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한 이후 칩거 상태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자신의 계엄 선포는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 사과 담화를 계기로 근신 모드를 보이는 듯 했지만, 적극 반격으로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야당이 자신에 대해 내란죄 운운하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격하게 비난하면서, 계엄 선포는 야당의 국헌 문란 행위에 맞서 국가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7일 국회 본회의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2분짜리 담화문을 발표할 때는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번에는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주장을 강박하는 논조가 두드러졌다.
30분 정도 진행된 담화문 낭독에서 그는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탄핵 절차를 활용해 법적 투쟁을 하겠다는 의지와 구상을 표출했다. 그의 담화문은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국민에게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해달라는 ‘행동개시’ 신호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호소 또는 지시대로 일부 국민은 광화문이나 여의도로 나가 윤석열 지지와 계엄령 지지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담화는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 75% 그리고 질서있는 퇴진을 요구하는 16% 등 우리 국민 91%가 퇴진을 촉구하는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인식의 괴리를 보여줄 뿐이다. 그의 담화문은 망상과 아집, 오해와 편견으로 채워져서 단 한 사람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적반하장’을 보여주는 글로 후세에 길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일으키는 것이 거대 야당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야당이 인정하지 않고 2년 반 동안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는 등 대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야당 지도자 중에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지만, 탄핵을 시도한 사실은 없었다. 야당이 대통령을 줄기차게 비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선 결과에 불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없었다.
그는 야당이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기 위해 수십 명의 정부 공직자 탄핵을 추진했다면서 탄핵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자유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라고 주장했다. 예산을 삭감한 것도 국정 마비 사례로 제시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복수 정당이 존재하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부 권력을 차지하는 여당과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으로 갈려서 각자 역할을 수행한다. 야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장관을 탄핵할 수 있다. 예산안 승인 권한은 국회에 있으므로 여당과 야당이 예산안 승인을 계기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건강한 정당 정치의 발현이다. 야당이 정부 견제를 명분으로 정치적 투쟁을 과도하게 전개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런 경우에도 대통령은 야당과 협상을 통해 협력을 받아내야 한다.
그래도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호소하고, 그래도 안되면 총선에서 승리해서 다수당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할 생각도 없었고, 국민 지지를 받기 위해 노심초사한 적도 없다. 야당 견제가 심해서 대통령이 정책을 원하는대로 주도할 수 없다면 단지 자신의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장과 미사일 위협 도발에도, GPS 교란과 오물 풍선에도, 민주노총 간첩 사건에도, 거대 야당은 북한 편을 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부를 흠집 내기만 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불법 핵 개발에 따른 UN 대북 제재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야당이 주장했다고 강변했다.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민주당도 북한 핵 위협이나 다양한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해왔다. 다만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것을 보고 북한 편을 들었다고 하면 외교와 안보의 기본을 모르는 무식한 주장이다.
오히려 자신이 외교안보에서 친미 일변도 정책을 전개하면서 불필요하게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 문제였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설사 야당이 부당하게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비난한다고 해도 이것도 역시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해서 풀어야할 문제다. 자신이 계엄으로 수호하겠다고 주장한 헌법 질서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가 바로 협상이고 설득이다.
야당에 협조를 요청하지도 않으면서 야당 탓을 하고, 국정 마비를 운운하는 것은 자신이 왕조 시대 국왕으로 착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울 따름이다.
그는 지난해에 정부 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고, 전산시스템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서 국가정보원이 시스템 점검을 진행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는 완강히 거부했다면서 이번에 선관위 전산망 점검을 위해 계엄군을 파견했다고 주장했다.
선관위 전산망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 권한을 활용해 개선을 하면 될 일이다. 선관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당과 야당의 권력 분배 기준인 선거를 관리하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함부로 전산망을 건드릴 수 없다.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야당을 설득해야 문제가 풀리는데, 특수전 부대를 선관위로 보냈다고 하니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선관위 전산시스템 이야기는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 대통령이 경찰 조사 결과를 믿지 않고, 일부 극우유튜버들의 요설에 휘둘린 셈이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다수 힘으로 입법 폭거를 일삼고 오로지 야당 대표의 방탄에만 혈안이 돼서 의회 독재를 하고 있어서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말을 하려면 그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왜 집권 여당이 참패했는지 먼저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 불만이 팽배한 결과가 여당 참패로 나타난 것이다. 국회 의석은 국민이 정하는 것이지, 야당 대표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의회 독재라는 말도 심각한 과장이다. 국회가 탄핵한 장관을 해고하지 않고, 국회가 결의한 특검 법안을 모조리 거부했기 때문에 그 많은 숫자의 탄핵과 특검 법안 제출이 나온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는 그 자체로 국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수장이 국회를 반국가 세력으로 지목하고 군대를 동원해 기능 정지를 시도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논리적 근거는 단 하나도 없다.
그는 또 국정 마비 상황을 국가 기능 붕괴 상태로 판단해 계엄령을 발동하되, 국민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정 마비에 대응하기 위해 야당을 경고한다는 발상도 헌법 위반인데, 경고 방식이 국민 기본권을 중지시키는 계엄 선포라고 하니, 그의 상황 인식과 논리적 사고 능력이 비정상이고, 극단적인 양심불량 종자임을 보여준 것이다.
윤 대통령 4차 담화는 온통 오해와 편견, 아집과 망상에 기반한 논리적 비문으로 구성돼 있어서 이런 사람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2년 반 동안 국정 운영을 책임졌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다만 이번 담화를 계기로 탄핵에 반대하던 국민, 심지어 윤 대통령 계엄 선포를 지지하던 극소수 국민들도 윤 대통령 즉각 직무 정지인 탄핵으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된다.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다.
가능하면 90% 이상 압도적인 다수가 탄핵을 지지하는 것이 국회 탄핵 절차는 물론, 헌법 재판소 심판 절차와 이후 대통령 선거 절차 진행에서 불필요한 국내 갈등을 최소화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저력을 보여주는데 필요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