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이 움직인다, 세상이 뒤집혔다

  • 등록 2024.12.28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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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문화 트랜드의 중심에 선 20~30 여성들
열정 뜨겁지만 무조건적 충성은 없어, 잘못 판단하면 큰 코 다쳐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윤석열 대통령)탄핵 집회에 남성들의 참여를 추천한다. 젊은 여성들이 대거 시위에 나서고 있다"는 실언을 해 뭇매를 맞았다. 여성을 교제의 대상으로 상품화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만, 그가 사실을 말한 것은 분명했다. 탄핵 시위 현장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탄핵 국민운동 측은 시위대의 1/3은 20~30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비단 탄핵 시위만이 아니다. 20~30 여성들은 이제 세상의 중심에 서고 있다. 그들이 움직이면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30 여성들이 움직이면 판이 뒤바뀌는 현상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그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만든 것일까. 달라진 20~30 여성들의 위상은 이제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그들을 따라가 보자.

 

◇시위 현장을 축제의 장으로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의 아이콘은 단연 응원봉이었다. 원래 응원봉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공연을 빛내기 위해 쓰이던 도구인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중한 사안에 등장한 것이다. 시위가 하나의 축제처럼 여겨지게 만든 촉매제였다. 

 

20~30 여성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시위장으로 끌어 들였다. 그리고 아이돌의 노래를 개사한 '탄핵송'을 목청껏 불렀다. 자연스럽게 흥겨운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시위장은 노래하고 즐기는 문화의 장으로 변모했다. 시위 참가자도 많았지만 시위를 생중계한 유튜브 채널도 호황을 누린 것 또한 중요한 대목이다.

 

한 20대 여성은 "시위에 참여할 용기는 없었지만 유튜브를 통해 같이 호흡하고 싶었다. 시위 현장에서 불리는 노래들을 대부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따라부르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장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같이 노래를 부르며 뜻을 모았다. 모두가 한 마음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위를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시위 현장에 20~30 여성이 많았던 이유를 그 나이 때 남성들은 20%가 군대에 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의 치안이 좋은 것도 한 몫을 했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이 의원이 간과한 것이 있다. 우리의 치안은 여성들이 느끼기에 그리 탄탄하지 않다는 점이다.

 

절대 다수의 여성들이 여전히 밤 거리를 홀로 걷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여성들이 실제 느끼는 치안의 강도는 그리 탄탄하지 않다. 또한 시위 문화를 20~30 여성들이 이끌었다는 점도 놓친 대목이다. 20~30 여성들은 주체적으로 시위 문화를 만들어갔고 시위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단순히 노래하고 즐기려고 시위에 나선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불합리한 선택을 비판하려 했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큰 어젠다에도 동참했다. 시위의 꽃이 아니라 중심으로서 몫을 충실히 해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의 중심엔 20~30 여성들이 있었다.

 

◇프로야구 1000만 관중의 주역

 

한국 프로야구는 올 시즌 1982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그 중심에도 20~30 여성들이 있었다. 1위는 LG 트윈스였다. 지난해 우승팀인 LG는 올해 139만7499명의 홈 관중을 유치해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구단 티켓 구매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5~19세 구매자는 6132명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1만437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4세 구매자도 지난해 2만8674명에서 올 해 3만5098명으로 늘었다.

 

올 시즌 130만1768명의 관중이 든 같은 서울 연고의 두산 베어스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20대 여성이 전체 관중의 24.6%로 가장 많았다. 20대 남성 예매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은 19.3%였다.

 

지난 7월 열린 올스타전 예매 성향 분석 결과도 비슷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발표에 따르면 예매자 중 20대 여성 비중이 39.6%로 가장 높았다. 30대 여성도 19.1%를 기록했다. 지난해엔 20대 여성 35.4%, 30대 여성 13%를 기록했었다. 여기서도 노래가 등장한다. 선수별, 팀별 응원가를 소리 높여 부를 수 있다는 것이 흥행의 가장 큰 포인트로 주목 받았다.

 

올 시즌 처음으로 프로야구 팬이 됐다는 한 여성은 "야구장에 가기 전 유튜브를 통해 선수나 팀의 응원가를 먼저 익혔다. 드넓은 야구장에서 함께 온 팬들과 같은 응원가를 부르는 재미는 느껴보지 못한 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쾌감이 있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함께 노래하고 즐기는 것이 더 좋다.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하니 응원하는 것도 한결 더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밝혔다.

 

그저 맹목적인 응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엄히 꾸짖고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요즘 20~30 여성 팬들의 달라진 점이다. 

