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보험 1345억 적자 예상에 '요양시설 임차' 허용?

  • 등록 2025.02.07 16: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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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민연금내 장기요양보험 적자 늘자 임차 요양원 카드 만지작
요양시설 공급 증가하지만 서비스 질 저하·지역사회 '계속거주' 저해
전문가들 “노인 임차 요양원 민영화, 사회적 가치와 형평성 고려해야”

 

토지나 시설을 빌려서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임차 요양원’ 허용을 정부가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돌봄의 공공성과 노인의 주거권이 침해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정부 장기요양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는 상황이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08년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당시 설치 신고만으로도 장기요양기관 급여 지정이 가능해 매년 2000여 개소가 신규로 개설되고, 1000여 개소가 폐업하는 등 장기요양기관의 난립 및 장기요양서비스의 질 저하의 문제가 이어졌고 노인인구 대비 장기요양보험 수급 인정자 비율도 계속 증가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악화를 가속화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추이(2009~2022년)’에 따르면, 수급자 증가로 재정수지는 2016년 적자로 전환된 이후 2019년까지 지속적으로 적자를 이어왔으며, 오는 2026년 1345억원에서 2032년에는 2조3299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요양시설 사업에 진출 중이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민간기업 측에선 이를 반기지만 일각에선 임차를 허용하면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단기간에 확대되고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생기면서 독과점이 발생할 것이라 지적이 이어졌다. 현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제16조 등에 따르면 토지 및 건물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요양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

 

◇노인요양시설 임차, 공공성과 노인의 주거권 침해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기요양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사)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회장 박원)가 주관한 이번 정책토론회는 고려대학교 김윤태 교수가 좌장으로, 건국대학교 이미진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이미영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인요양시설 임차 허용을 비영리법인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영리를 목적으로 시설 운영에 참여하려는 업체가 많아지면 그만큼 장기요양보험 기금 지출이 가중돼 예산 고갈로 이어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노인요양시설 임차 허용 시 독과점으로 인한 시장 지배 및 입소 노인의 주거안정성 저해, 거대자본 유입으로 인한 공공성 위협 가능성에 대한 지적과 함께 장기요양보험과 관련된 공적 시스템 강화를 통한 사회적 형평성 제고 및 서비스 접근성 보장의 필요성 등이 제기됐다.

 

 

◇시설 공급량 증가하지만 시설급여 이용 촉진으로 AIP 저해

 

첫 발제자로 나선 이미진 건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의 임차허용에 대해 “재가지향 정책과의 상충성과 시설 소유·운영 분리에 의한 부동산화, 경영 안정성 저해, 주거·고용 불안정성, 서비스 질 저하(사망률·건강 악화 증가), 인수합병 등을 통한 체인화·시장지배력 증대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진 교수는 “정부의 임차허용은 초고령사회에서 어르신들이 바라는 ‘Aging In Place(지역사회 계속거주·이하 AIP)’ 이념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이는 시설 설치를 보다 용이하게 하므로 시설의 공급량은 증가하지만 시설급여 이용 촉진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AIP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AIP 이념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역사회통합돌봄체계 구축과 ‘노인복지법’ 개정-노인요양시설 소유권 의무조항 명시, 공급 부족 지역의 국공립·비영리 시설 등의 확충과 함께 지역별 요양시설·공동생활가정 총량규제 정책 도입 검토 및 시장진입 조건을 강화”를 제시했다.

 

◇요양시설 민영화, 단순한 정책 결정 아닌 사회적 가치와 형평성 고려해야

 

이어진 발제에서 이미영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는 ‘장기요양보험에 거대자본 유입 현황과 문제점’을 주제로 “장기요양보험의 민영화나 금융화는 단순한 정책 결정이 아닌 사회적 가치와 형평성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는 재정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나, 사회적 리스크를 동시에 수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영 교수는 “보험사나 거대 기업이 노인요양보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이는 장기요양보험의 금융화를 부추기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장기요양 서비스의 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 국공립 시설 비중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공공의료 시스템을 구축해 사회적 형평성과 서비스 접근성 보장으로 장기요양보험과 관련된 공적 시스템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23년 10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대형 법인기관이 제공하는 장기요양기관 현황’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형 법인기관의 장기요양기관은 2023년 9월 기준 서울에 5곳, 경기 지역에 1곳이 있다. 4곳은 KB골든라이프케어, 나머지 2곳은 각각 하나금융공익재단과 종근당산업이 제공하는 곳이다.

