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탄핵 정국 속에서 강행하고 있는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개발 사업인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결국 첫 발을 내딛었다.
한국석유공사가 진행하고 있는 대왕고래프로젝트는 지난 달 20일 첫 탐사 시추에 착수했고 한달 만인 오는 20일에 목표 심도에 도달할 예정이다. 한 번 시추에 드는 금액은 약 1,000억 원.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전면 삭감 됐지만, 석유 공사가 505억 원, 정부가 505억 원을 조달해 비용을 마련했다.
정부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약 35억에서 140억 배럴의 탐사 자원량이 있을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대단한 양이다. 정부는 이로 인한 수익이 약 2000억 원 가량이 발생할 것이라고 널리 알리고 있다.
그러나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결국 좌초자산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있다르고 있다.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개발 사업을 지금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수익 이상의 탄소 비용 지출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비영리 환경 단체인 기후 솔루션은 "정부가 제시한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 자원이 성공적으로 채굴되더라도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잠재적 탄소 비용이 적게는 213조 원에서 최대 2416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한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째서 지금이라도 중단돼야 하는 사업이라는 것일까. 또 정부는 왜 이 사업에 이토록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분야별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파악해 보고 정부의 답변도 전해본다.
◇시추 성공해도 막대한 비용 든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나 가스전을 발굴할 가능성은 20%를 밑돈다. 기본적으로 5번 정도는 파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회 시추에 1,000억 원 정도가 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5,000억 원이 시추 비용으로 쓰이게 될 전망이다.
심해 유전 개발은 탐사 시추 단계부터 높은 비용이 필요하다. 평균적으로 심해 유전의 시추 비용(1,300억 원~5,600억 원)은 천해 유전(650억 원~910억 원) 대비 2~5배, 육상 유전(130억 원~195억 원) 대비 10~30배 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 가스전 개발은 많게는 수십조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로 평균 개발 비용은 8~15조 원에 육박한다. 사업 특성상 불확실성으로 예산을 초과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미국 쉐브론(Chevron)이 호주에서 추진한 Gorgon LNG 프로젝트는 2009년 개발 초기에는 개발 비용이 370억 달러(USD, 한화로 약 52조 원)로 예측되었으나, 2012년에는 520억 달 러(USD, 한화로 약 73조 원)로 상승했고, 2016년 최종적으로 540억 달러(USD, 한화로 약 76조 원)의 비용으로 개발이 완료됐다.
게다가 동해안 가스전은 운영 중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에서 제시한 140억 배럴 규모가 채굴될 경우 30년 간 총 58억 275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이 예상되는데 이는 현재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8배를 상회하는 값이다.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향후 막대한 탄소 비용으로 부과될 수 있다. 중앙은행 기후 리스크 연구협의체(NGFS)에서 제시한 연도별 탄소비용에 근거할 경우 동해안 가스전 사업의 탄소 비용은 2,416조 원 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설사 2,00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부담해야 할 탄소 비용이 이를 크게 뛰어 넘는 것이다.
따라서 동해안 가스전이 배출할 막대한 온실가스는 탄소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의 에너지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글로벌 움직임에 역행하는 대왕고래
정부는 대왕고래프로젝트가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석유가스전 개발로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탄소 빚더미를 떠넘길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최근 세계 50대 은행 52%에 해당하는 26개 은행과, 글로벌 상위 50개 손해보험사 중 26%에 해당하는 13개 보험사는 이미 신규 석유·가스 사업에 대한 투자와 보험을 제한하고 있다. 대왕고래 가스전 탐사가 성공하더라도 많은 금융기관이 화석연료 지원을 중단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 대한 난항을 피할 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한국석유공사의 국내 대륙붕 개발 프로젝트인 ‘광개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탐사 이후 채산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2035년부터 약 30년간 상업 생산을 하게 된다.
해수면으로부터 1km 이상의 심해에 석유가스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시추비용이 회당 1000억 원에 달하며 채굴 난이도 또한 높아 부존량이 확인되더라도 실제 생산까지 이뤄지려면 수십조 원의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건설이 강행돼 현재는 사실상 좌초 위기에 직면한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 발전소의 사례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척블루파워는 2011년 대규모 정전 사태가 생기자 근시안적인 후속대책으로 추진되면서 기후대응 기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준공됐지만 제대로 가동조차 되지 못하며 좌초자산 위기에 빠진 대표적인 화석연료 사업으로 꼽힌다.
