솔루션 방지’에서 공개된 이번 분석은 기후·환경·인권 피해를 끼치고도 문제시되지 않은 바이오매스 문제의 근원을 바이오매스의 탄소배출을 에너지 부문에서 산정하지 않는 국제 회계 규칙으로 꼽았다.
이중계상을 피하고자 토지 부문(LULUCF)에서만 바이오매스 배출량을 산정하는 규칙이 바이오매스가 (온실가스) ‘무배출’이라는 오해를 낳은 것이다. 이런 허점에 기대 2017년 이래 바이오매스 발전을 가장 빨리 확대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으로 연료 수요를 대부분 동남아와 북미산 목재펠릿에 의존하고 있다.
2023년 현재 목재펠릿 수입량이 가장 큰 나라는 영국(640만 톤)이며, 일본(580만 톤)과 한국(370만 톤)이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는 정부 정책과 계획된 신규 설비를 고려했을 때, 2030년 일본과 한국의 목재펠릿 수입량이 2030년에는 각각 1400백만 톤, 800만 톤으로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일본은 영국을 추월해 세계 1위로 오르며, 한국도 영국(1000만 톤)에 근접한 3대 목재펠릿 수입국에 등극할 전망이다.
보고서는 또 바이오매스 산업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유해보조금’으로 한국의 REC 가중치를 조명했다. 한국의 REC 가중치가 1톤의 탄소배출에 59달러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아이러니를 초래했다는 진단이다.
이어 보고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2030년까지 세계 목질계 바이오매스의 3배 확대를 전망하지만, 이는 더 많은 자연림 벌채, 목재 플랜테이션 확대, 집약적인 산림경영으로 이어져 생태계서비스와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토착민과 지역공동체의 숲을 빼앗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문대림 국회의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은 바이오매스가 “아시아의 허파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자연림을 싹쓸이 벌채하여 한국에 들어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둔갑한다”며 “높은 REC 가중치로 보조금을 받는 전형적인 그린워싱 사례”라고 비판한 바 있다.
◇ 메탄 문제도 심각
메탄은 탄소 문제에선 한 걸음 빗겨나 있다. 환경 문제에 직격탄이 가해지지는 않지만 온실가스 배출 비율이 매우 높은 물질이다. 메탄 규제 역시 환경 문제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LNG가 마치 녹색 에너지인 양 포장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메탄 문제는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다. LNG의 탄소 배출량은 화석 에너지에 비해 적지만 그에 못지 않은 메탄 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오존층 파괴 등 환경을 무너트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동재 팀장은 "석탄에서 재생 에너지로 바로 가지 않고 LNG를 거쳐 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이야기할 때 투자가 한 번 이뤄지면 보통 5년 뒤부터 사업이 시작된다. 지금 투자가 시작되면 2030년쯤 사업이 시작될 것이고 사업 연한을 30년으로 봤을 때 2060년까지 사업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30년간 온실가스 배출을 고려하고 투자 결정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 투자는 탄소 중립 시점을 훨씬 넘어서까지 온실 가스가 배출되는 투자 결정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2050년 탄소 중립 시점을 고려해서도 지금의 LNG 투자는 문제가 있다. 메탄 감축 목표를 고려해서도 단기적으로 봤을 때도 굉장히 우려가 많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정부가 가입한 국제 메탄 서약은 2030년까지 3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투자가 이뤄지거나 아니면 국내에서 새롭게 늘어나고 있는 LNG 설비들은 전부 다 메탄으로 인한 온실가스 신규 배출이 많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 부분들도 단기적으로는 우려된다"고 풀이 했다.
◇기후변화 대응 지수 꼴찌 한국
한국은 세계 64개 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을 비교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에서 최하위권인 63위를 기록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다.
기후변화대응지수는 독일의 비영리연구소인 저먼워치(GermanWatch), 뉴클라이밋 연구소(NewClimate Institute), 세계 기후단체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 Climate Action Network)가 함께 매년 각국의 기후 대응을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사용, 기후 정책 등 4가지 부문으로 나눠 평가한 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즈음해 내는 보고서로, 2005년부터 발표해 왔다.
보고서는 올해 한국의 낮은 성적의 이유로, 한국 헌법재판소마저 지적할 정도로 2도 제한 온실가스 감축 경로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 온실가스감축계획(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탈화석 연료는커녕 오히려 신규 석유·가스 사업을 늘리려는 투자 의지 등을 꼽았다.
얀 버크(Jan Burck) 저먼워치 상임고문을 비롯한 보고서 저자들은 “지난 8월 29일 한국 헌법재판소는 한국의 현재 온실가스감축계획이 2030년 이후 감축 계획이 없는 점 등을 들어 현재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한국은 파리 협약 경로에 맞는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하고, 석탄과 가스 발전은 현재 목표(2050년)보다 앞당긴 2035년에 폐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메탄(이산화탄소 최대 80배에 달하는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을 2020년 대비 30% 줄이기로 한 글로벌 메탄 서약(Global Methane Pledge)에 가입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선 (동해안 석유가스전을 개발하겠다는) ‘대왕고래’ 개발 계획과 같은 신규 석유 가스전 개발 계획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2050년 비중 70%를 목표로 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도입을 더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클라스 혼(Niklas Höhne) 뉴클라이밋 연구소 연구원은 “세계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 세계 온실가스가 최고점을 찍고 내려와야 할 시기가 가까웠다. 기후변화의 더 무서운 결과들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 뿐”이라며 “특히 도널드 트럼프가 새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유럽연합 및 가입국인 독일 등과 같은 나라의 더 강한 리더십이 특별히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자넷 밀롱고(Janet Milongo) 기후행동네트워크의 에너지전환 부문 선임 매니저는 “세계 다수에게 에너지 불평등은 여전한 현실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보다 네덜란드 한 나라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더 많은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나 국가라도 뒤에 남겨둔다면 기후 부정의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고 공동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할 것이다. 빠르고 정의롭고 공평한 전환을 위한 공적 금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