 

A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예전엔 일방적으로 선수를 감싸고 도는 문화가 있었다.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팬층이 두터워지며 이런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선수들이 그릇된 행동을 하명 당장 반응이 온다. 절대 무조건적으로 응원해주지 않는다. 야구는 못해도 되지만 불성실한 플레이는 용서받지 못한다. 이전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전의 여성 팬들이 야구 선수를 남성으로만 봤다면 이젠 객관화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20~30 여성 팬들의 팬심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탕후루의 몰락과 로데오 거리의 부활

 

탕후루는 과일에 설탕 등을 덧입혀 만들어 낸 간식이다. 한 때 요식업계를 뒤흔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여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여대 앞에는 한 집 걸러 또 한 집이 탕후루 가게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탕후루라는 단어를 사용한 숏폼 챌린지(노래와 춤을 추며 만들어 낸 짧은 동영상)를 너도 나도 따라할 정도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탕후루의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한참 인기를 끌던 시절 건강에 대한 이슈가 제기됐고 지나치게 단 음식으로 치장한 탕후루는 빠르게 열기가 식어갔다. 한 때 한 프랜차이즈 업소만 400여개에 이르렀지만 빠르게 폐업 신고가 늘고 있다. 어느 한 곳에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아 붓지 않는 20~30 여성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완전히 몰락한 상권으로 여겨졌던 곳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생겼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가 대표적인 예다. 로데오 거리는 이미 30년 전 유행을 이끌었던 X세대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1990년 대를 살아 온 사람들이라면 구경 삼아라도 한 번쯤은 가봤을 동네였다. 한국의 최신 유행은 늘 로데오 거리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로데오 거리의 인기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10년 여의 전성기를 지난 뒤 쇠퇴하기 시작했다. 비싸질 대로 비싸진 임대료를 견뎌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로데오 거리가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 중심에도 역시 20~30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20~30 여성들은 아버지 세대의 놀이터였던 로데오 거리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30 여성들이 찾아오며 로데오 거리는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MC 신동엽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로데오 거리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한 때 손님이 너무 없어 내 나이 또래 남자들이 조용히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동네로 몰락했었는데,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어 깜짝 놀랐다. 편하게 한 잔 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새로운 분위기로 변했다. 한 편으론 반갑고 한 편으론 아쉽고 그렇다"고 말했다.

 

골프가 지고 런닝이 뜨는 것도 20~30 여성의 특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골프는 코로나 팬데믹이 저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집에만 갇혀 있던 20~30 여성들이 골프장으로 향하며 들썩였다. 골프장들은 사용료를 크게 올리며 전성기를 즐겼다.

 

하지만 지나친 가격 인상과 버거운 비용은 빠르게 인기가 사그러드는 이유가 됐다. 대신 20~30 여성들은 러닝으로 옮겨갔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건강에는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포츠로 전환한 것이다.

 

e커머스 종합몰 가운데선 쿠팡이 이달 초 처음으로 ‘러닝 스페셜티’라는 이름으로 달리기 전문관을 개설했다. 입문자부터 선수 수준까지 수요를 세분화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올 해 처음으로 1조 클럽을 달성한 뉴발란스를 포함해·호카·아디다스·나이키·아식스 등 10 여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무신사는 타누키(일본), 포티투(네덜란드), 챈스(스페인) 등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수입 러닝제품 브랜드를 런칭했다.

 

30∼34세 여성의 고용률은 2010년 53.0%에서 지난해 71.3%로 급증했다. 같은 시기 출생률은 1.23명에서 0.72명으로 줄었다.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보다 사회적 성취에 좀 더 힘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A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가천대 강사)는 "탕후루나 골프의 몰락은 20~30 여성들의 소비 성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인기가 올라갈 땐 끝없이 오를 듯한 충성도를 보이지만 약점이나 단점이 도드라지면 바로 식어버리고 다른 쪽으로 옮겨 간다. 지금 20~30 여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긴장을 늦춰선 안되는 이유다. 장점보다 단점이 크게 나타나는 경우 20~30 여성들은 빠르게 돌아선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20~30 여성들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들은 누가 이끌어서 끌려 다니는 세대가 아니다. 스스로 놀이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세대다. 골프가 인기를 끌 때도 골프 자체보다는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SNS에 올리는 것에 흥미를 느낀 것이었다. 그걸 골프 자체에 대한 인기로 오해한 것이 골프 열풍이 빠르게 사그러 든 이유가 됐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야권 성향이 강하지만 야권이 이를 잘못 해석하고 확실한 자기 편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20~30여성들의 지지는 바로 철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야권이 잘해서 20~30 여성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뭉치게 한 것이다. 선호도가 빠르게 변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철학을 갖고 있는 것이 20~30 여성들의 특성이다. 20~30 여성들이 문화를 만들고 즐길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성공할 수 있다. 그 흐름을 잘못 읽었다간 어떤 강력한 조직도 큰 실패를 맛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철우 기자 butyou@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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