◇ 국제적 금융 지원도 어려워
2024년 현재 글로벌 금융사들은 이미 신규 가스·석유 사업에 대한 투자와 보험을 중단하고 있다. 이는 기후․환경적인 고려에 의한 전 세계적인 움직임과 함께 글로벌 가스 수요 감소 추세에 수익성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은행인 HSBC, Credit Agricol, BNP 파리바, 로이드(Lloy) 은행 등이 화석 연료 대출을 중단했다. 보험사로는 알리안츠, 스위스리, 하노버 리, 뮌헨리 등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
한 환경 단체 관계자는 "이미 다수의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신규 가스·석유 사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해 신규사업 개발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탐사 성공을 가정하더라도 신규 투자 결정이 이뤄질 시기에는 가스·석유 사업에 대한 금융을 지원하는 사례가 전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해외 유·가스전 사업 및 가스․송유관 사업은 기후·환경 문제 및 채산성 등의 문제들로 신규 인·허가가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의 취소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가스·송유관 사업의 경우 2000년 이후 72개 사업(2016년 이후는 47개)이 좌초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진 위험, 무시할 수 없다
동해안 가스전 개발로 동남권에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환경 단체들의 입장이다.
2023년에 수행된 행정안전부 연구에 따르면 동남권에만 활성 단층이 14개 존재한다. 특히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이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석유가스전 개발 행위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유발하거나 발생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7월 국회에서 개최된 ‘동해 심해 석유가스 시추개발, 지진 위험은 없나’ 토론회에서는 동해안 지역에서 최대 7.0 규모의 강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진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영국 더럼(Durham) 대학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발생한 인공지진 728건 중 석유가스전에서 발생한 지진은 107건(14.7%)으로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57건, 7.8%)의 약 2배에 이른다. 한편 이번 시추지역과 불과 40km 떨어진 포항 지역은 이미 2017년 지열발전 촉발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던 지역으로 아직 피해 보상 소송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정침귀 포항환경운동연합 국장은 “2017년 포항지진이 활성단층 조사도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 지열발전소의 촉발 지진으로 밝혀졌다"며 “기후위기 시대에 산유국의 꿈을 꾸는 것도 모순이며 잠재적인 위험 요인에 대한 제대로 된 사전 조사도 없이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또다시 어떤 위험이 촉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은 해상 풍력
전문가들은 대왕고래를 포함한 동해안 지역의 가스전 개발 대신 해상풍력 잠재량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석환 기후솔루션 가스팀 연구원은 “동해안 해상풍력의 기술적 잠재량이 충분한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가스전을 개발한다는 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시대적인 변화를 고려해서 가스전 개발이 아닌 해상풍력 보급 가속화와 함께 배터리와 그린수소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해안 지역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백서(2020)에서 제시된 해상풍력 기술 잠재량을 달성할 경우, 약 2만6142 PJ(페타줄)의 에너지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동해안 석유가스전 최소 매장량에 따라 확보 가능한 에너지인 2만754 PJ 보다 높은 수치다.
여기에 가스·석유를 전기 생산에 활용할 경우 약 40~60%의 에너지 손실이 있다는 점, 정부가 발표한 최소 매장량 또한 불확실하다는 점, 조광 계약에 따라 해외 반출 물량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제한된 국가 자원을 해상풍력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잠재량 달성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수적이다. 현 상황대로 동해안 유·가스전 개발에 재정적·정책적 노력이 집중될 경우 해상풍력 잠재량에 근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상풍력 산업을 포함한 미래 산업 경쟁력에서도 뒤쳐질 것이 자명하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가스팀 팀장은 “석유가스전 개발은 높은 비용과 기후환경 리스크, 글로벌 에너지 전환 추세와의 괴리로 경제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석유가스 개발이 곧 에너지 안보라는 낡은 인식으로, 저무는 시장에 베팅하느라 미래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기자는 본 기사 내용과 관련하여 한국석유공사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입장을 물었지만 담당자는 "지금 답변을 정리하고 있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