 

이 교수는 장기요양 민영화가 사회적 가치와 형평성을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며, 장기요양 서비스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국공립 시설 비중 확대를 꼽았다. 그는 노인요양시설 임차 허용과 관련해선 약탈적 수준의 수익 창출을 막기 위해 “신규 임차 형태로 시설운영에 참가하려 할 때 비영리법인 등으로 참여를 제한하는 등 자격 요건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인요양시설의 부족은 전국적 현상이 아닌 일정 지역에 한정되고 있으므로 요양시설이 현저히 부족한 지역에 한해 임차를 허용하는 ‘지역 제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도균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장은 “지역적으로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고 수급 불균형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라면서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해치면 안 되기 때문에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제한적으로나마 임차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어디까지나 제한적이 돼야 하는지, 여러 가지 좀 세부적인 사항들을 검토해서 진행을 해 나가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센티브 강화와 임차허용 규제 강화 등의 논의 필요

 

이어진 토론에서는 요양시설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와 규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동균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인 돌봄 제도로서의 장기 요양 제도의 성격은 이제 국가의 헌법적 책무로, 헌법상 의무로 먼저 봐야 될 것 같다”면서 “법률에서 직접 규정한 장기요양기관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은 시설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와 낮은 등급을 받은 시설에 대한 임차허용 규제 강화 등의 논의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노인 요양 시설의 요건으로서 토지 및 건물의 소유권 확보는 이제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의 주거 공간으로서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임차허용을 할 경우에는 이 요양시설의 설치와 폐업이 더욱더 빈번해 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만약 임차허용을 열어줬을 때 거대자본의 손보 업계가 소유권을 포기하고 임차로 전환을 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임차허용의 근거는 공급이 부족한 곳에 임차허용을 하자는 건데 국립 시설 확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된다”고 했다.

 

 

◇법적 제도화 통해 적극적 인력 수급 및 질적 서비스 향상 방안 모색해야

 

마지막으로 국회입법조사처와 요양병원 관계자인 장기요양기관협회 임원은 법적 제도화와 서비스 기준 강화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와 대책을 강구했다. 

 

박종림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최고전문위원회 부위원장은 “장기요양기관 설치기준 강화를 위해 ‘노인복지법’에 장기요양시설 설치기준 소유권 의무조항을 법제화하고, 장기요양기관 총량제 도입과 함께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법적 제도화를 통해 적극적 인력 수급 및 질적 서비스 향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위원장은 “신노년층의 주요 특성이 대도시 및 수도권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고 학력비율도 높고 건강관리도 잘하는 편으로 집에서 노후 생활하기를 선호한다는 발표가 나온 바 있다”며 “대도시 중시의 노인요양시설 임차허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윤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노인요양시장은 민간 중심의 체계로 운영되면서 한계를 보여왔다”며 “공공성 강화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인프라가 완비되지 못해 여러 한계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형법인의 장기요양보험 시장진입과 정부의 요양시설 임차허용 방안이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인지, 퇴보시키는 방향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도 거대자본의 투입에 대한 독과점 우려를 제기했다. 또, 서비스 차등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 등 심화 및 시장 전반의 서비스 가격 상승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P가 기본적으로 병원이 아닌 재가 서비스 요구에 기반하나 ‘지역사회’의 범주를 반드시 재가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거주 공간 외 단위까지 포함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요양시설 임차허용 시 재가급여와 시설급여 변화가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박희승 의원은 “장기요양보험 시장에서 영리법인 비중 증가, 장기요양시설 임차 허용으로 장기요양보험의 공공성 약화, 시장 실패가 우려된다”며 “장기요양보험 시장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동환 기자 photo7298@m-e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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