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정책이 오락가락 해선 안되는 이유?

  • 등록 2024.12.26 18: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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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선언 이후 유럽에서 왕따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독일
윤석열 대통령 원전 정책만은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갈 필요성 제기

 

윤석열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숱한 실책을 저질렀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 대란이다.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저돌적으로 밀어 붙인 의료 개혁은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길을 잃고 표류했다. 의사들은 현장을 떠났고 남은 자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의료 공백이 현실화 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왔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냈다. 탄핵 이전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초반 대로 추락했던 이유다.

 

탄핵 정국을 맞으면서 윤 대통령이 추진해오던 여러 정책들은 '올스톱' 될 위기에 놓였다. 다행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고, 국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긴 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실책이 만회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원전 우선주의' 노선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원전 정책은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선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는 재생에너지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유럽에서 조차도 원전은 다시 대세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원전 정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그렇다면 원전 정책이 오락가락 해선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사례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코너에 몰린 탈 원전 국가 독일

 

독일은 탈 원전을 선언한 대표적인 유럽 국가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노선을 걸었다. 그리고 탈원전 2년.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연방환경청에 따르면, 올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지난해보다 4% 늘어난 285.2TWh(테라와트시)로 잠정 집계됐다. 전력 소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52.5%에서 54%까지 늘어난 것으로 조사 됐다. 독일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소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반면, 원전 발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불규칙한 날씨 탓에 안정적인 에너지 생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적지 않은 양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에너지 수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기요금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독일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꾸준하지 못한 재생에너지 공급 탓에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독일 정부 기후정책 자문위원회의장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과도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재생에너지 개발을 늘리고는 있지만, 독일 연방환경청은 독일이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 내에서도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대 야당인 기민당 대표는 "(탈원전 정책은)급을 인위적으로 줄인 중대한 정치적 실수"라고 지적했다. 기민당과 기독사회당은 탈원전이 정치적 결정이었다며 원전 재가동은 물론 소형 모듈 원전과 핵융합 원자로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급기야 이웃 국가에선 탈원전 정책을 비판받는 일까지 생겼다. 최근 스웨덴 정부는 독일이 탈원전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독일에 전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스웨덴 자국 내에서도 재생 에너지에만 의존해선 전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재생 에너지가 풍부한 북부 지방에 비해 남부 지방의 전기 요금에 190배나 높게 책정되는 기형적 현상을 겪었다. 스웨덴도 한 때 탈원전을 계획했지만 모두 원점으로 돌렸다. 이제는 원전 추가 건설을 통한 에너지 공급을 결정한 상태다.

 

에바 부시 스웨덴 에너지부 장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서 "독일과 스웨덴 남부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한사 파워브리지(Hansa PowerBridge) 프로젝트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한사 파워브리지는 독일과 스웨덴이 700메가와트(MW) 용량 전기 거래를 위해 양국 전력망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부시 장관은 "해당 프로젝트는 독일이 자국 전력 시장을 개편해 해외에서 값싼 전기를 과도하게 수입하는 것을 멈춰야만 승인될 것이다. 독일이 국내 전력 시장을 입찰 구역으로 나누어 전기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춘다면 스웨덴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 독일의 탈원전 정책, 유럽의 골칫덩어리로 전략

 

독일은 어쩔 수 없이 화석 연료 에너지를 좀 더 활용하기로 하고 탈 석탄만은 최종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원전에서 벗어나려다 환경 문제에선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안 그래도 화석 연료에 대한 투자가 많은 대한민국에 안 좋은 신호가 될 수 있다. 

 

AI의 발전 등으로 유럽 각국 사이에선 에너지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스웨덴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원전 재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전력량을 충족시킬 수 없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유럽의 이 같은 변화는 우리나라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윤석열표 CF 연합

 

“대한민국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에너지를 폭넓게 활용할 것이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이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CF(Carbon Free) 연합’을 제안하면서 한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현실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원전은 탄소 중립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 CF연합을 주도하며 원전을 통한 탄소 중립을 추진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을 비판하면서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의 대대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2022년 7월 확정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는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의 재정립’을 표방하면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원전 수명연장을 통해 2030년 원전 발전량 비중을 30% 이상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원전 생태계 복원, 2030년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원전수출전략추진단’ 신설, SMR 4,000억 원 투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환경 단체들은 윤 대통령의 원전 우선 정책을 비판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예산은 대폭 삭감하면서 위험 에너지원인 원전 건설에만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최소한 원전에 대한 정책만은 윤 대통령이 옳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생에너지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들어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발전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원전을 배제하고 재생 에너지만으로 전기를 충당하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전반적으로 줄어들며 한국의 재생 에너지 활용률은 크게 떨어졌다. 특히 한국은 AI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당연히 전기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원전이 아니면 그 수요를 다 충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이 자꾸 바뀌면 발전 속도만 늦어질 뿐이다. 현재 상황에서 원전을 배제해서는 전력량을 충당할 수 없다는 엄중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원전으로 급한 불을 끄고 재생 에너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정권을 어느 쪽이 쥐느냐와 상관 없이 일단 원전 정책은 연속성을 갖고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현재 한국의 에너지 안보 상황에서 원전을 제쳐두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은 우매한 판단이라고 본다. 원전의 위험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기술 발전에 투자를 하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한국은 원전이 에너지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전 수출도 계속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도 좋은 소식이 들려온 바 있다. 세계적인 수준인 원전 기술을 활용하는 쪽으로 정책이 선택 돼야 한다.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책까지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이제 멈춰야 한다"며 "유럽 선진국들도 결국 원전에 손을 내밀고 있다. 재생 에너지가 우리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는 유럽 국가들이 왜 다시 원전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한국 원전 수출, 의미 있는 성과도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 19일(현지 시간)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루마니아원자력공사(SNN)에서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개선사업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사업은 월성원전과 동일한 캔두(CANDU)형 중수로인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의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추가 30년 계속운전을 목표로 진행하는 약 2.8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루마니아원자력공사가 발주한 이번 프로젝트에 한수원은 캐나다 캔두 에너지(Candu Energy), 이탈리아 안살도 뉴클리어(Ansaldo Nucleare)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주계약자로 참여하며 내년 2월부터 공사에 착수해 약 65개월 동안 설비개선을 수행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체르나보다 1호기의 원공급사인 캔두 에너지는 원자로 계통, 안살도 뉴클리어는 터빈발전기 계통의 설계와 기자재 구매를 각각 맡는다. 한수원은 주기기 교체 등 시공 총괄과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 등 주요 인프라 시설 건설을 담당하며 계약규모는 약 1.2조원이다. 한수원의 협력업체로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이 시공·건설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국 원전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체코 원전 수주도 이제 최종 단계에 접어 들었다.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전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이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선 꾸준한 연구 개발과 투자가 뒷받침 돼야 한다. 세계적인 흐름이 원전으로 돌아서고 있다. 우리도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정권을 누가 잡을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되더라도 원전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제 다시 원점에서 재 검토를 한다거나 하게 된다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는 원전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철우 기자 butyou@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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