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제2기 정부 출범 후 확실히 실행될 것으로 보이는 외교 통상 정책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미군 주둔에 대한 방위비 인상과 관세 부과다. 첫째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며 방위비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레토릭’은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아마도 자기 머리와 경험으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53년 6.25전쟁 당시에 맺어진 한미동맹과 미군 주둔은 분명 한국을 지켜준다는 정당성을 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영토를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고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주한미군의 역할은 크게 달라졌다. 다시 말해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방어의 최선봉에 주한미군이 존재한다는 점을 무시하는 발언을 습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군함 척수가 이미 미국을 능가하고 있는데도 미국은 군함 증강은커녕 유지보수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약화되어 세계 경찰로서 역할을 이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은 미국의 동맹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예고도 없이 아프간을 갑작스레 도망치듯 철수하는 모습은 동맹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무기는 제공하지만, 미군은 파병하지 않는 매우 제한된 지원만 하고 있다. 이전의 미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자주국방이 닉슨 독트린에서 시작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제2의 닉슨 독트린과 같은 충격이 트럼프 제2기 정부에 의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신정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주둔비 분담 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나토 국가들에 대해서도 자체 군사력을 증강하라는 압박을 할 것이고 이미 각국이 군비를 늘리고 있다.
트럼프 신정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포석에서 과거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 나토 동맹들의 역할과 분담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처럼 미국이 모든 부담과 책임을 다 지는 형태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트럼프 당선자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할 때 미국 해군의 군함 건조를 도와달라는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자국 해군력이 약해졌으므로 도와달라는 어법이다. 이런 기조에서 한국에게 방위비 인상을 거듭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경제가 어렵다. 한국은 부자 아니냐. 그러니 주둔비 부담을 늘려달라’는 논법을 구사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바이든 정부 때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중국에 대한 매파 각료들을 일제히 앉힌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강경책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동맹들의 부담과 협력을 늘리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미국의 장악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릴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과 맞물려 이른바 미국과 러시아의 세계 질서 주도권이 갑자기 상실될지도 모른다. 벌써 움직이고 있는 나라가 프랑스다.
영국도 유럽 방위에 관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일본과 독일, 폴란드도 뒤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방위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할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위상은 떨어지는 반면에 중국의 남중국 위협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370척의 군함과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핵무기의 급속한 증강이 포착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남중국해 연안국들은 자주국방 노력에 진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의 선택은 분명하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잘 맺어가되, 이제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영국과 프랑스, 폴란드, 독일, 일본 등 핵보유국과 선진국들과 군사적 협력을 긴밀히 해야 한다. 미국이 우리의 핵무장을 견제한다면 프랑스와도 협력을 통해 핵무장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군사력은 닉슨 독트린 선언 당시의 국방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나날이 발전되고 있다. 올해 국군의 날에 처음 선보인 현무 5는 일종의 전략적 무기로 평가될 정도로 위력이 막강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신정부의 관세 인상으로는 제조업 못살려
바이든 정부가 자국의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신의 한 수’로 잘한 것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산업을 유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이를 무산시키고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취하면 중국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제조업의 회생 가능성은 영원히 닫히게 될지도 모른다.
