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MZ의 촛불, 응원봉으로 타오르다

  • 등록 2024.12.12 10: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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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MZ 세대의 촛불, 야당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시위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요. 외국인들이 한국 계엄 사태 때문에 여행을 꺼린다고 하는데 오히려 시위에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을 정도에요. 관광 상품까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 될 때마다 시위에 참여하고 싶어요."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 온 한 여대생이 한 말이다. 시위에 참석하는 마음은 무거웠지만, 막상 촛불 집회를 함께하게 되면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시위는 최류탄이 터지고 막으려는 경찰들과 뚫으려는 국민들 사이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시위 도중 사망자가 발생하는 불행한 사태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 당시만 해도 살벌한 분위기는 남아 있었다. 당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을 향해 보수 진영에선 "시위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아이들을 앞장 세우냐"는 날선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2024년 시위 현장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숨김 없이 표출하고 어떤 상황이든 즐길 줄 아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며 시위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마치 한 바탕 축제를 보는 듯 한 새로운 시위 분위기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가 만든 새로운 문화다. 

 

◇"아이돌 응원봉 들고 나왔어요"

 

서울 소재 모 여대 재학 중인 A양은 촛불 집회 참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A양은 "비상 계엄 사태로 무섭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뉴스를 계속 보고 있었는 데, 시위하는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을 보고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실제 현장에 나와 보니까 분위기는 더 좋았다. 친구들에게도 추천을 많이 했고,  시위에 동참한 후 답답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시위의 출발은 무거운 촛불에서 시작됐다. 시발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였다. 그때부터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탄핵 시위는 '촛불 집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2024년 지금, 그때와 또 다른 문화가 펼쳐지고 있다. 한 바탕 축제를 벌이 듯 시위를 즐기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 끼리 끼리 모여 함께하고, 시위 현장에선 K팝 ‘내가 제일 잘나가(2ne1)’·‘아파트(로제)’·‘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삐딱하게’ 등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시민들은 함께 노래 부르며 준비해 온 콘서트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시위에 참여한 70대 한 남성은 "아파트 하면 '윤수일' 밖에 몰랐는데 이번에 로제라는 가수가 부른 '아파트'라는 노래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노래 하나로 세대간 통합이 이뤄진 것 같다. 젊은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함성도 지르고 하다 보니 덩달아 젊어지는 기분이다.  예전같은 시위의 진중함은 사라졌지만 훨씬 활기차고 힘 나는 시위 문화가 등장한 것 같아 신기하고 반갑다"고 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처럼 무거운 이름의 단체들이 이끌던 옛 문화와는 분명 달라졌다. 

'응원봉을 든 오타쿠 시민 연대'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인 화가 연대' 처럼 재기 발랄한 플래 카드들도 눈에 띈다. 플래카드 만으로도 충분히 엄숙하고 무거웠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뀐 걸 느낄 수 있다. 

 

 

◇주먹밥 대신 커피 선결재

 

주먹밥은 1980년 광주 민주 항쟁의 상징 중 하나였다. 거리로 뛰쳐 나온 시민들의 끼니를 걱정했던 광주의 어머니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시위대에게 안겨주었던 것이 시발점이다. 이후 주먹밥은 광주를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최근 이 흐름에도 변화가 생겼다. 커피와 만두, 김밥에 국밥까지 일단 종류가 버라이어티해졌다. 군인들을 뚫고 위험하게 전달하던 주먹밥은 이제 선결재 쿠폰으로 바뀌었다. 

 

배우 강기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시위 장소 인근 커피전문점에 커피를 선결재했다. 제 이름을 대고 가져 가시면 된다.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신데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달래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알렸다. 

 

일반인들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시위 장소 인근의 커피 전문점과 식당 등에는 선결제로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려는 주문이 몰려들며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전엔 시위 장소 근처의 요식업체들은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비하면 달라진 시위 문화는 지역경제에도 한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야당도 도취되면 도태된다

 

MZ 세대의 달라진 시위 문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흥겹고 즐겁다. 다루는 사안은 매우 무겁지만 접근 방법까지 엄숙하고 진중할 필요는 없음을 새로운 세대가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이 이 민심을 무조건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것이라고 과대 포장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 대학의 정치학과 B 교수는 "MZ 세대들이 너무나도 생경한 계엄이라는 사태를 겪으며 광장으로 나서게 됐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회로 난입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결 밝아진 시위 문화는 민주주의가 익숙한 새로운 세대들의 자연스러운 의견 표출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희망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B교수는 이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MZ 세대다. 야당이 탄핵 분위기에 고무돼 폭주를 하게 된다면 또 다른 모습의 독재로 느낄 수 있다. 지금의 시위는 어느 집단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다. 무조건 야당에 유리하다고 해석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촛불의 흐름이 응원봉으로 바뀌었 듯 MZ 세대의 지지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시위는 가벼워졌지만 그 메시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야당도 언제든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정철우 기자 butyou@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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