관세 인상으로 어려운 기술을 요하지 않는 일부 제조업이 활성화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코스트 상승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는 한국과 대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제조 자체가 안 될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아마도 트럼프 자신과 그의 경제 브레인들은 이런 현실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제조업은 제조 기술과 노동력의 질, 노동윤리, 코스트 구조가 너무 오랫동안 병들어 있다. 미국 자동차 3사는 신속하게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생산 체제로 바꿔야 하고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자율주행차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컴퓨터와 배터리로 작동되는 전기차 생산으로 시급하게 바꿔야 한다. 지금도 한참 늦었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 부과로 거둬들인 돈으로 미국의 만성 적자를 메우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관세를 부과하면 무역 감소로 관세를 부과할 대상 품목이 줄어들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작은 것을 취하되, 더 큰 것을 잃을 정책이 '관세 부과'로 보인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 약점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자국 수요는 물론이고 해외 수요를 초과하는 정도로 과잉생산을 강행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제조업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고 본다. 일종의 ‘제조업 인해 전술’을 쓰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비트코인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월가의 금융 파워와 달러 패권을 유지하면 세계 경제를 여전히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제조업이 회복되지 못하면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11월 25일 취임도 하기 전에 멕시코에 대해 25%, 중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무역을 하는 나라들에게 타격을 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해로운 정책이 될 것이다. 미-중 간 디커플링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데,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는 미국과 무역국 간의 디커플링이 급속히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요즘 한국을 보면 일본과의 협력이 증가하고 있고 유럽과 가까워지고 있다. 중동 국가들과 페루와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과도 방산과 자원 분야에서 협력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관세 부과는 미국의 위상 약화를 초래할 것이고 그것은 무기 구매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굳이 비싼 미국산 무기를 사지 않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괜찮고 품질 좋고 기술 이전에도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한국산 무기 수입을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했던 정책대로 한국과 대만, 일본의 제조업을 유치하여 차근차근 경쟁력을 회복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국이 경제 개발 시대에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제조업 기술을 배웠듯이 그대로 복기하듯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 미국은 AI와 생물 과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이런 기술을 배우고 상호 윈윈하는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기아그룹의 로봇 파트너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자율차 합작기업인 모셔널이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을 보면 관세 인상과 세금 깎아 주기,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이 전부다. 관세 인상은 앞서 말했듯이 일부 제조업에서 단기적 활성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세금 깎아 주기는 숨통을 열어주는 효과보다는 혁신을 지연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리쇼어링도 한국도 경험하고 있지만 한 번 나간 기업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온다는 확률은 극히 낮다.
◇트럼프 등장은 중국 시진핑 체제를 더욱 강화시킬 듯
중국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 서구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 지배 시스템, 즉 현재의 시진핑 체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민들의 불만이 높아도 철저한 감시와 진압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체제 변경은 일어나기 어렵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어려움도 다른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중국 경제가 등소평 이후 지난 50년간 고속 성장을 해온 까닭에 위-아래 전반에 걸쳐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이건 누가 집권해도 거품을 빼고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시진핑 경제 구상은 그 거품을 빼가면서 첨단산업에서 미국을 뛰어넘는 육성 정책을, 모든 국력을 모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책은 독재 체제이기 때문에 추진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할 수 없는 정책이다. 한국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대 그런 정책을 한 경험이 있다. 중국은 트럼프 당선인과 그의 브레인들이 예상 못 할 만큼 경제적 성과를 나타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이것을 인정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한국은 대미 무역 의존도를 트럼프의 고립주의 때문에 낮출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았지만, 시대와 환경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과 아세안, 인도, 중동,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등 지금까지 좀 소홀히 했던 나라들과 무역과 경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과도 가까이 갈 필요가 충분하다. 중국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중국 국민이 선택할 일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도 장래 러시아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고 본다. 휴전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뒤늦게 ‘상투’를 잡지 않기를 바란다. 러시아를 돕기 위해 북한이 파병됐다고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논법은 무리라고 본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등 고립주의 정책은 미국의 위상을 하락시킬 것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함으로써 강대국의 권위와 힘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부상, 미국을 제외한 G7 국가들과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현재 미국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깨달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살길은 한국과 일본, 대만과 경제 및 군사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법임을 알게 해야 한다. 정부 효율부를 일론 머스크와 함께 이끌게 될 라마스와미가 반도체 보조금 등을 거듭 재검토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신정부 각료들은 지금 흥분에 싸여 있는 것 같다. 일론 머스크와 라마스 와미는 실리콘밸리와 월가에서 성공한 경험에 충만한 듯한데, 국제정치 역사와 연륜이 약한 이들이 과연 제대로 일을 해낼지, 아니면 미국경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릴지 두고 볼 일이다.
그들도 곧 현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당선인은 복수의 칼날을 벼르고 있으나 1기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현실을 알게 되면, 자신의 정책을 수정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